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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울 삼성역 부근에 있는 숙박시설 C레지던스에서 일한 적이 있다. 144개실 규모의 C레지던스 운영업체 H사는 D사와 관리용역 계약을 맺었고, 나는 D사 소속 관리소장으로 시설물 관리, 관리비 산정, 부과 및 인원관리 등의 일을 했다. 

직장생활을 오래 했지만,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하기는 처음이라 용역업체에 대해서 잘 모른다. 입사한지 2개월째인 8월, H사와 D사의 계약기간이 끝나 재계약을 해야 되는데 D사는 저가 견적업체인 S사에 밀려 탈락하고 말았다.

나를 제외한 D사 소속 시설직, 주차원, 룸메이드 등 7명은 S사로 고용승계가 되지만, 소장인 나는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입사 2개월 만에 실업자가 된다는 것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마침 시설직 1명이 자진 퇴사를 하는 바람에 일자리가 하나 남게 되었다. 자존심 따위는 다 버리고 새로 오는 S사 소속 젊은 소장에게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급료도 깎이고, 소장 밑에서 일하는 시설직이다. 그렇게 해서 한 달이 지나 10월이 되었다.

"이달 말까지만 일하고 나오지 마세요!"라는 소장의 말 한마디에 어쩔 수 없이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실업자 된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11년간 고용보험료를 지불해 왔고, 내 의지가 아닌 해고를 당하면서도 180일 이상 근무를 해야만 하는 법규 때문에 실업급여 한 푼 못 받고 쫓겨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사실 나는 창원에 있는 대기업에서 1975년부터 1991년까지 16년을 일하는 동안 만 10년을 인사부에서 일했다. 갖가지 노동관련 법규에 따라 별의별 일을 다 경험한, 내 나름 인사노무분야에 능하다는 생각으로 일했던 사람이다. 그렇지만 용역업체에 대해서는 이제야 알아 가고 있다.

해고를 당하지만 H사나 D사 그리고 S사, 어디에도 항의 한 마디 할 수가 없다. 그들은 관련 법규에 저촉되는 일은 하지 않았으니까. 역시 고용노동부에 실업급여도 요구할 수 없다. 유기계약(有期契約)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애(悲哀·슬픔과 설움)를 처음으로 맛본 것이다.

MBC '무한도전'의 코너 '무한상사' 중 한 장면.
 MBC '무한도전'의 코너 '무한상사' 중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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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드 5명 중에는 1년에서 4일이 모자라 퇴직금을 못 받는 강○○, 신○○ 두 여성이 있다. 나는 D사에 근로자들 잘못이 아니라 용역계약을 갱신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고 단 4일이 부족하니 퇴직금을 지급하자고 건의했다. 대답 대신 피식피식 웃기만 했다. 끝내 퇴직금은 받지 못하지만 일이라도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룸메이드 강○○씨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근로자들 피 빨아먹고 사는 게 용역업체예요. 4일이 모자라는데 퇴직금 주겠어요?"

그들은 이미 용역업체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다. D사 그들은 참 순진하고,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이라고 나를 평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또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또다시 해고 통보, 이번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2014년 1월부터 서울시 영어마을 S캠프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직장을 구할 때 서류만 통과되면 면접에서는 대체로 잘 붙는 편이다. 그곳 영어마을 S캠프도 서울시가 직접 운영을 하지 않고 Y사가 운영 중, L사와 관리용역 계약을 맺었고, 나는 그 L사의 시설관리원이다. 나는 어디서나 맡은 일에 대하여 성심을 다하는 편이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갔다.

L사 관리소장 이○○으로부터 지난해 삼성역 C레지던스에서 들었던 똑같은 말을 또 듣게 되었다.

"이달 말까지만 일하고 나오지 마셔야 되겠습니다!"

허허, 엷은 미소가 지어진다. 이유인즉, Y사 권○○ 대리 밑에서 일하는 이○○ 차장이 있단다. 깊은 그들 사정은 내가 알바 아니고, 차장을 대리 밑에서 일하게 하면 자진 퇴사할 줄 알았는데 계속 버티고 있단다. 그래서 내가 속한 L사 정원 1명을 줄여서, 즉 최근에 입사한 나를 해고하고 그 자리에 이 차장이 오기로 했단다.

L사 이 소장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해고통보를 받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L사 전○○ 전무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납득되지 않을 경우 Y사 화○○ 본부장(원장)을 상대할 것이고 그래도 안되면 서울시장을 상대할 예정이다.

작년 C레지던스에서는 법적으로 해 볼 방법이 없어 꼼짝 못하고 해고를 당했지만, 이번에는 분명 승산이 있는 게임이라고 판단됐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니 약간의 즐거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L사 전○○ 전무와의 면담에서 탁자를 내려치며 했던 말이다.

"해고사유가 뭐냐? 인사노무분야는 내가 당신들보다 못하지 않다. 대규모의 상장회사에서 인사분야의 일을 해 본 사람이다. 당신들 밑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뵈는 게 없느냐? 약자라고 너희들 맘대로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3개월이 안됐다고 맘대로 해고해도 되는 줄 아느냐?

소위 임시, 수습, 시용기간이라고 하는 그 3개월은 맘대로 해고하는 기간이 아니다. 근무를 계속시킬 수 없을 만큼의 결격사항이 발견되었거나, 감원을 하지 않으면 사업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하고 중대한 사정이 있을 경우, 그렇더라도 관련부처의 승인을 받아야 되는 것이다. 나는 젊은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찾아서 내 집 일처럼, 동료들은 내 동생이나 조카들처럼 생각하고 도맡아 했다. 그 대가가 이거냐? 요소요소에 있는 CCTV를 확인해 보라! 나는 절대 안 나간다. 어떻게 할 테냐? 해고가 철회되지 않을 경우 Y사 원청 서울시장과 싸우겠다."

예순이 넘어 보이는 L사 전○○ 전무의 얼굴은 홍당무가 돼 쩔쩔 매고 있다. 나의 호칭은 그 시간부터 '문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다음날 서울시 감사총괄팀 조○○ 팀장(여)에게 이메일로 아래 내용을 포함하여 7개 항목으로 정리한 '부당해고(예고) 통보에 대한 진정서'를 보냈다.

"해고를 당할만한 어떠한 이유도 없다.
인권을 유린하고 생존권을 박탈하는 처사이다.
서울영어마을 S캠프는 사기업이 아닌 공공기관 서울시가 위탁 운영하는, 그리고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곳에서 납득할 수 없는 비극이 발생됐다.
해고는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밤 9시가 돼서야 이메일 열람을 하더니 즉시 답을 보내 왔다.

"본건 조사하도록 평생교육과 권○○ 주임에게 업무배정을 했습니다."

다음날 서울시청 권○○ 주임으로부터 "Y사에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고, 경위서를 받고 나서 감사를 실시한다"고 들었다. Y사에서는 그 후로도 요리조리 말 바꾸기와 변명을 늘어놓는다. 나는 거기에 대응해서 2차 진정서에 12개 항목의 내용을 추가했고, 3차에는 나의 의견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냈다.

감사를 나온다는 날 아침 일찍부터 손님(감사요원) 맞이할 준비로 그 넓은 단지가 온통 부산한 모습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지켜보았다. 감사요원 5명이 몇 시간째 머물다 간 후, 하얗게 질린 기색의 L사 전○○ 전무가 만나자고 한다. 서울시 감사실에 접수한 진정서를 취하해 달라며 애원을 한다.

Y사에서는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음달 26일로 끝나는 용역 재계약 불가 방침으로 L사의 목을 죄는 모양이다. 전○○ 전무는 Y사와 나 사이에 끼어 어찌할 줄을 모르는 걸 보니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L사도 사실 약자라서 피해자에 가깝다. Y사의 화○○ 본부장이라는 자가 하는 짓을 봐서는 갈 데까지 가고 싶지만, 힘없는 L사의 전○○ 전무와 이○○ 소장을 더 이상 고통스럽게 할 수가 없어 진정을 취하했다. 절대 못나가겠다고 큰 소리 쳤지만 나는 결과적으로 해고를 당한 셈이다.

강자는 이기고, 약자는 지게 돼 있나 보다! 또 직장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지금은 아파트 관리소장이 되었다

나는 60대 후반의 나이로 조그마한 공동주택단지(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자료사진)
 나는 60대 후반의 나이로 조그마한 공동주택단지(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자료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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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60대 후반의 나이로 조그마한 공동주택단지(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소장이나 경비, 전기, 영선, 미화 등 관리인원을 단지 입주자대표회의 직영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긴 하지만, 관리 용역업체에서 인원을 채용하여 단지에 파견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나는 경비원 등 직원을 채용할 때나 근무하는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당부하는 말이 있다.

"소장을 포함해서 우리는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이다.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고 열심히 일해주기 바란다."

항상이라는 말의 뜻은 이렇다. 고령인 우리들은 늘 긴장하고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는 몸조심을 해야만 한다. 처음 입사해서 시용기간 3개월 동안 특히 밉보이지 말아야 되고, 근로계약기간 1년이 종료되고 재계약을 할 수가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입주자대표회의와 용역업체간 재계약을 하거나, 업체가 바뀔 때도 자칫하면 재계약을 못하거나 고용승계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다 보니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된다는 말이다.

고령 비정규직인 우리는 사장님(?)들을 많이도 모시면서 일한다. 200세대 아파트라면 남자사장님, 여자사장님, 할아버지 할머니 사장님, 아들 딸 사장님. 평균 세대당  4명으로 계산할 때 800명의 사장님을 모시면서 일하게 된다. 그 중에는 참 좋은 분들이 많다.

아파트 단지에서 나를 분노하게 했던 두 가지 일을 겪었다. 부모와 자식지간에, 형제자매지간에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을 더러 접하면서 일찍이 들어 왔던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는 말은 고리타분한 단어가 되었고, 땅에 내팽개쳐진 지 오래인 것이 오늘의 현실이 되었다.나는 나이 많은 것을 자랑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나이로 인하여 대접받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첫 번째 겪었던 일은, 내가 일하던 아파트 1층 세대 배수구가 막혀 집안으로 물이 역류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하 공사를 위해 주차된 차량을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달라고 부탁했다가 자식또래의 30대 젊은이에게 욕설과 폭언, 물리적 수모까지 당했던 일이 있었다.

또 한 가지는, 혼자 사시는 70대 노모의 50대 아들(노모와 따로 살고 있음)로부터 "왜 혼자 사는 세대에 전기료, 수도료가 이렇게 많이 나오느냐?"며 다짜고짜 심한 욕설을 듣고 행패를 당했다. 사용한 량만큼의 계량기 계측 결과로 산정된 관리비라고 설명을 해도 계속되는 그의 행패는 막무가내였다. 이 두 가지 일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잘못한 일이 없다. 나는 그 당시 여러 날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지금도 생각하면 분노를 느낀다.

그 30대 젊은이는 사업에 실패했으며, 처는 아들 하나를 두고 집을 나갔고, 직장은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몇 달을 놀고 있다고 한다. 그런 30대 젊은이가 사업이나 가정생활, 직장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리가 만무하다.아무리 자기 처지가 힘든 상황이라 하더라도 자기 부모 또래 사람에게 행패를 부려 분풀이를 하려 하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해서야 되겠는가! 또 다른 50대 아들의 직업은 떼인 돈 받아내는 무슨 신용정보업체 일을 한단다. 상대방이 누구이거나 윽박질러서 떼인 돈 받아내는 듯 대하면 되겠는가!

이런 사람들로 인하여 경비원 자살 사건, 경비원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살인 사건 등 여러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유통기간이 지나 먹을 수 없게 된 음식물을 경비원에게 주었다가 문제가 되었던 일, 독성 치약이라 버려야 된다는 것을 알고 나서 자기는 사용하지 않고 경비원에게 주었다가 그 치약을 받아온 경비원의 아들의 폭로로 인하여 알려졌던 일이 생각난다. 

어찌 보면 아주 사소한 일일지 모르지만 결코 사소한 일로 볼 수 없다. 이와 같은 사람은 주위 많은 사람을 분노하게 할 것이다. 사회적 강자가 약자에게 행해지는 갑질로 인하여 우리를 분노케 할 뿐만 아니라 사회를, 나라를 병들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 두 사람의 경우, 분명히 성장 과정이 정상적이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유아 교육에서부터 청소년의 바른 교육을 위한 가정환경과 생활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한 기성세대, 부모, 교육기관 등의 많은 고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태그:#비정규직근로자의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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