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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글로리노트 캐릭터도시락표지를 보고 똑같이 도시락싸달라는 딸
▲ 딸아이의노트 모닝글로리노트 캐릭터도시락표지를 보고 똑같이 도시락싸달라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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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의 체험학습 도시락

"엄마, 이 그림이랑 똑같이 도시락 싸줘야 해!"

아직 체험학습 가려면 이틀이나 남았는데 딸아이는 재료를 사러 가자며 저를 이끌었습니다. 너무 일찍 재료를 사도 시들 수 있으니 내일 준비하자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사고 아이 노트에 나와있는 브로콜리, 햄, 당근도 샀습니다. 엄마가 더 이쁘게 맛있게 싸준다고 해도 믿어지지 않았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편지 한 장이 있습니다.

'엄마 만만하게 보지 말고 노트 보고 만들어!'
'알람 맞춰 났으니 낼 아침 새벽 6시에 일어나서 피땀 흘려 싸야 해.'

학교 과제물 노트인데 보고 싸라며 식탁 위에 두고간 딸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요구할 줄 아는 딸아이기 대견하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당일날 아침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과 함께 간식을 든 딸아이. 한껏 멋을 부리고 들떠서는 체험학습으로 양평에 있는 들꽃수목원을 다녀왔습니다.

"오늘 도시락 잘 먹었어? 친구들이 도시락 봤어?"
"응. 친구들이 이쁘데, 선생님이 도시락이랑 같이 사진도 찍어줬어."

친구들에게 이쁜 도시락을 자랑하고 싶었던 딸은 다행히 즐거운 시간을 보낸듯 했습니다.

아들의 체험학습 도시락

직접만든 캐릭터도시락 치킨너겟
▲ 아들의 체험학습도시락 직접만든 캐릭터도시락 치킨너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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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아들의 체험학습일이었습니다. 캐릭터 도시락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다양한 모양에 이쁜 도시락이 많았습니다. 진작 이렇게 싸줄 걸 후회하며 항상 흔한 김밥만 넣어주었던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들이 원하는 것으로 도시락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들은 치킨 너겟을 넣어달라 했습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현미밥에 정성스레 치킨 너겟을 넣어 체험도시락을 쌌습니다. 그리고 아침밥 준비 시작. 사골국물에 콩나물국과 여러가지 반찬을 만들고 아이들을 깨웠습니다. 여기까지 흔한 아침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안 먹어!" 맘에 드는 음식이 없다고 합니다. 그럼 샌드위치를 먹을 거냐고 물어보니 안 먹겠다고 합니다. 그럼 볶음밥 만들어줄까 물어보니 먹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료 남은 것들과 함께 다시 볶음밥을 만들기 시작!

밥을 만드는 동안 아들은 딸아이에게 가서 장난을 치는 통에 결국은 딸아이가 울음을 터트립니다. 점점 저는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참자! 참자! 를 속으로 외치며 오늘은 소풍 가는 날인데 기분 좋게 보내줘야지 생각하며 다 만들어진 볶음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기름기가 많아 보인다고 안 먹겠다고 하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포트에 물을 끊이더니 보온병에 담으려고 합니다. 왜 그러냐니 뜨거운 물로 친구들이랑 장난치기로 했다고 합니다. 위험하니 갖고 가지 말라 했는데도 아들은 들은 척하지 않습니다.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분위기는 폭풍전야로 흐르고 딸아이는 훌쩍이기 시작합니다.

"왜 안돼?"
"위험하다니깐...자꾸 엄마 말 안 들을 거면 다 갖고 가지 마!"
"그래 좋아. 나 나간다."
"엄마가 화가 나서 한 말이니 도시락은 갖고 나가."
"필요 없어!"

결국 아들은 아침밥도 안먹고 점심 도시락도 안 갖고 집을 나섰습니다. 딸아이편에 도시락을 보냈지만 오빠를 못 찾았다고 합니다. 허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옵니다.

그래 어디 한번 누가 손해인지 두고보자고 생각했다가도 아침도 안 먹고 가서 배고플 텐데 점심을 제대로 먹고 있을지, 도시락 아까워서 어떡하지, 오만 생각이 들다가 점심시간이 지나니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딸아이 학교 마중가서 돌아오는 길에 아들에게 주려고 만든 도시락을 함께 까먹으며 엄마가 잘못한 거 같냐고 딸에게 묻습니다. 언제나 딸아이는 제 편입니다.

딸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많은 후회를 뒤로한 채 허탈함과 함께 우울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후 늦게 체험학습에서 돌아온 아들은 걱정과는 다르게 밖은 모습입니다. 아침 반항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배고프지 않냐고 물으니 친구들의 도시락을 뺐어 먹어 배부르다며 오자마자 다시 밖으로 뛰쳐나가 하루종일 놀다 옵니다. 땀 흘리며 실컷 뛰어놀다온 아이는 그제야 저녁밥을 먹겠다고 합니다.

"실은 엄마 오늘 하루 우울했어. 네가 엄마 안아줘야 힘이 날 거 같아."
"엄마 나도 도시락 없어서 후회되었어."

아이를 안고 마음을 달래보지만, 울적한 마음이 가득한 긴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아들과 딸의 합작품

다음날 아이들은 엄마에게 선물이 있다며 방에서 두 아이가 의논을 하며 뭔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멸종위기의 북극곰이라며 부드러운 재질에 곰인형을 내미는 아들입니다. 

저금통을 털어 1만2800원이나 주고 샀다며 잘 간직하라는 아이들입니다. 이렇게 멋지게 사과를 받을 줄은 몰랐는데, 아이에게도 도시락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성숙되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도시락안갖고간 아들이 준 편지
▲ 아들의 사과편지 도시락안갖고간 아들이 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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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의 육아전쟁이 끝났습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아무리 말 안 들어도 내 자식이기에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듯합니다. 아들에게 있어 이번 체험학습 캐릭터 도시락은 사진으로만 남았지만 직접 맛보지 못한 아쉬움과 더불어 배움의 의미있는 도시락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아이를 키우며 다시 배우며 성장해갑니다.

▲ 아들의 사과편지와 선물 아이들이 속상해하는 엄마를 위해 저금통을 털어 산 곰인형과 사과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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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나도 소리 지르고 도시락 안 갖고 가서 미안해."
"사랑해."
"엄마도 사랑해!"



태그:#도시락, #체험학습도시락, #캐릭터도시락,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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