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일우 신부(귀화 전 이름 존 데일리, 1935~2014)에 대한 기억은 제각각이다. 그와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던 미국의 가족, 친구들은 정일우 신부를 두고 재미있는 친구라고 했다. 정일우 신부와 함께 예수회에서 활동했던 성직자들은, 서강대 교수직을 박차고 빈민 운동에 뛰어들었던 정 신부님의 정신을 흠모한다. 카톨릭 예수회 소속의 모범적인 성직자 이면서, 고 제정구(1944~1999)와 함께 한국 빈민 운동의 대부로 불리던 정일우 신부님의 고귀한 삶은 여전히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

 김동원 감독 신작 다큐멘터리 영화 <내 친구 정일우>(2017) 한 장면

김동원 감독 신작 다큐멘터리 영화 <내 친구 정일우>(2017) 한 장면 ⓒ 푸른영상


<송환>(2003) 이후 무려 14년 만에 장편을 만든 김동원 감독의 신작 <내 친구 정일우>(2017)은 오랜 세월 정일우 신부와 함께 했던 김 감독이기에 가능했던 휴먼 다큐멘터리이다. 1986년 10월 당시, <상계동 올림픽>(1998) 촬영으로 정일우 신부와 인연을 맺었던 김동원 감독은 그 이후부터 정일우 신부와 좋은 친구로 지낸다. 김동원 감독 외에도 정일우 신부는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따르는 사람도 많았다.

정일우 신부는 세상 그 누구와도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좋아했다. 단순히 종교적인 전도, 포교 목적에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국 가톨릭 교회가 바로 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정일우 신부는 자신의 신념대로 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고자했고, 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정일우 신부를 따르던 가톨릭 예수회 성직자들과 신도들은 정 신부의 생전 모습을 두고 예수님, 혹은 하나님의 재림이라고 한다. 만약 예수가 살아계셨다면, 아마도 정일우 신부와 같은 모습이지 않았을까. 정일우 신부는 언제나 도시 빈민들의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따뜻한 이웃이고, 친구였다. 정일우 신부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조금씩 다르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영원한 친구'라는 정의는 공통된 의견이다.

정일우 신부와 인연이 있던 4명의 화자들이 번갈아 내레이션을 맡았던 <내 친구 정일우>는 정일우 신부의 일대기를 다루면서도, 4개의 주제로 나눠진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만큼, 정일우 신부는 '빈민 운동의 아버지', '훌륭한 성직자' 등 몇 가지 단어로 쉽게 정의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평생을 빈민 운동에 바쳤던 정일우 신부의 삶은 초지일관이지만, 정일우 신부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느냐에 따라 정 신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제각각이다.

상계동 빈민운동과 젠트리피케이션

크게 4개의 내레이션과 주제로 나눠지는 <내 친구 정일우>에서 가장 뼈아프게 다가오는 에피소드는 김동원 감독이 직접 내레이션을 맡았던 상계동 철거 당시 상황들과 그 이후의 이야기이다. 1973년 청계천 난민촌 생활을 시작으로 양평동, 경기도 시흥 등에서 빈민 운동에 참여했던 정일우 신부는 1980년대 중반 상계동 판자촌이 강제 철거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달려가 상계동 주민들과 함께 하고자 했다.

신부님의 열렬한 투쟁과 김동원 감독의 카메라 덕분에 당시 상계동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많은 화제가 되었고 이후 상계동 주민들은 부천으로 집단 이주를 시도했으나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과거 성공적으로 조성 되었던 시흥의 복음자리, 한독 주택, 목화마을처럼, 상계동 또한 빈민들의 공동체 마을로 만들고자 했던 정일우 신부는 실패에 낙담하고, 과거 판자촌, 철거의 기억들이 송두리째 사라진 상계동은 중산층의 주거공간으로 탈바꿈된다. 그 때의 기억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김동원 감독이 남긴 <상계동 올림픽>으로 당시 있었던 끔찍한 상황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정일우 신부의 헌신적인 투쟁에도 불구, 상계동 빈민 운동은 실패로 끝났고, 몇몇 주민들이 중산층 입성에 성공을 거두었다는 씁쓸한 이야기만 전해진다. <상계동 올림픽> 이후에도 부동산 투기 자본과 결탁한 정부의 강압적인 공권력 행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자의 탐욕에 의해 생계터전을 잃고 쫓겨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지난 23일 방영한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아래 <알쓸신잡>)에서 경주를 포함 전국에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비교적 빈곤 계층이 많이 사는 정체 지역에 진입해 낙후된 구도심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주민을 몰아내는 현상)을 안타까워하던 유시민은 그럼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을 근본적으로 막는 방법은 지금으로서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 지역에 터잡고 살던 원주민들이 그 지역을 탐내는 부유한 사람들에게 속수무책 밀려나는 현상을 마냥 팔짱끼고 지켜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본에 대한 탐욕이 많은 것을 삼켜버린 우울한 현실 속에서, 일찌감치 도시 빈민 문제와 철거에 눈을 뜬 김동원 감독은 이제 고인이 되신 정일우 신부의 일화를 꺼내기 시작한다. 정일우 신부가 생전 야심차게 추진했던 도시 빈민 사업들의 상당수는 흐지부지 되었고, 그가 했던 많은 일들은 이제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로만 다가온다. 정일우 신부가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내친구 정일우>는 관객들에게 도시 빈민, 공동체 운동에 관심가지고 참여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관객들에게 <내친구 정일우>는 일평생 고귀하게 살아왔던 가톨릭 성직자의 감동적인 일대기로 다가올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상계동 철거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제 철거, 퇴거 역사를 되짚게 하는 귀중한 다큐멘터리이다. 탐욕으로 가득찬 우울한 현실 속에서 평생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했던 정일우 신부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일 것 같다.

지난 20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한국독립영화 신작전: 관찰과 개입' 기획전에서 특별 상영한 김동원 감독의 <내 친구 정일우>는 7월 1일 한 차례의 상영을 남겨 두고 있다. 이후에는 시사회 등을 통해 미리 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의 성원으로 극장 개봉도 추진 중이다. 종교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내 친구 정일우>를 보고 조금이나마 행복해지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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