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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국정원은 중대한 기로에 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은 ‘정보기관의 가장 나쁜 선례’였다.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안보'만을 수호했기 때문이다. 그 9년의 시간 동안 일어난 ‘적폐’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국정원 개혁을 얘기할 수는 없다. <오마이뉴스>는 국정원개혁발전위(13개)과 국정원감시네트워크(15개)가 선정한 국정원 적폐사건 목록 가운데 총 9개를 추려서 ‘어떤 사건’인지, ‘무엇’을 재조사해야 하는지를 집중 분석한다. [편집자말]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2월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2월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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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제압 문건, 반값등록금 차단 문건, 세월호 여론전 보고서, SNS 장악 보고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국정원이 만든 국내정치 개입 문건들이다. 이 문건들은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의 조사 안건 혹은 국정원감시네트워크(참여연대·민변·진보네트워크센터·천주교인권위원회·민들레)의 적폐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

박원순 제압 문건과 반값등록금 차단 문건은 2013년 진선미 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문건의 정식 명칭은 각각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5쪽, 2011년 11월 24일 작성)과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공세 차단'(1쪽, 2011년 6월 1일 작성)이다.

박원순 제압 문건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 이후 세금급식(무상급식 의미-기자 주) 확대, 시립대 등록금 대폭 인하 등 좌편향·독선적 시정운영을 통해 민심을 오도, 국정 안정을 저해함은 물론 야세(野勢) 확산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어 면밀한 제어방안 강구 긴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관련 예산 집행실태 철저 점검", "여당 소속 시의원(28명)들에 시 예산안에 대한 철저한 심의를 독려" 등 정치공작을 제안하고 있다.

문건에는 감사원·시의회 등 헌법기관뿐만 아니라 민간단체(학부모단체·한국경영자총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자유청년연합·어버이연합)와 보수진영(저명교수·논객·언론사설·칼럼)을 동원한 여론전 계획도 포함돼 있다.

반값등록금 차단 문건에도 국정원이 국민을 상대로 정치공작을 벌여왔다는 정황이 담겨 있다. 문건 작성자는 "야권의 등록금 공세 허구성과 좌파인사들의 이중처신 행태를 홍보자료로 작성, 심리전에 활용함과 동시에 직원 교육자료로도 게재"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이 2013년 5월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국가정보원의 내부 보고서로 추정되는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이 2013년 5월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국가정보원의 내부 보고서로 추정되는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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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안 쓰고, 줄곧 '여객선 사고'로 표현

지난해 11월에는 역시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세월호 여론전 보고서가 폭로됐다. 문건의 정식 명칭은 '2014년 하반기 국정 운영 관련 제언'으로,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유품 중에서 발견됐다. 문건은 세월호 참사 두 달 후인 6월 중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참사 수습 및 대책 대신, 정부 책임론을 빠져나가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어 여론의 분노를 자아냈다.

특히 문건에는 세월호 참사 대신 줄곧 여객선 사고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고, 곳곳에 여론전을 펼쳐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아래는 문건 내용 중 일부다.

"지지도 상승국면에서 맞닥뜨린 여객선 사고 악재가 정국 블랙홀로 작용하면서 국정 추진력 약화·사회 분위기 저하 등 위기에 봉착. *대통령님 지지도가 64.3%(4월)까지 상승세를 이어가다 여객선 사고 여파로 40% 후반대로 하락."

"비판매체는 인사청문회 및 여객선 사고 국(정)조(사)·재보선 등 정치일정을 겨냥, 정부책임론·핵심정책 흠집내기 등 악의적 보도행태 지속."

"여객선 사고에 따른 내수 둔화·내각 개편 등이 경제분야에 여파를 미치면서 경제 혁신 3개년 계획 추진동력 회복에 어려움 지속."

"국(정)조(사) 과정에서 가족대책위와 지속적 소통·배려와 함께 중도성향 가족대책위 대표와 관계 강화로 우호적 여론 확산. 보수언론·단체들의 적극적인 맞대응 집회·여론전 전개 병행. 언론은 비판세력의 국가재난 악용 정치투쟁 행태 비판과 함께 국가 개조 방안 관련 각계 논의를 확산, 여론을 건설적 방향으로 이끌고…."

"건전단체들은 비판세력의 상습적 투쟁 폐해 등을 공론화, 지탄여론 조성. 비판단체들이 의료·노동 등 여타 이슈를 여객선 사고와 결부시키지 않도록 부처별 현안관리·여론대응에 주력, 연대투쟁 차단."

또한 문건 작성자는 2014년 8월로 예정됐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두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가톨릭행동 등 종교계 비판세력들이 교황의 제주·안산 방문 및 쌍용차 해고자 면담 청원활동 전개 등 국정 흠집내기에 악용 기도"라고 진단하며 "정(의)구(현)사(제단) 등 비판 사제들이 국내 인권문제에 집착하면서 정작 북(北) 주민 인권은 외면하는 행태 부각으로 문제의식 환기 병행"이라고 건의하고 있다.

최근에도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SNS 장악 보고서(정식 명칭 : 'SNS의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가 공개됐다. <세계일보>가 지난달 10일 보도한 이 문건은 2011년 11월 작성된 것으로 "유명 인물, 다양한 매체, 온·오프라인 작업을 총동원해 정부가 국민의 마음에 침투해 머릿속 생각을 바꾸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우선 내년 총선에 대비, 입지자들의 출신 학교·지역 커뮤니티 등에 대한 활동 강화 지침을 하달, 튼튼한 뿌리 조직 착근에 주력해야 한다", "좌파 절대 우위인 트위터의 빈틈을 파고들어 SNS 인프라를 구축하고, 좌파 점유율이 양호한 페이스북을 집중 공략해 여론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실려 있다.

국정원 문건 내용, 현실에서 실현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10월 29일 국회를 방문해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 후 김무성 전 대표 등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지도부와 함께 국회 본청을 나서자,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세월호 가족 외면하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10월 29일 국회를 방문해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 후 김무성 전 대표 등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지도부와 함께 국회 본청을 나서자,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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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문건 내용 중 상당 부분이 현실에 반영됐다는 점이다. 아래는 이를 뒷받침하는 일부 내용이다.

"(박 시장이)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2009년 5월)를 방해한 시위대 8명의 생활형편을 이유로 손해배상금(2억여원) 징수 포기 또는 유예 검토. (중략) 건전단체들의 항의방문·가두시위 등으로 철회를 압박." - 박원순 제압 문건(2011년 11월 24일 작성)

→ 보수단체 8곳, "박원순은 서울시민의 시장인가? 불법시위대의 시장인가?" 성명 발표 및 규탄 집회 - 2011년 11월 28일, 서울시청 앞

"서울시가 (지하철공사 노조) 해고자 복직을 시도할 경우, 한국경영자총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을 통한 비난 여론 조성과 함께 공공기관 경영평가시 불이익 방침 주지." - 박원순 제압 문건

→ 한국경영자총협회, "박원순 시장의 노동행정에 대한 경영계 입장"을 통해 지하철공사 노조 해고자 복직 비판 - 2011년 12월 4일

"(민관 합동 사회투자기금조성 관련) 박원순 시장의 협찬 인생 및 기업 불만 목소리 등을 취합, 언론·SNS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슈화하는 등 여론으로 견제." - 박원순 제압 문건

→ 국정원 직원, 2012년 5월 18일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서울시장 클래스 비즈니스 당연 ok 일반석 탓다고 언플놀이 서민 코스프레 선동질 out" 글 작성. 2012년 9월 4일과 21일 트위터에는 '삥뜯기의 달인 박원숭', '박원순인 월세 산다고 했고 안철수는 전세 살아봤다고 하고 한 놈은 인생 자체를 협찬 인생으로 호의호식하며 살았고, 또 주식 뻥튀기해서 기부까지 하며 호의호식하고 산다" 글 작성.

"여권이 야당·좌파에 압도적으로 점령당한 SNS 여론 주도권 확보 작업에 매진, 내년 총·대선시 허위정보 유통·선동에 의한 민심왜곡 차단 필요." - SNS 장악 보고서(2011년 11월 작성)

→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발생.

"차기 총선 등 주요 선거 시 SNS 활용 능력·영향력을 공촌 심사에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 - SNS 장악 보고서

→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지도부, '온라인 소통지수'를 중앙당 당무감사에 포함하고 공천심사 때 'SNS 소통지수'를 반영한다고 발표.

"콘텐츠와 언론·인터넷 등 매체 간 연동·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 배가." - SNS 장악 보고서

→ 인터넷 분야 광고비 꾸준히 증가(2011년 319억원, 2012년 408억원, 2013년 466억원, 2014년 558억원), 2008년~2014년 정부 광고를 받은 진보 매체는 4개, 보수 매체는 16개이고, 광고 액수는 10배 이상 차이.

'세월호 변호사'로 불렸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세월호 여론전 보고서가 작성된 시점 직후인) 2014년 6월말과 7월초 정부의 세월호를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라고 지적했다.

"지시, 작성, 실행 모두 규명돼야"


민변,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 등 국정원감시네트워크 단체 회원들이 지난 6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지난 19일 출범한 ‘국정원 개혁위’가 조사해야할 적폐리스트를 발표했다.
▲ 국정원 적폐리스트 15가지 발표 민변,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 등 국정원감시네트워크 단체 회원들이 지난 6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지난 19일 출범한 ‘국정원 개혁위’가 조사해야할 적폐리스트를 발표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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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정원은 이러한 국내정치 개입 문건들의 작성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박원순 제압 문건과 반값등록금 차단 문건에 관련해, 당시 민주당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9명을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두 문건에 작성자와 배포처(2-1[옛 국내정분석국장], 0-0[국정원장], 2-0[국정원 2차장], 3-0[국정원 3차장], 6급 조○○, 4급 함○○, 팀장 추명호 등)가 명확히 기재돼 있음에도 관련자들의 검찰 조사를 거부했다.

검찰도 "국정원이 작성한 문건으로 보기 어려워 혐의점이 없다는 것이 명확해 각하처리한다"라며 면죄부를 줬다. 세월호 여론전 보고서와 SNS 장악 보고서와 관련해서도 국정원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때문에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해당 문건들이 국정원에서 작성한 것임을 명확히 조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 문건의 '최종 독자'가 어느 선인지도 밝혀야 한다. 일부 문건의 경우 국정원장은 물론, 대통령까지 보고됐음을 암시하는 문장이 담겨 있다.

"대통령께서 장차관들에게 힘을 실어주심으로써", "민생 현장, 대학가 방문 등... 진정성을 전달하심으로써", "대통령님의 강력한 지도력으로 여러 기회 요인을 활용하시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는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세월호 여론전 보고서)

문건에 담긴 계획이 실현된 것과 관련해, 청와대·국정원의 관제데모 지시·지원 의혹도 반드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공개된 보고서 외에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 문건이 얼마나, 어떻게 작성됐는지 전반적인 실태조사도 필요하다.

박주민 의원은 "문건이 작성되고 그 이후 (정부나 시민단체의) 기조가 달라졌다면 컨트롤 타워가 있다는 말이다"라며 "누가 지시했고, 누가 작성했고, 실제로 집행한 사람은 누구인지 모두 규명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문건뿐만 아니라 어버이연합 게이트, 세월호 관련 집회, 전교조 관련 메일, 국정교과서 정국 등을 보면 국정원이 전방위적으로, 늘상 국내정치 개입 문건을 만들어온 것 같다"라며 "명확한 조사를 통해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확실히 막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집중분석- 국정원 9대 적폐사건 특별면 바로가기


태그:#국정원, #국내정치, #개입, #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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