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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느 추운 겨울밤 우리 가족은 굶주리고 있었다. 외출했다가 무슨 사정으로 식사를 못 한 채 늦은 밤 귀가를 했다. 우리 가족은 피곤해서 식사를 준비할 엄두도 못 냈고, 찬거리도 없었다. 피자를 배달시켜 먹기로 했다. 아내가 인터넷으로 피자 가게 전화번호를 검색해서 주문했다.

어떤 피자를 먹을 거냐고 내 의향을 묻는데, 모든 종류의 피자를 싫어하는 나는 애써 따뜻한 아빠 미소를 지으면서 너희(아내와 딸)들의 취향을 따르겠으니 먹고 싶은 것을 아무거나 시키라고 했다. 삼십 분쯤 뒤 현관 벨이 아닌 집 전화벨이 울렸다. 피자 배달원인데 우리 집에 도착을 했으니 '어서 문을 열어' 달란다.

당시 나는 내가 아끼는 땡땡이 잠옷 하의와 내가 자랑하는 '깔깔이'를 입고 있었다. 분명 집 밖으로 나가는 바람직한 50살 먹은 중년 남자의 복장은 아니었다. 그 전화를 받는 순간 배달원이 우리 집 현관문 앞에 있으면서 왜 현관 벨이 아닌 집 전화로 연락을 한 것인지? 내가 이웃을 만날 수도 있는 사회적인 공간인 현관 밖으로 나가는데 적당한 의상을 착용하고 있는지는 1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이 추운 날씨에 최저시급을 벌겠다고 일하는 배달원의 안위가 걱정된 나는 맨발로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먹는 즐거움은 없고 나의 빈 위를 채워주는 역할만을 할 피자에는 관심이 없었고 피자 배달원이 걱정되었다. 현관문 앞에는 배달원이 없었다. 누가 봐도 노숙자의 행색으로 아파트 현관으로 나갔다.

그곳에도 피자를 든 배달원은 없었다. 배달원은 추워서 죽을 것 같았겠지만 나는 그 행색으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집 안에 있는 아내는 '현관 앞에서 피자를 들고 있는데 왜 받으러 나오지 않느냐고 따지는 피자 배달원의 항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사정은 이랬다. 아내는 우리가 사는 김천에 있는 지점이 아닌 상주 지점에 주문했고 참으로 불행하게도 상주에도 우리가 사는 같은 이름의 아파트가 있어서 배달원은 '자연스럽게' 고난의 배달을 나선 것이다. 상주에 있는 우방아파트에서 김천에 있는 우방아파트 주민인 우리에게 피자 수령을 요구한 것이다.

나는 즉각 사과했지만 배달원은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굶주림을 참으며 잠자리에 들려는데 아내가 '다소곳이' 피자 가게 직원에게 사과하는 것을 들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통화 내용을 들으니 피자 배달원은 내가 자신에게 모욕적인 언사로 호통을 쳤단다.

우리 가족의 굶주림 따위보다는, 내 체면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그 행색으로 현관으로 달려나간 나의 진심을 알아주기는커녕 나를 못된 사람으로 모함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괘씸한 피자 가게에 대한 응징 계획을 세웠다.

근무시간이 시작되자마자 피자 가게에 전화를 걸었고 당연히 점장을 찾았다. 전화를 받은 점장은 무슨 이유인지 풀이 죽어 있었고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자신들의 불찰을 이실직고했다. 아내가 애용하는 포털사이트에서 김천 지점을 검색하면 자동으로 상주 지점의 연락처를 안내해주는 오류가 있었단다.

점장은 내가 알지도 못했던 자신들의 잘못을 알려주었다. 그의 높은 도덕성과 솔직함에 놀란 나는 힘없이 전화를 끊고 말았다. 종종 과도하게 이타주의적이고 치밀하게 자기중심적인 나의 행동이 나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갈매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를 읽으니 피자 가게에 관련된 나의 행동이 금방 이해가 되었다.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 겉표지.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 겉표지.
ⓒ 갈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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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깔깔이와 잠옷 차림으로 현관문으로 맨발로 뛰어나간 것은 피자 배달원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이타주의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나는 피자에는 관심도 없었다.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에 따르면 나의 아름다운 이타적인 행위의 근간은 치밀한 배려심이 아니고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한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는 곧 인간의 생존전략이며 이 생존전략이 우리 인간의 뇌 속에 상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가 베푸는 이타적인 행위는 사실 뇌 속의 생존전략이 본능적으로 작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 교수는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를 통해서 주장한다.

이 책에서 비록 우리가 숭고하다고 생각해왔던 이타주의적인 행동이 사실 뇌 속에 잠재된 생존전략의 소산일 뿐이며 오히려 자기중심적인 행위가 계획에 의한 것임을 주장한다고 해서 불편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저자는 뇌과학과 심리학이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의 원인을 명쾌하게 알려주는 학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공항에서 '노 룩 패스'로 자신의 여행 가방을 수행원에게 넘긴 정치인 김무성의 행위는 분명 우리가 혐오하는 갑질의 전형이다. 동시에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그 정치인이 국회의원들 보좌진이 뽑은 '함께 일하고 싶은 의원 1위(2014년, 여야 국회의원 보좌진 2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 편집자말)'라는 사실이다. 갑질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계층이 정작 그와 일하고 싶어 한다는 이 미스터리를 저자는 명쾌히 설명한다.

그 정치인이 보좌진과 비서진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의리를 발휘하는 이타주의적인 행위와 가방을 밀어서 건네는 갑질은 결국 타인에게 인정을 받아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려는 '생존 전략'이라는 같은 목적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것을.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는 고려대학교 심리학 교수이자 사회 신경과학자 김학진의 첫 저서다. 김 교수는 우리가 숭고한 정신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이타주의적인 행동에 대한 신경학적인 분석을 오랫동안 해왔다.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실험 사례를 통해 우리의 이타적인 행위가 깊은 배려나 계획보다는 생존 전략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인정욕구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잘 이끌어 내면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 뇌과학, 착한 사람의 본심을 말하다

김학진 지음, 갈매나무(2017)


태그:#갈매나무, #이타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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