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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전환연구소(www.igt.or.kr)는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녹색 전환의 다양한 상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녹색의 시각으로 새롭게 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하는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옥희살롱'의 공동대표 전희경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녹색전환연구소>사이트(www.igt.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기자말

해가 갈수록 한국의 인구 고령화 문제는 심각한 것처럼 이야기된다. 정부는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언론은 고령화 문제를 국가적 위기상황인 것처럼 언급한다. 한국사회의 나이듦에 대한 불안과 공포도 점차 커지고 있다.

노년인구가 많아지는 것은 의료과학의 발달과 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계속 늘어나 "100세 시대"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많은 이들이 생명연장을 꿈꾼다. 이처럼 고령화는 한국사회가 이룬 사회적 발달과정의 결과임과 동시에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자연스러운 현상을 마치 없애야 할, 해결하지 못한 미과제인 것처럼 다루는 것은 제대로 된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은 고령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년, 나이, 질병, 죽음, 돌봄" 등 시간과 몸을 중심으로 한 주제들에 새로운 철학과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이듦의 과정 전체가 존엄할 수 있는 사회, 다양한 나이대가 호혜적으로 연대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창립했다는 '옥희살롱'은 새로운 사유와 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즘 기반의 민간연구소다. 지난 5월 22일, '옥희살롱'의 전희경 공동대표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옥희살롱 창립총회, 전희경 공동대표
 옥희살롱 창립총회, 전희경 공동대표
ⓒ 옥희살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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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희살롱'이란 이름이 인상적인데,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
"여성주의 연구가 제도 아카데미 안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시민들과 만나며 소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롱'이라는 이름을 먼저 떠올렸다. 앞에 붙일 이름을 생각하다가, 우리 역사 속의 어떤 세대에서 흔한 여자 이름이었던 '옥희'가 어감상 '오키(OK)'로 들리기도 하여 선택하게 되었다. 누구나 와서 차 한잔 나누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연구소,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연구소가 되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이름이다. 우리 활동은 홈페이지(http://okeesalon.org/)나 페이스북(@okeesalon)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그럼 '옥희살롱'의 핵심주제는 "나이, 노년"과 관련된 거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이'라는 주제는 공통적이지만 워낙 방대한 이슈들과 맞닿아 있는 주제여서, 현재 그 중에서도 특히 어디에 세부 관심이 있는가는 조금 다르다. 굳이 나눈다면 연구소를 함께 만든 김영옥 선생님(상임대표)이 "노년"과 "인권" 쪽에 오랜 관심과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면, 상대적으로 나는 '질병'이나 '세대' 같은 데 조금 더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두 서로 연관된 주제들이다."

페미니즘 기반의 지식생산지에서 말하는 "나이"

특히 나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인식론적인 질문이 필요하다고 본다. "누가 나이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나", "몇 살이 나이 연구하기에 적합한가", 이런 질문들에 오랫동안 관심이 있었다. 또 세대 간 관계, 상대적으로 젊다고 생각되는 연령층의 나이 경험, 건강과 질병, 커뮤니티와 돌봄,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다. 아마 이건 나의 '상대적인' 나이와 지역활동(살림의료협동조합 여성학 이사를 역임 중)을 통한 연관성에서 비롯되는 특징인 것 같다.

김영옥 선생님의 경우 평소 인권 관련 활동에 깊이 관여해오셨고, 노년 문제도 철학적 바탕 위에서 인권과 문화의 키워드로 다룬다. 그동안 해온 많은 인터뷰와 필드워크를 통해 노년층 안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갈래와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에 해박하시고 많은 작업을 해오셨다.

옥희살롱 "바깥대학원", 김영옥 상임대표
 옥희살롱 "바깥대학원", 김영옥 상임대표
ⓒ 옥희살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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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스트 모먼트'라는 책을 보면 전희경 대표가 본인의 페미니스트 이력을 "좌파 페미니스트에서('여성활동가모임'과 '100인위') 급진/분리주의 페미니스트(언니네트워크), 그리고 다시 마을에 기반한 여성주의의료협동조합 활동가(살림의료사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옥희살롱' 활동은 지역활동에 이은 시즌4라고 할 수 있을까?
"그보단 시즌3이 두 개의 장에서 펼쳐지고 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옥희살롱'과 '살림의료사협' 모두 포지션이나 활동 내용은 다르지만 내용적으로는 연결된다. 건강, 질병, 커뮤니티, 돌봄, 안심할 수 있는 노년, 존엄한 죽음... 이런 '옥희살롱'의 주제들이 모두 살림 활동과도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 이제까지 추구해온 페미니즘 정체성이 '옥희살롱'에도 많이 반영되어 있다. 생애문화연구소인 '옥희살롱'에 페미니즘 시각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페미니즘 시각이 필요하지 않은 문제는 없다고 본다. (웃음) 페미니즘은 모든 면에서 얽혀 있다보니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연구의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페미니즘 시각에서 분석하지 않으면 분석이 아예 안 되거나, 분석해서 답을 내놔도 그 답이 엉뚱하거나 둘 중 하나다.

예를 들어, 노년 이슈를 다루기 위해 노년의 삼중고라 일컬어지는 고독과 빈곤과 질병을 분석한다고 치자. 각 단어를 깊이 파고 들어가면 결국 그동안 페미니즘이 분석해 왔던 문제들과 만나게 된다. 빈곤의 여성화라든지, 경력단절이 미치는 영향이라든지, 돌봄의 성별분업이라든지, 부권적 의료모델이라든지... 이런 모든 것의 결과로서 노년을 진단해야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제대로 실마리를 풀 수 있다. 한 인간이 어린 시절부터 청년, 중년, 장년을 지나 노년이 될 때까지 살아온 삶 속에서 어떤 구조적인 권력들이 층층이 쌓여 지금에 다다르게 되었는가를 분석할 때 더 좋은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옥희살롱 "바깥대학원", 전희경 공동대표
 옥희살롱 "바깥대학원", 전희경 공동대표
ⓒ 옥희살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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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관련된 문제도 어떤 권력이 문제인지, 어떤 부정의함인지, 어떤 불평등인지를 잘 분석하려면 각각의 그 구조부터 분석되어야 한다. 모든 사회 구조는 젠더 관점 없이는 분석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모든 연구에 페미니즘 시각은 필수불가결하다.

우리가 페미니즘이 여성운동가들뿐만 아니라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부장제라고 하는 것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억압체제이기도 하고, 이게 다른 억압에도 중요한 매개고리이자 원형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관점을 가지면 젊음과 늙음, 장애, 국적 등의 문제도 새롭게 분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생태문제도 마찬가지다."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

"고령화 사회에 대한 담론을 보면 정부의 정책이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노년인구가 많아지면 부양과 돌봄 문제가 생기니까 이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추가적으로 가외비용이 들어가는 것처럼 여기면서. 하지만 서로 의존하고 돌보는 것이 원래 인간의 존재조건이자 그동안 인간사회가 유지된 비결인데 그것을 '비정상', '짐', '민폐' 이렇게 정의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인간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까지 안 가더라도 부양과 돌봄노동의 젠더불균형, 즉 여성이라는 특정 성별에게 이런 종류의 노동이 집중되어 왔던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이야기 안 한다면? 진짜 이상한 답만 나오는 거다. 마치 저출산 문제에 80조를 쏟아붓고도 단 1%도 출산율을 올릴 수 없었던 것처럼. 진단을 똑바로 못하면 답도 이상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고령화는 최근 우리사회의 주요 의제 중 하나다. 그런 문제에 페미니즘적 개입이 있어야지만 당장 투입되고 있는 예산들이 이상한 답을 내놓는데 낭비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불효자식방지법' 같은 게 왜 이상한 답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럴 때  이전에 페미니즘이 해왔던 작업들이 통찰을 줄 수 있다."

- "불효자식방지법" 말고도 터무니없는 정책이나 제안들이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특히 고령화나 저출산 문제가 사회적약자(노년, 여성)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렇게 비현실적이고 말도 안 되는 대안책이 나오는 건 아닌가 싶다. 이런 상황에서 이 문제들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진 연구소의 등장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그럼 언제부터 이와 같은 연구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30살 전후였다. 한국에서 여자 나이 서른은 뭘 증명하라고 요구받는 나이다. 가족 안에서 여성성역할을 맡거나 그걸 안 하면 그만큼의 다른 성취를 보여주라는 식의. 그때 '나이라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사회체제구나, 여기에 뭔가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20대 때 제대로 안 챙긴 몸이 아프기 시작하기도 했다. 한껏 꾸미고 나갔는데 어디 아프냐는 소리 듣고(웃음). 여기저기서 아줌마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분석하고 싶은 게 많았다. 나 자신부터가 분석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던 게, 그동안은 여성학 지식에서 궁금하다 여기면 늘 볼 책이 있었는데 나이와 관련해서는 이론서도 논문도 별로 없고 뭘 봐야 될지 모르겠더라. 왜 이 주제에 대해서 여성학 지식이 이정도로 부족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그 주제로 쭉 생각하다가 30대 중반부터 박사논문 주제로 삼고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옥희살롱 "살롱영화제-아픈 사람, 돌보는 사람"
 옥희살롱 "살롱영화제-아픈 사람, 돌보는 사람"
ⓒ 옥희살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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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치도 하고 인터뷰도 하며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넌 젊은데 왜 이걸 하냐.", "너가 이걸 연구하기엔 너무 젊다." 이런 피드백이 많은 거다. 결혼한 여성학자만 가족에 대해 논문을 쓰지 않고, 성폭력 피해경험이 있어야지만 성폭력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경험을 지식화하는 것에 대해서 풍요로운 인식론적 통찰이 있는 곳이 바로 여성학 지식이라는 장이었는데, 이상하게 유독 나이에 대해서는 경험이 직접적으로 지식을 가져온다는 식의 단순한 결론이 너무 많았다.

물론 "아직 연구자가 젊어서 그런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단순히 편견일 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실제로 나이가 덜 들어서 알기 어렵거나 상상력을 갖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연구자의 자격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연구자의 위치와 시선의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분석이 나온다. 그런 것처럼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보이는 나이의 구조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박사논문을 썼다. 겨우(웃음)."

- 박사논문까지 쭉 대학 안에서 공부를 이어오다가 현재는 대학 바깥으로 나와 '옥희살롱'을 차린 셈이다. 한국에서 지식생산지는 보통 대학을 중심으로 한 제도 아카데미다. 이런 제도권과 '옥희살롱'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비정규직 시간강사로 일하며 연구하는 연구자가 많은 현재 한국 상황에서 두 가지를 단순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굳이 말하자면... 가장 큰 차이는 일차적인 청중 내지는 독자가 누구인가가 아닐까 싶다.

직업적 연구자들에게 혹독한 대학과 연구지원 구조도 제도권에서 연구하기 어려운 점이다. 어떤 사람이 대학 안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논문 편수를 늘려야 한다. 교수 채용에 가장 중요한 점수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 길을 선택하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트랙 자체가 다르다는 거다.

어떤 트랙으로 가든 저마다 기회비용이 있다. 학술지에 싣는 논문의 가장 중요한 독자는 익명의 심사위원, 학회에서 토론할 사람, 학회에 들으러 오는 사람이다. 즉, 다른 연구자가 일차적 청중이 된다. 이와 달리 지금 트위터리안에게 어떤 언어가 필요한가, 소위 유명인이라는 사람이 유명세를 무기 삼아 어떤 막말을 하는가. 이런 걸 의식하면서 개입하려고 쓰는 글은 다른 글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지식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가 닿아야 할 지식인가를 고민하면서, 나는 아카데미 안에 있는 학자들에 그치지 않고 더 넓은 청중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청중은 여성운동가들, 페미니스트로 뭔가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혹은 직업이나 전공과는 무관하게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김영옥 선생님도 인터넷 칼럼이나 학술지가 아닌 다른 지면에 실리는 비평글 같은 걸 많이 쓴다. 왜냐면 우리가 생각하는 청중, 개입하고자 하는 일차적 현장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제도권 아카데미 바깥의 청중과 만나기 위해 만드는 지식

- 척박한 연구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민간연구소의 재정 확보는 늘 어려운 일이다. 비영리단체 지원금을 받으려면 실무가 많아지니까 연구할 시간이 부족하고, 회비를 늘리려면 회원 수를 늘리거나 후원을 늘려야 하는데 이 또한 만만찮은 일이다.
"그래도, 어려워도 이게 바로 돌파구라고 생각한다. 다른 좋은 길이 있는데 그 길을 안 가고 '고난의 길'을 가는 건 아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나은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온 거다.

여성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 동료들도 있다. 대학이나 연구원 같은 학술적인 곳이나 정책 연구를 하는 곳들 중에 그런 일자리가 많다. 그런데 나는 정책연구엔 관심이 별로 없었다. 정책연구도 물론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관심이 운동 쪽으로 기울어 있어 그렇다. 나의 페미니스트 정체성은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생긴 게 아니라 그 전에 학생운동을 하면서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운동단체 활동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신을 액티비스트라고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뭐가 현안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더 큰 관심이 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출근할 자신이 없어서 직장을 못 가는 것도 있다(웃음).

옥희살롱 운영위원준비모임
 옥희살롱 운영위원준비모임
ⓒ 옥희살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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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경우 지금 내 또래 연구자들은 거의 아무도 정규직 교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일자리 자체가 없으니까. 나도 현재 비정규직 지식노동자로서 대학 강단에 서고 있다. 매 학기 강의를 몇 개씩 뛰어야 이번 학기는 좀 먹고 살 수 있고, 학기 단위로 인생을 산다.

물론 기본적으로 학위를 딴 자의 책임 - 연구자로서 좋은 연구를 해서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구하기엔 강의가 너무 많고, 강의를 안 하면 먹고 살 수가 없는 교착상태에서 돌파구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연구에 대한 욕구가 계속 있었기에 비슷한 또래 친구들과 '나중에 우리끼리 연구모임이나 연구소를 만들자'는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연구소를 만들자는 김영옥 선생님의 제안을 받은 거였다. 페미니스트이면서, 사회 전반의 문화적 흐름이나 운동 흐름에 관심이 있고,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삼박자를 다 갖춘 연구자는 그동안 못 만났기에 귀한 만남이었다. 이것이 주는 엄청난 소중함이 있다." 

옥희살롱 "바깥대학원-하루하루 나이 드는 당신과 나, 우리의 자율"
 옥희살롱 "바깥대학원-하루하루 나이 드는 당신과 나, 우리의 자율"
ⓒ 옥희살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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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분은 이제까지 따로 활동하다가 '옥희살롱'을 통해서 함께 하게 됐다.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제외하면 나이 차이를 비롯해 서로 다른 차이가 존재할 것 같다.
"같은 연구소라고 해서 클론 두 개가 움직이는 게 아니다. 다른 생각을 하는 두 연구자의 만남인 거다. 그런 차이가 연구자로서 많은 자극이 되고 연구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김영옥 선생님과 나는 연배가 15년 차이다. 나는 이렇게 연배 차이가 큰 팀워크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계속 또래 집단 페미니스트 그룹 안에 있었기에. 그래서 내겐 처음부터 큰 도전이기도 했지만 이 연배차이 덕분에 훨씬 풍요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기도 했다. 하나의 현상을 더 입체적이고 복잡하게 분석할 수 있으려면 그만큼 우리가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나이를 '나이 든 사람만의 문제'로 간주하는 편견이 심한 사회에서, 연구자들의 다양성은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 입장에서는 위계질서, 나이 많은 사람 입장에서는 예의 문제이기도

"나이가 젊은 사람 입장에서는 위계질서라고 느끼는 것도 나이가 많은 사람 입장에서는 예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관건은, 한쪽은 위계로 느끼고 다른 한쪽은 예의로 느끼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두 사람이 그것을 공동의 테이블 위에 안건으로 올려놓을 수 있는가 하는 거다. 한국 사회는 연배 차이가 많이 나는 관계에 대한 상상력과 모델 자체가 매우 부족하다. 걸핏하면 '딸 같아서', '자식 뻘' 등의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동료적/시민적 관계 자체가 동년배들의 커뮤니티 안에서만 정의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연륜과 경험이 존중되면서도 민주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

올해 옥희살롱의 목표 중 하나는 새로운 연구자를 영입하는 것이다. 나이가 위계가 되지 않고 각자가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존중하면서 서로에게서 자극받아 더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관계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박사논문부터 시작해 나이듦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지속해왔다. 연구자도 나이를 먹는다. 본인의 나이듦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앞으로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지 궁금하다.
"계속, 끝까지,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이 내게 제일 중요한 화두 같다. 이 질문이 박사논문을 이런 주제로 쓰게 된 동기가 되기도 했다. 중년의 페미니즘, 노년의 페미니즘은 젊을 때의 페미니즘과 무엇이 다르고 또 달라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 죽을 때까지 페미니스트로 살고 싶다는 말은 다른 페미니스트들 곁에서 살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팀워크가 없으면 페미니즘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와 팀이 되고 싶고, 누구와 발을 맞춰가며 살고 싶고, 누구를 곁눈질하며 살고 싶고, 누구를 참조하면서 혹은 누구를 의식하면서 사는가가 인생을 다르게 만든다고 본다."

계속 페미니스트로 살고 싶다

"계속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내가 누구를 만나서 밥을 먹고, 어떤 현안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런 정보를 어떻게 확보하고, 신기술이 나오면 배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끊임없이 삶의 구체적인 질문들에 대답하는 과정인 것 같다. 아프면 또 생각이 많아진다. '시름시름한' 상태에서도 의미 있게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면서 살 수 있으려면 뭘 배워둬야 하고 뭘 포기해야 할까, 그런 생각도 많이 한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다. 누구나 그런 고민을 하겠지만."

-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시작인 것 같다. 응원하고 싶다. 끝으로 녹색전환연구소가 마련한 인터뷰의 마지막 공통질문이다. 녹색전환연구소에서는 기존의 삶과 다른 녹색전환의 삶을 연구 중이다. 이런 "녹색전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녹색전환을 생각하면 '정의로운 돌봄', '자립적 의존'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런 키워드는 사회 모든 영역에서 전체적으로 구조적 재편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가령 "노동시간 단축" 정책이나 "돌봄의 사회화" 같은 슬로건도 녹색전환과 직결된 이슈들이다. 이미 페미니스트들이 많이 해왔고 '옥희살롱' 프로그램에서도 많이 주장해온 것이기도 하다.

돌봄의 정의로운 분배와 자립적인 의존이 모두에게 가능한 사회를 향해서 나아가려면 적어도 그런 등대를 바라보면서 가야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같은 등대를 바라보고 있어도 그 등대까지 가는 긴 과정이 있고, 그 과정에서 계속되는 성찰성("까칠함")과 더 많은 페미니즘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없으면 등대가 오염되거나 등대를 잃어버리게 된다.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본 상식으로 페미니즘을 공유하길 바란다. 사회 분석의 기본 인식론으로서 필요하다. 페미니스트 성찰성과 비판의식을 "까칠함"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녹색', '전환' 이런 단어들이 통념적으로 뭔가 부드럽고 낭만적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진짜 '녹색 전환'이 되려면 피땀을 흘리고 첨예한 투쟁이 필요하지 않나.

그래서 녹색전환연구소나 녹색당처럼 녹색을 깃발로 들고 있는 사람들이 중요한 판단 기준을 제시해주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지 등대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는 작업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낭만성도 없는 녹색'이 필요하다. 그 지점에서 녹색전환연구소가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박이상 (녹색전환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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