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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과 불안없이 영원히 존속하는 제도는 없다. 이것은 우리가 국가의 원칙으로 삼은 민주주의 제도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현대 국가에 있어서 불가결한 원칙이 된 민주주의지만, 과거를 되돌아보면 항상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두 번의 쿠데타와 기나긴 독재 기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민주주의가 정면으로 부정된 것은 아니었다. 헌법에는 민주주의에 관한 내용이 있었고, 민주주의적 원칙들은 형식적으로는 존속했다. 그러나 사실상 농락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괴이한 언어가 만들어져 그 실질을 왜곡했다. 박근혜 정부 말기에는 일련의 국정 농단 사태로 인한 탄핵 심판이 벌어졌다.

서양에서는 20세기 초반에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었다. 파시스트가 등장하면서 민주주의 체제를 쿠데타로 붕괴시켰고, 내각들은 힘없이 무너지고 권위주의 정부가 들어섰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는 결국 민주주의를 잃었다.

<폭정>
 <폭정>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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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학교 사학과 교수 티머시 스나이더는 언젠가 다시 찾아올 폭정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막기 위해 <폭정>을 썼다. 책은 150페이지의 짧은 분량 속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원칙을 제시하며, 어떻게 폭정이 도래했고, 폭정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한다.

티머시 스나이더가 제시하는 원칙은 20개다. 그는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져 극단주의에 위협받던 지난 20세기의 경험들을 되살린다. 파시즘과 전체주의가 민주주의를 붕괴시키고 독일 제3제국과 같은 기형적인 국가를 만들었던 과거를 돌아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는지 검토한다. 역사는 되풀이되지는 않지만, 가르침을 주기에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유산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그러한 위협으로부터 지켜 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잘못된 생각이다. 오랜 전통에 따라, 우리는 역사를 연구하여 폭정의 뿌리 깊은 근원을 이해한 다음 여기에 적절하게 대처할 방법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우리는 20세기에 민주주의가 파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에 굴복하는 것을 보았던 유럽인들보다 결코 더 현명하지 않다. 우리에게 한 가지 이점이 있다면 그들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 16p

그가 가장 먼저 언급하는 원칙은 '미리 복종하지 말라'이다. 그는 독일의 나치 정권을 예로 들며, 자발적으로 새로운 지도자에 봉사하려는 이들이 넘쳤기 때문에 나치가 신속히 움직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강제로 병합하려고 할 때, 오스트리아 나치들은 유대인을 미리 붙잡아 그들로 하여금 독립국 오스트리아의 상징을 지우게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치가 아닌 일반 평범한 사람들도 이 과정을 구경하고, 유대인들의 물건을 훔치는데 협력했다. 이런 오스트리아인들의 예측 복종은, 나치 고위층에게 자신감을 주는 행위였다. 나치는 곧 유대인 학살을 위한 폭동을 체계적으로 실행하게 되었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나치가 아니었던 평범한 사람들이 이 광경을 흥미롭게 그리고 즐겁게 지켜봤다는 사실이다. 유대인 재산목록을 가지고 있던 나치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훔쳤다. 나치가 아닌 보통 사람들도 절도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또한 결정적이다. (중략) 1938년 3월 오스트리아인들의 예측 복종은, 나치 고위 지도층으로 하여금 무엇이 가능한지를 알게 했다. 바로 그해 8월 빈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이주 본부를 설립했다.' - 24p

저자는 예측 복종은 정치적 비극이며, 억압적인 정부에 순응하는 시민은 권력자에게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르친다는 사실을 힘주어 말한다. 또한 정부에 복종하는 대신 정부가 원칙과 제도를 파괴하기 전에 제도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도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법정과 언론을 활용하여 제도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직접 조사하라'는 원칙도 제시한다. 세상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해하고, 인터넷에서 얻는 허위 사실을 주의하라는 것이다. 정보의 진위를 세심하게 살펴본다면, 다른 사람에게 가짜뉴스를 보내는 일이 줄어들 것이고, 개인과 사회의 정신의 품격을 지킬 수 있다.

특히 이것은 주의깊게 볼 만한 내용인데, 저자는 위험한 낱말을 함부로 쓰는 사람을 조심하고, 애국적인 용어를 기만적으로 쓰는 일에 분노하라고 권한다. 안전을 위해 자유를 대가로 치르라고 권하는 사람은 대개 안전도 자유도 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신은 더 안전해지지도 않는데 자유만 확실히 양보하게 될 수 있다. 권위에 복종하면 편안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그 편안함이 실제 안전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작은 자유는 불안한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이 일시적인 불안이 위험은 아니다.' -134p

이외에 '(책임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시선을 마주하고 작은 대화를 나누어라', '사생활을 지켜라', '위험한 낱말을 경계하라' 같은 미시적인 주제도 있다. 또한 책을 더 많이 읽으라는 의견도 제시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독서를 통해 더 많은 개념을 익혀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규칙을 지키는 행동 하나 하나가 민주주의를 지키고 권위주의를 막는 방파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책이 말하듯 민주주의 원칙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제도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다. 권위주의에 맞서서 시민들과 언론, 법이 지켜야 하는 존재이다. 이 책은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을 위한 하나의 민주주의 가이드북이다.

여기서 말하는 몇 가지 원칙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실행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많은 시민들이 탄핵 심판과 촛불시위라는 정치적 경험을 겪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원칙들을 지키고 힘든 시간을 버텨왔는지, 앞으로는 어떤 원칙으로 살아가야 할지 이 책을 통해 반추해볼 수 있다.


폭정 -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조행복 옮김, 열린책들(2017)


태그:#민주주의, #시민, #폭정, #독재, #권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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