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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지난해 5월 화순 적벽을 배경으로 찍은 모습입니다.
 아버지. 지난해 5월 화순 적벽을 배경으로 찍은 모습입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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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에 통장하고 도장 있다. 그 돈, 장례비로 써라. 내 장례 잘 치러라. 나는 할 만큼 다 했다. 나 죽는다고 눈물 바람 하지 말아라. 형제들끼리 화목하게 잘 살아라."

아버지께서 타계하기 전, 몇 차례에 걸쳐 자식들한테 남긴 말씀입니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중환자실로 들어가시기 전에는 어머니한테 "그동안 밥 해주느라 고생했다. 고맙다"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속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병상에서도 당신이 돌아갈 묏자리까지 직접 챙기셨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자식들에게 부담 한 줌 안 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심지어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할 때면 '일당'까지 챙겨주셨습니다. 가끔은 송구스러울 만큼 용돈도 두둑하게 주셨습니다. 그 아버지께서 지난 24일 새벽,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분향소. 지난 5월 24일 오전, 바로 차려진 분향소 모습입니다.
 분향소. 지난 5월 24일 오전, 바로 차려진 분향소 모습입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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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말을 못 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용서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뱉지 못했습니다. 그런 말을 할 면목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생전 아버지의 성격 그대로인지 모르겠습니다.

숨이 멎은 아버지의 몸이 빠르게 식어갔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달려온 운구차가 아버지를 모시고 어두운 밤길을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마음이 급해진 건 그때였습니다. 운구차를 급하게 쫓아갔습니다. 체온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뵙고 싶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주검이 냉장실로 들어가기 직전, 다시 마주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입맞춤을 했습니다. 난생처음이었습니다. 한 번, 두 번, 또 한 번 더 입을 맞췄습니다. 마음속으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를 되뇌었습니다.

염을 마친 아버지. 입관에 앞서 아버지 앞에서 어머니가 흐느끼고 계십니다.
 염을 마친 아버지. 입관에 앞서 아버지 앞에서 어머니가 흐느끼고 계십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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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영원한 안식처. 지난 5월 26일 담양 선영에서 셋째 며느리가 흙 한 삽을 올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영원한 안식처. 지난 5월 26일 담양 선영에서 셋째 며느리가 흙 한 삽을 올리고 있습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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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가 차려졌습니다. 아버지 영전에 향을 피우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당신을 위해 살지 않으셨습니다. 자나 깨나 자식을 위해 사셨습니다. 마지막 숨을 내쉬는 그 순간에도 자식만을 생각하며 "눈물 바람 하지 말고, 화목하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조문객들이 다녀가고, 늦은 밤이 되면 연거푸 술을 마셨습니다. 맨정신으로 앉아있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껏 술에 취해본 적이 없었지만, 취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취한 몸을 이끌고 아버지의 영정 앞에 엎드렸습니다. 영정 속 아버지의 눈과 마주치자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향을 피우고, 겨우 두 번 절을 하고 엎드려 울었습니다.

영원히 다른 세상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 염을 할 때도 매한가지였습니다. 아무 말 못 하고, 눈시울만 적셨습니다. 아버지의 차가운 얼굴을 두 손으로 만져보고, 입술에 저의 온기를 전하며 영면을 빌었습니다.

아버지의 안식처. 지난 5월 26일 아버지의 둘째 아들이 묘지 조성 작업을 거들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안식처. 지난 5월 26일 아버지의 둘째 아들이 묘지 조성 작업을 거들고 있습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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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영면하시길... 지난 5월 26일 아버지의 묘 앞에서 손녀들이 절을 올리고 있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지난 5월 26일 아버지의 묘 앞에서 손녀들이 절을 올리고 있습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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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90년을 사셨습니다. 일찍 세상을 달리한 분들에 비하면, 오래 사셨습니다. 하지만 황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정하셨으니까요. 지난해엔 고흥 거금도, 화순 적벽에도 다녀오셨습니다. 지난 4월엔 세월호가 옮겨진 목포신항에도 발걸음을 하셨습니다.

지난 9일 대통령 선거 날엔 병원에서 외출해 소중한 주권까지 행사하셨습니다. 초기 방광암을 치료하던 중 병세가 악화돼 급성 간암에 폐렴까지 겹친 게 결정타였습니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지 닷새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산천이 짙푸르게 물든 봄날,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동생 옆자리에 아버지를 모시고 밤하늘의 초승달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제가 유별나게 좋아하는 초승달입니다. 이왕지사,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받고 가신 데 대해 위안을 삼았습니다. 이제 자식들 걱정 다 털어버리시고, 아버지께서 평소 좋아하시던 여행 많이 하시길 빌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을 친구분들. 지난해 4월 고흥 거금도 여행 때 김일체육관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오른 쪽에서 네 번째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마을 친구분들. 지난해 4월 고흥 거금도 여행 때 김일체육관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오른 쪽에서 네 번째가 아버지입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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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버지, #장례, #이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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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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