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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연일 폭염 경보가 날아듭니다. 숨만 쉬어도 열나는 요즘, 옷이라도 시원하게 입고 싶은데 따가운 시선이 돌아옵니다. '쿨비즈' 외치더니 반바지는 안 된다는 직장 상사, 노브라로 다니면 역정 내는 할아버지, 반소매 티셔츠 입으니 제모 안 하냐고 묻는 친구까지. 그야말로 '시원한데 열불나는' 사례들을 모았습니다. 타인의 옷차림을 재고 따지는 건 이제 그만! [편집자말]
 겪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겠지만 사회의 외모 지적 문화는 지나치게 만연하며 그 수준도 심각할 정도다.
 겪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겠지만 사회의 외모 지적 문화는 지나치게 만연하며 그 수준도 심각할 정도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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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여성민우회는 '머리어깨무릎발'이라는 월간 액션을 진행 중이다. 이 활동의 취지는 지나칠 정도로 넘쳐나는 외모 지적 사례들을 모으고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회원으로서 액션에 참여한 나는 소모임원들과 함께 '외모피로지도'를 작성해달라는 요청받았는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신체 부위별로 내가 겪은 외모 지적 사례를 나열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난색을 표했다. 유독 여성에게만 과도한 외모 기준을 들이대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인 내가 들려줄 경험이 별로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웬걸, 막상 펜을 들자 나는 끊임없이 내가 들은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다. 다리가 너무 얇다, 팔이 너무 가늘어 아픈 사람 같다, 어깨를 키우기 전엔 좀 헐렁한 옷을 입는 게 좋겠다 등등. 심지어 그중에는 무려 복숭아뼈의 색깔이 이상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미 눈치 챘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받은 지적의 대부분은 노출과 관련된 것이었다. 적당히 감출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드러내자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질문을 던졌는데 여러 명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나보다 상대적으로 체구가 큰 친구들은 '그런 몸으로 짧은 옷을 입어도 되냐' '관리를 안 해도 너무 안 하는 거 아니냐' '택시에 치여도 너는 안전하겠다'는 식의 모욕을 들었다고 전했다. 반면 나처럼 몸이 야윈 친구들은 '부러질 거 같아 불안하니 그런 옷 입지 마라' ' 그렇게 말라서 몸을 드러내 놓고 다니면 부모님이 욕먹는다'와 같은 지적을 들었다고 한다.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가. 심지어 이 모든 사례들은 겨우 하나의 단톡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사례 제공자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바디 셰이밍'과 정상성의 정치

겪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겠지만 사회의 이 같은 외모 지적 문화는 지나치게 만연하며 그 수준도 심각할 정도다. 때문에 민우회에서 내가 참여한 캠페인 이전에도 타인의 몸에 대한 무례한 언급은 하지 말자는 캠페인은 늘상 있어왔다. 솔직히 활동 의제로 삼기에 민망할 정도다. 다른 사람의 신체에 대해 함부로 모욕을 주거나 비난하지 말자, 이건 너무도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야기의 방향을 바꿔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에서 '왜 그러는가'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무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의 외모를 품평하길 멈추지 않을까. 무려 당사자 앞에서도.

사실 나는 누군가의 몸을 품평하는 바디 셰이밍(Body Shaming) 문화가 공동체에서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정상성의 정치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를테면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을 일탈적 존재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추방하려 하거나 혹은 포섭하는 경우에도 한정적인 사회적 위치만을 부여하는 것 말이다.

이 같은 정상·비정상의 구도는 위계를 형성하고 이것이 만들어 내는 효과는 다양하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비대칭적 관계가 소수자들이 적극적인 권리를 요구하는 능동적인 존재가 되기를 막는다는 점이다. 기득권자들은 소수자들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요구하는 대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고분고분한 시혜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자신들의 인정 정도나 구하길 원한다.

몸매 품평을 하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진행 중인 '머리 어깨 무릎 발' 캠페인의 이미지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진행 중인 '머리 어깨 무릎 발' 캠페인의 이미지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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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셰이밍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특정한 몸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을 하거나 동시에 직접적인 비난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런 신체를 드러내지 않기를 요구한다. 다른 소수자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저 다른 몸을 가진 것에 불과할 뿐이데 비정상적인 사람인냥 치부되고 만다. 그래서 신체의 교정을 요구하거나 혹은 자유롭게 옷을 입을 수 없도록 제한한다.

많은 경우 외모 지적을 받은 사람들은 움츠러들고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된다. 문제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몸을 변화시키고자 하거나 감추고자 한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즉 누군가의 몸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일은 위계적인 권력 관계를 형성한다.

어쩌면 외모 지적을 하는 사람이 원하는 바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눈치를 보게 만드는 것. 자기 앞에서 몸을 낮추도록 하는 것. 상대방을 자기보다 작은 존재로 만들고 통제하고자 하는 것. 이런 식의 행동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까.

나와 친구들은 집 밖을 나서기 전 옷장 앞에서 늘 고민한다. 어디까지 드러내고 어디까지 가려야 할까. 그리고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와 비슷한 체형을 지닌 친구들을 보면 우리의 차림새는 늘상 비슷하다. 자유롭게 입는 것은 비슷한 고민을 지닌 사람들과 모일 때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때에도 공공장소에 가면 친구들은 늘상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곤 한다. 하지만 이제는 묻고 싶다. 정말 우리는 그런 존재들인가.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무슨 자격으로 그런 것을 요구하고 우리의 몸을 부끄러운 것으로 만드는가.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무슨 자격으로 그런 것을 요구하고 우리의 몸을 부끄러운 것으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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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아름답다

서두에서 내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준 이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가령 한 친구는 어디서 구해왔나 싶을 정도로 강렬하고 매력적인 의상을 입고 등장하곤 하는데, 그 옷들은 그녀 특유의 활달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사람들은 그 친구가 '뚱뚱하다'고 말한다지만 난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당당한 제스처를 취하며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서 강인함을 느꼈던 적이 있고 이것이 내가 그녀의 몸과 관련해서 받은 인상의 전부다.

또 누군가는 내 친구가 지나치게 왜소하다고 하지만 나는 그녀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말을 할 때에 특유의 예민한 카리스마를 느끼기도 한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내심 부럽다. 그리고 이것도 내가 그녀의 외모와 관련해서 받은 느낌의 전부다.

말하자면 내가 서술한 인상들은 명확하게 그 친구들의 신체와 외형에서 받은 것들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누군가의 외모를 인식하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이다. 또한 외모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꼭 품평의 형태여야 할 필요도 없다. 사람들이 그어 놓은 편협한 기준에서 벗어나고 다른 말하기 형식을 택할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서로의 아름다움은 늘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 사회가 개성이 실종된 공간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양한 몸들을 편견이 가득한 시선으로 보고 이를 숨길 줄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나와 친구들은 모두 비슷한 '정상'의 몸을 가져야만 할까. 하지만 그전에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무슨 자격으로 그런 것을 요구하고 우리의 몸을 부끄러운 것으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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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비즈룩' 입으라더니... "애들이라도 꼬셔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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