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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말의 어느 아침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를 타고 파리 북역(Gare de nord)에 도착한 후, 지하철로 크리메(crimée) 역으로 이동하려는데 도대체 역 어디에도 지하철 노선도가 보이질 않는다. 이렇게 넓은 역에 노선도 하나가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저쪽에 서 계시는 안내원으로 보이는 한 할아버지께 여쭤보니 손에 들고 계시던 꼬깃꼬깃 찢어질 지경인 노선도를 펼쳐 설명해 주셨다. 자원봉사자이신지 유급 직원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노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일부러 노선도를 설치 안 한 건가 의아스러웠다.

5년 만에 파리 지하철을 탔다. 전엔 거의 대부분이 손잡이를 돌리던 수동식이었던 지하철 문이 지금은 버튼식으로 많이 바뀌어 있었는데, 그래도 열 대 중 하나쯤은 아직도 손잡이 식지만 어쨌든 많이 개선된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예약한 숙소가 생 마르탱 운하(Canal Saint Martin)가 있는 19구의 크리메 거리에 있는데, 지하철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와보니 동네 분위기가 이민자들 일색에 우중충하고 지저분한 게 번잡스럽기 이를데 없었다. 알고보니 변두리인 19구 지역이 원래 좀 우범지역으로 알려져 있다는데 그래선지 어떤 날은 숙소 근처 골목길에 무장한 군인들이 다니기도 했다.

사실 이번이 파리 두 번째 방문인데, 루브르, 에펠탑, 샹젤리제 거리 등을 정신없이 섭렵하며 오랫동안 품어왔던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로망과 환상을 한껏 충족시켰던 5년 전에 비해, 이번엔 좀 더 여유롭게 차분하고 진지한 시각으로 이 도시를 느껴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동네의 첫 이미지는 알쏭달쏭했던 5년 전에 비해 파리의 그늘을 꽤 생생하게 체험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솔직히 여기뿐 아니라 그동안의 여러 테러 사건의 여파로 파리 전체의 분위기가 많이 무거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역 근처로 나왔다. 식당이나 바는 많았지만 육식을 안 하는 내가 들어갈 만한 곳이 쉽게 눈에 띄질 않았다. 배는 고팠지만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지하철을 타기에는 너무 지쳤기에 가까운 곳에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 한참을 헤매다 할 수 없이 어느 너저분한 노천 카페로 들어갔다. 안이나 밖이나 손님들로 인해 비좁고 지저분했고 서빙 직원 하나 없이 프랑스인 주인 아저씨 혼자 주문과 서빙을 다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홀 안쪽에서는 젊은 아시아계 여성 하나가 로또 판매까지 하고 있어 더욱 번잡스러웠지만, 꿋꿋이 줄을 서서 카운터에 있는 메뉴판을 탐색한 후 저렴한 가격의 프로마쥬(Fromage) 샌드위치 하나를 주문했다. 과연 이런 곳에서 만드는 샌드위치는 어떨까 궁금했던 것도 무색하게 주인 아저씨는 주문을 받자마자 바게트 빵 하나를 가른 후, 프로마쥬 치즈 몇 장을 쓱쓱 썰어넣더니 바로 저런 걸 내어준다. 어쩐지 싸더라니... 황당했지만 너무 배가 고팠던 터라 물 한 잔 없이 덩그러니 놓인 이걸 결국 꾸역꾸역 다 먹어치웠다. 파리에서 이런 걸 먹어보는 것도 재밌는 추억이라 스스로 위로하면서.

프로마쥬 샌드위치
 프로마쥬 샌드위치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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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동네 공원에 만개한 4월의 벚꽃
 파리 동네 공원에 만개한 4월의 벚꽃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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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숙소 주변을 산책했다. 암스테르담에서 내내 지독한 날씨로 괴로웠던 내게 있어 파리의 봄 날씨는 감사할 정도로 맑고 상쾌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운하 주변으로 나들이 나온 인파들도 많았다.

세느 강 주변에서 주말 오후를 보내는 주민들
 세느 강 주변에서 주말 오후를 보내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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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게임을 즐기는 젊은 파리지엥들
 공원에서 게임을 즐기는 젊은 파리지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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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젊은 남녀가 삼삼오오 팀을 이뤄 게임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팀을 이뤄 막대기나 은색의 쇠구슬을 던지는 게임 등을 하는 게 요즘의 트렌드인 듯한데, 화창한 주말 오후에 이렇게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야외 게임을 즐기는 파리지엔들의 모습은 오직 파리만의 특별한 멋으로 느껴졌다.

동네 놀이터에서 노는 파리의 아이들
 동네 놀이터에서 노는 파리의 아이들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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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느 강을 바라보며 삼삼오오 모여 앉아 먹고 마시며 수다를 떨고 때로는 진지한 토론을 하며 여유로운 주말 오후를 즐기는 파리의 젊음
 세느 강을 바라보며 삼삼오오 모여 앉아 먹고 마시며 수다를 떨고 때로는 진지한 토론을 하며 여유로운 주말 오후를 즐기는 파리의 젊음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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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느 강 운하 주변을 거닐며 유유자적 파리의 봄을 만끽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렀다. 하늘이 어둑해질 무렵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http://arinalife.tistory.com/에도 추후 게재 예정입니다.



태그:#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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