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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아니라…."

'의도'와 '결과'가 일치한다면, 다시 말해서 창작자의 이야기가 그가 원했던 방향으로 수용자에게 '전달'된다면 그건 이상적인 '소통'일 것이다. 하지만 그 간단하고 단순한 산출(算出)이 '예술'이라는 영역에서는 그리 만만하지 않은 일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일상생활에서도 대화 간에 생각지도 않았던 오해가 빈번히 발생하고, 상대방의 말 한마디 혹은 그가 사용한 단어 하나를 두고도 옥신각신하는 걸 보면, 그것이 단지 '예술'에 국한된 문제는 아닌 듯하다.

'권력을 향한 또 한 번의 선거 전쟁!'이라는 홍보 문구로 설명이 가능한 영화 <특별시민>은 상영 전부터 크게 화제가 됐던 영화다.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해 보자면, 첫 번째는 최민식, 곽도원, 라미란, 문소리, 심은경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개봉 시기(4월 26일)가 '장미 대선'이라 이름 붙여진 19대 대통령 선거와 맞물렸다는 점 때문이었다. '선거 영화'가 '선거철'을 맞았으니, 이 얼마나 공교로운 일인가.

과연 영화 관계자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적기(適期)라 봤을까, 아니면 불운하다고 생각했을까. 결과적으로는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개봉 5일 만에 90만 관객(누적 관객 90만4416명)을 넘어서는 등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걸 보면 '화제'가 '흥행'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경쟁작인 <임금님의 사건수첩>이 턱밑까지 바짝 추격하고 있고, 마블의 야심작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의 개봉이 코앞(5월 2일)까지 다가온 상황이 녹록치 않지만, 개봉 첫 주의 프리미엄을 획득한 것만은 분명하다.

의도는 선하였으나, 그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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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서두에 언급했던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다. 어쩌면 그것이 <특별시민>의 흥행 동력을 갉아먹는 요인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특별시민>의 30일 관객 수는 22만3262명이었는데, 이는 29일에 비해 1만7732명이 줄어든 숫자였다. 반면, <임금님의 사건수첩>의 경우 전날보다 1만3103명이 늘었던 건 의미심장한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특별시민>이 의도한 바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변종구(최민식)는 현직 서울시장이자 3선 시장에 도전하는 '후보'다. 국회의원 2선의 경력도 가진 그는 제법 든든한 정치적 기반을 다지고 있고,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발판 삼아 대권에 도전할 야심을 가지고 있다. 변종구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심혁수(곽도원)는 변종구와 당 대표 김낙현(김홍파)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인물인데,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변종구와 심혁수는 '권력'을 향해, 권력을 획득하는 데 정신이 팔린 소위 '정치꾼'에 불과한 인물들이다.

박인제 감독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저열하고 비열한 '속임수'를 서슴지 않는 변종구와 심혁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정치의 민낯, 더 정확하게는 '선거'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여기에 토크 콘서트에서 변종구를 향해 당돌한 질문을 던진 광고 기획자 박경(심은경)이 변종구에게 '캐스팅'돼 선거 캠프에 합류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파생된다. 변종구의 '팬'이었던 박경은 선거판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인정을 받지만, 자신이 갖고 있던 정치에 대한 가치관과 너무도 다른 실제 정치판의 생리를 겪으면서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된다.

'회의'를 느끼게 되는 건 박경만이 아니다. <특별시민>을 보고 나온 사람들은 일종의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달리 말하자면, '정치 혐오'가 다시 솟구치는 것이다. '그렇지, 정치인들은 어차피 다 똑같아.' 가까운 지인도 그리 말하더라. 그러면서 이번 대선에서 '투표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문이 생겼다'고까지 말한다. 마땅히 쉴드칠 말이 없었다. '정치, 좀 더 엄밀하게는 선거의 매커니즘을 보여주는 영화일 뿐 모든 정치인이 저러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라고 말해봐야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공허한 박경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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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가. 박경은 '당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유권자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지만, 그 선언은 공허하게 들린다. 변종구의 승리는 달콤해 보이고, 권력을 향한 그의 집념은 더욱 단단해졌다. 권선징악은 선명히 드러내지 않고, 인물에 대한 판단도 유보적이다. 이런 장치들은 영화를 세련되기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객들의 불만을 자아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특별시민>은 '유권자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정작 그 유권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에 대해 무관심하다.

"마냥 절망적인 결론은 아니다. 부패한 변종구의 모든 것을 지켜본 박경이 평범한 유권자로 돌아가는 모습을 통해 결국은 유권자가 승리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박인제 감독)

심혁수는 박경에게 '선거는 똥물에서 진주 꺼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진주를 꺼내고자 한다면 손에 똥물을 묻힐 수밖에 없다는 '설득'의 일환이었다.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런데 정작 '진주'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탐욕스러운 정치인 변종구는 이미 탈락했고, 그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다른 후보들을 살펴보자.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한 양진주(라미란) 후보의 행태도 변종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는 깨끗한 이미지와는 달리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정치적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

또, 캐스팅 보트를 쥔 무소속 허만길(이윤희) 후보는 어떠한가. 제법 바른말을 하는 듯 보였던 그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단일화'에 합의하는 후진적 정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처럼 <특별시민>이 제시한 3명의 후보에게서는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도대체 '유권자' 혹은 '지지자'가 보이지 않는다. 2시간이 조금 넘는 이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그 어떤 '위안'을 얻을 수 없다. 나름대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자 했던 <특별시민>은 그 때문에 오히려 '늪'에 빠진 건 아닐까.

'진주'가 없는 선거판, <특별시민>이 생생히 재현한 정치의 생리와 선거의 매커니즘은 '그러므로 투표를 잘 해야 한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어차피 다 똑같아. 투표를 하나마나야.'라는 정치 혐오나 무관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욱 높아 보인다. 차라리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 <특별시민>의 제작진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차라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가 박스오피스를 시원하게 흔들어주는 편이 대한민국 정치(와 '특별(한) 시민'들을 위해 좋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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