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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신병교육대.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있는 신병들이 보입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훈련병'이 아닙니다. 후반기 교육을 받고 있는 '교육생'이지요. 5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2주간 추가적으로 더 교육을 받습니다. 이 교육생들의 손에는 총이 쥐어져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죠. 그러나 이 훈련만큼 무의미한 것이 있었나 싶었죠. 바로 총검술입니다.

'총검' 없이 휘두른 총검술, 도대체 왜?

총검술은 '총검'과 '개머리판'을 휘두르는 전투방식입니다. 하지만 교육생의 총에는 '총검', 즉 대검이 착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총검술에 가장 기본인 '총검'이 없는 거죠. 이상한 상황입니다. 모두 갸우뚱했지만, 교관은 아무 해명도 없이 교육훈련을 진행합니다.

숙달된 조교가 시범을 보입니다. 먼저 이동자세부터 가르쳤습니다. 총검술 이동자세라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죠. 단독군장 상태에서 총을 쥔 채로 빠르게 제자리걸음을 합니다. 그 상태에서 천천히 해당 방향으로 몸을 돌리죠. 여전히 발은 제자리걸음으로 긴박하게 뛰고 있을 때요. 이게 실전 총검술과 무슨 상관이 있나 싶습니다. 아무튼, 훈련은 그대로 진행됩니다.

이후 조교는 갖가지 자세로 총검술 자세를 선보입니다. 그러나 전혀 집중되지 않습니다. '총검'이 없는 '총검술'인데 과연 집중이 될까요? 총검을 어떻게 휘두르는지 전혀 상상이 되지가 않습니다. 그저 빈총을 요란하게 흔들 뿐. 당연히 교육생들은 제대로 휘두르지를 못했죠. '자신이 원하는 각'이 나오지 않자, 교관은 주의를 줍니다.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총검이 없는 총검술'이니 당연한 일이죠.

훈련병들이 각개전투 훈련을 받고 있다. (자료사진)
 훈련병들이 각개전투 훈련을 받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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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얼차려를 받았습니다. 총검술 이동자세로 집합과 해산을 반복했지요. 교관의 분이 풀릴 때까지, 우리는 미친 듯이 모이고 흩어졌습니다. 무거운 소총을 들었기에 더욱 힘들었습니다. 얼차려와 훈련이 끝난 뒤에 모두 땀범벅입니다. 어느 교육생은 이렇게 투덜댔죠.

"아, 씨X! 이딴 거랑 실제 전쟁이랑 무슨 상관이야!"

왜 총검 없이 총검술을 훈련했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어느 교육생이 조교에게 들었답니다. '총검으로 다칠 수가 있으니 뺐다'고요. 이게 말이 되나 싶습니다. '실전과 같은 훈련'을 표방하던 군이, 오히려 '보여주기식 훈련'을 횡행하는 겁니다.

북한이 총검술을 쓰고 있으니, 우리도 총검술을 써야만 한다?

당연히 우리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빈총을 휘두르는 '보여주기식 훈련'부터 현대에 걸맞지가 않은 '구시대적 훈련'이라는 말까지 나왔죠. 대부분의 교육생들은 총검술 자체가 '구시대적이고 바보짓'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조교가 옆을 지나가다가 들어왔죠. 얼른 전부 조용해졌지만 이미 조교는 전부 들은 눈치였죠. 큰일 났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조교는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이 총검술을 채택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에 대항하는 총검술을 익혀야만 상대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사실 이건 들어보면 굉장히 그럴 듯하죠. 대충 납득한 분위기가 펼쳐지자 조교는 돌아갑니다. 모두들 말이 없죠.

'북한이 총검술을 채택하고 있으니, 그에 대항하는 총검술을 익혀야 한다!' 얼핏 들어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 그때 어느 교육생이 조용히 빈정댔죠. 그제야 저는 그 논리가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아직도 그 말이 기억납니다.

"바보가 바보짓을 한다고 바보짓을 따라 할 필요가 있나?"

이제는 미군처럼 '권총'을 지급하고, '격투기'를 가르치자

"미군은 총검술을 지속적으로 축소했습니다. 이미 2011년에 미 육군은 총검술을 폐지했죠. 그러나 이건 병사의 전투력을 약화시킨 것은 결코 아닙니다. 대신에 권총과 격투기를 통해서 근접전 능력을 강화시켰습니다."
 "미군은 총검술을 지속적으로 축소했습니다. 이미 2011년에 미 육군은 총검술을 폐지했죠. 그러나 이건 병사의 전투력을 약화시킨 것은 결코 아닙니다. 대신에 권총과 격투기를 통해서 근접전 능력을 강화시켰습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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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런 사례가 훨씬 전에 있습니다. 바로 1941년부터 발발한 태평양 전쟁 때의 일이죠. 당시 일본은 미국과 전쟁 중이었습니다. 미군은 월등한 화력으로 일본군이 점령한 섬에 상륙했습니다. 그러자 일본군은 총검 돌격을 강행했죠. 처음에는 미군은 당황했습니다. 함성을 지르며 총검으로 돌격하는 일본군의 모습에 황당한 것이죠.

이에 미군도 일본군의 총검 돌격에 대항책을 마련했습니다. 미군 역시 일본군처럼 총검 돌격으로 대항했을까요? 아닙니다. 미군은 일본군의 총검돌격을 따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병사들에게 권총, 기관총, 산탄총, 화염방사기를 지급한 것이죠. 일본도, 총검 등의 날붙이만 들고 달려들던 일본군은 처참하게 전멸했죠. 날붙이나 개머리판 따위보다, 총알이 훨씬 더 강함을 아는 것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미군은 일본군보다 체격이 좋습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격투기를 가르쳤기에 더욱 유리했죠. 실제로 총검 돌격을 하던 일본군을 미군이 맨손으로 때려잡은 일도 허다합니다. 즉, 돌발 상황에도 충분히 대응할 능력을 갖춘 겁니다.

이와 같은 미군의 대응으로 일본군은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만약 미군도 일본군처럼 총검돌격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숫자도 많고 체격도 좋은 미군이 이기기는 했을 겁니다. 그러나 미군 역시 피해가 엄청났을 겁니다. 이후에도 미군은 총검술을 지속적으로 축소했습니다. 이미 2011년에 미 육군은 총검술을 폐지했죠. 그러나 이건 병사의 전투력을 약화시킨 것은 결코 아닙니다. 대신에 권총과 격투기를 통해서 근접전 능력을 강화시켰습니다.

제가 복무하던 당시만 따져도, 우리 군은 북한보다도 34배가 넘는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또한 국방부는 정훈교육 때, 북한 인민군의 체격이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선전합니다. 국군이 체격이 월등한 것은 물론이고요. 이는 사실일 겁니다. 국방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면요.

그런 조건임에도 국방부는 여전히 총검술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권총을 지급하고, 격투기를 가르쳐서 병사들의 전투력과 생존력을 높일 생각이 없는 겁니다. 오로지 '구시대적인 총검술'에 집착하고 있죠. 21세기의 우리 군은 20세기의 전술에만 매달리는 꼴입니다. 병사들의 전투력과 생존보다는 '국방부가 생각하는 멋'이 중요한 걸까요? 무의미한 총검술을 익히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뭐 이렇게 일본군이랑 똑같냐?'


태그:#고충열, #입영부터전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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