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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공대 김모(47) 교수 연구실에 폭발물을 둬 김 교수를 다치게 한 혐의(폭발물 사용)를 받고 있는 대학원생 김모씨가 지난 15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대문경찰서를 나서고있다.
 연세대 공대 김모(47) 교수 연구실에 폭발물을 둬 김 교수를 다치게 한 혐의(폭발물 사용)를 받고 있는 대학원생 김모씨가 지난 15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대문경찰서를 나서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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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볕이 조금 따가워지기 시작하던 아침에 당신이 벌인 사건에 대해 들었습니다. 방송을 진행하는 앵커는 도심 테러가 발발했다며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하고 있었지요. 당신이 만든 급조폭발물은 꽤 조악해서 피해자가 부상을 입는 정도에서 그쳤지만, 어쨌든 서울 시내 유명 대학의 캠퍼스에서 테러로 추정되는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은 그 자체로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당신이 대학원생인 걸 그렇게 금세 알았을까요? 어떤 사람은 아무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는데도 당신의 지도교수가 당신에게 '갑질'을 해왔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라고도 했어요. 혹은 '방법은 잘못되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라면서 마치 당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들을 해요.

저는 당신을 잘 모르지만, 그리고 당신이 어떤 동기에서 테러를 저질렀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는 조금 떠올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야가 조금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저도 당신처럼 대학원생이었거든요.

'절대권력' 교수 앞에 선 대학원생의 고통

당신이 다니던 학교의 학비가 전국에서 손에 꼽는다는 건 유명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종종 수업 한 시간에 투입되는 비용이 얼마쯤 되는지 계산해 보면서 자조적으로 웃곤 했습니다. 거기엔 이미 부모님께 손을 벌린 사람들, 미래를 저당 잡힌 채 은행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 자기 통장에 찍힌 0의 숫자를 줄여가며 피 말리는 심정으로 앉아있는 사람들이 혼재해 있었지만, 자조 섞인 웃음은 스스로 짊어진 돈의 무게를 흘려 넘기기 위해 우리가 공유한 진통제였어요.

학비만 비싸다면 차라리 국가의 2.7% 이자율을 믿고 잠시 걱정을 미뤄둘 수 있을지 모릅니다. 대출금에 찍힌 숫자는 워낙 비현실적이라 당장 크게 와 닿지는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하루도 피해갈 수 없는 당면과제가 있으니 오늘 먹을 것과 잠들 곳의 비용입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어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동료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만큼 독립된 세대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많은 대학원생들의 지상과제입니다. 주간에 수업과 본인 연구에 시간을 쏟는 경우 일정한 알바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일을 구한다 하더라도 일하는 만큼, 혹은 그 이상의 시간적 손해를 감내해야 하지요. 그래서 한때는 이공계의 동료들이 교수 개인 랩에 들어가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월급조의 연구비를 다달이 받을 수 있으면 생활은 유지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지요.

그렇지만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교수 개인의 인격과 능력에 따라 랩 생활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가끔은 귀로 직접 듣고도 믿기지 않는 사례들이 많았죠. 밥을 한 시간 동안 먹었다며 일렬로 세워 놓고 줄줄이 뺨을 때린다든지 하는 폭언과 폭행은 너무 흔한 사례였고요, 왜가리가 대나무 숲에서 운다고 박사들이 3교대로 8시간 동안 쫓은 기괴한 이야기엔 웃음밖에 안 나왔습니다. 상대의 '밥줄'을 쥐고 있다는 건 참 큰 권력이구나 싶었어요.

졸업이라는 '목줄'은 또 어떻고요? 같은 분야에서 이미 10년의 세월을 쓴 박사과정 학생들은 졸업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교수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막을 도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학회에 제출할 논문을 혼자 다 쓰고도 교수가 다른 사람의 졸업 요건을 맞춰준다며 저자를 바꾸라고 해도 저항할 수 없고, 졸업을 강제로 지연시켜도 그러려니 하면서 행여 관계라도 틀어질까 노심초사해야 하는 마음의 지옥은 어찌 감당해야 할까요.

저는 당신이 그 나름대로의 무게를 졌으리라고 생각해요. 다만 당신이 질 수 있는 무게의 한도가 남들의 기준에 한참 못 미쳤을 뿐일 거고요. 화가 난다고 누구나 폭약을 만지작거리지는 않으니까 많은 사람들은 그냥 삽니다. 보통은 '익숙한 무기력'을 선택하면서요. 다른 말로는 "원래 그래"라고도 하더군요. 어떤 부조리에 부딪혔을 때 달리 방도가 생각나지 않으면 "원래 그래"라는 말은 최선의 방어가 됩니다.

당신의 '범죄'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지난 13일 오전 서울 신촌의 연세대 1공학관 건축학과 김모 교수 연구실에서 폭발사고가 발생, 경찰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신촌의 연세대 1공학관 건축학과 김모 교수 연구실에서 폭발사고가 발생, 경찰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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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버틸 재간이 없기도 하고요. 텀블러에 나사못을 담기에는 아직 책임져야 할 각자의 삶이 기니까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대학원생인 당신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어도 사람들이 쉽게 누군가로부터의 억압이나 불합리를 떠올린 건 각자의 삶에 선명하게 새겨진 "원래 그래"의 그림자가 크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꼭 당신이 속한 대학원생 집단만의 일은 아닙니다. "원래 그래"는 이름만 바뀌어서 저항할 수 없는 규범으로 자리를 잡고 있거든요. 그것은 때로 '랩의 정책'이었다가 '학과 전통'으로, 학교 밖으로 나가면 '이 바닥 사정' 같은 이름이 되기도 하더군요. 대개 누구나 견딜만한 작은 불합리에는 쉽게 수긍하게 됩니다. 그것들을 지킴으로써 얻어지는 편리와 안정감이 있기도 하지만 특출하게 인격이 나쁜 사람이 아닌 이상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그것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악의 없는 타인이 권하는 불합리가 사람들의 일상을 채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들 알고는 있어요. 그 중에 어떤 것은, 그래서는 안 되는 경계선을 훌쩍 넘어선다는 것을. 그래서 당신의 범행을 보며 자신들의 일상에 있던 어떤 불합리한 지점들이 '찔림'으로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르죠.

당신의 행위는 범죄입니다. 행위에 대한 책임도 마땅히 져야 할 겁니다. 그렇지만 이와는 별개로 당신의 범죄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성찰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도 갑으로만 살 수 없고 을로만 살기도 어렵습니다. 그로 인해 어떤 불합리들은 짊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향유하는 것이 되기도 하죠. 손쉽게 갑과 을을 상정해 당신을 을로, 교수를 갑으로만 나눠 성토했던 이들 중에 비슷한 불합리를 향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으리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대학원생이 아닌 저도 "원래 그래"라고 방어해야 했던 어떤 관습들을 되새겨 보겠습니다.


태그:#연세대테러, #부조리, #대학원,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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