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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열린 KBS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지난 19일 열린 KBS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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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두 차례의 TV 토론회를 거치면서 후보들 간의 신경전도 팽팽해지는 분위기다. 후보들은 상대를 겨냥해 쟁점이 되는 의제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질타하면서,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방, 노동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다른 비전과 정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그런 와중에도 대다수의 후보들이 합심하여 '반대'의 목소리를 낸 대상이 있으니, 다름 아닌 성소수자다. 이들의 졸렬한 '대동단결'을 이끌어낸 주체는 우파 개신교 집단이다. 8천만민족복음화대성회,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등이 지난 20일 '제19대 대통령 선거 기독교 공공정책 발표회'라는 이름의 자리를 만들면서, 성소수자 차별의 제도화를 촉구했다.

통탄스럽게도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후보 캠프는 이들의 요청에 화답했다. '대선 후보를 대신하여' 정당의 중진 인사를 발표회에 참석시킨 것은 물론, 우파 개신교 집단의 억지 논리를 답습한 혐오 발언을 무분별하게 쏟아내며 성소수자 혐오 선동에 동참하고 나선 것이다.

혐오 발언을 내뱉은 인사들은 정계에서 성소수자 혐오 선동에 앞장 서기로 악명을 떨치는 자들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공동선대위원장은 2012년 당시 대선 캠프 기자회견 도중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아내겠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당시 문재인 후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했었다) 인물이고, 바른정당 이혜훈 의원은 퀴어문화축제 반대 집회에서 발언자로 나서는 등 신의 이름을 빌려 성소수자에 대한 비난을 일삼아온 인물이다.

국민의당 문병호 최고위원은 2013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재직 당시 차별금지법안 공동 발의자에 이름을 올리고도 뻔뻔하게 혐오를 일삼고 있고, 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도 우파 개신교가 주최하는 행사에서 '동성애 반대'를 외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들이 내뱉은 성소수자 혐오의 레퍼토리는 고루하기 짝이 없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찬반의 대상으로 치부하고("동성애와 동성혼을 절대 반대한다."), 시스젠더 이성애자 중심의 프레임을 진리인 양 추앙하며("'성평등'이라는 표현도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양성평등'으로 하겠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와 권리 보장을 위한 투쟁을 무조건 탄압하겠다("앞으로도 동성애, 동성혼을 사실상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하겠다.")는 패악을 반복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혼인은 양성간의 결합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헌법의 정신"이라면서 이를 존중하고 수호하겠다는 발언까지 튀어나왔다고 하니, 저들의 수준이 얼마나 저급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강당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미래, 성평등이 답이다' 대통령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서 성평등 정책 시행을 약속한 서약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 "성평등 정책 실현하겠습니다" 다짐한 문재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강당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미래, 성평등이 답이다' 대통령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서 성평등 정책 시행을 약속한 서약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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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처럼 무지몽매한 발언이 '후보를 대신하여 답변한 내용'이라는 점에 있다. 저들의 혐오 발언이 후보자와 대선 캠프의 공식 입장으로 비칠 소지가 다분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파 개신교 매체를 필두로 한 언론들은 "대선 후보는 동성애와 동성혼에 반대한다" 따위의 혐오성 타이틀을 달아 보도하고 있고, 덩달아 성소수자에 대한 역겨운 편견을 덧씌운 기사들까지 끼워 내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후보자와 대선캠프, 발언의 당사자 중 어느 누구도 해명조차 내놓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대선 캠프 인사들의 '대리 혐오'가 더욱 괘씸한 이유는 '표'를 위해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내던져버렸다는 점이 분명히 보이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1일 오전, 문재인 후보는 여성단체가 주최한 '성평등정책 간담회'에 참석해 "성평등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며 서약식까지 거행했다.

그러나 나는 성소수자의 인권과 권리를 '무기 유예' 처리한 문재인 후보가 성평등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간담회에 참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은 문 후보, 그 자신이다. 그는 표를 위해 여성단체 간담회에 갔을 것이고, 정권 창출을 위해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발음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성소수자 혐오를 이야기하는 자리에 대신 사람을 보내 차별에 찬동하는 목소리를 내도록 방관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문 후보를 비롯한 대선 후보들은 '성평등'의 정의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성평등은 '남녀평등' 따위가 아니다. 시스젠더 남성 이성애자의 시혜와 동정으로 이뤄지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권리 증진은 성평등이 아니란 말이다. 성평등이란,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 성으로 인해 발생화는 차별과 억압, 배제를 철폐하고, 나아가 모든 구성원의 평등을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가치다. 그러므로 결코 시스젠더 남성 이성애자의 정권 창출 도구로만 쓰일 수는 없다.

후보와 지지자들은 강변하고 싶을 것이다. 성평등을 지지한다고 해도 난리이니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혀를 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라. 어제는 우파 개신교의 표를 얻기 위해 성소수자의 인권을 부관참시하고, 오늘은 페미니스트의 표를 얻기 위해 성평등을 외치는 대통령 후보들의 모습. 그들의 '두 얼굴'에 어른거리는 표리부동한 그림자를 보라. 이런 성평등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의 삶이라도 바뀌겠는가.

나의 물음에 누군가는 이렇게 다시 물을지도 모른다. "왜 한 사람만 탓하나?", "후보에 대한 예의는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 한 여성 성소수자가 자신의 인권을 반으로 나눌 수 있느냐고 외쳤을 때도, 그들은 대답 대신 이렇게 비꼬아 물었다. 나는 결단코, 한 사람만을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가족부를 '성평등인권부'로 개편하겠다고 말한 안철수 후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한 유승민 후보, "성소수자 거 싫다"라고 말한 홍준표 후보까지, 후보자 본인을 포함하여 성소수자에 대한 살인적 혐오를 방조하고 묵과한 모든 이들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것이다.

20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큐브)를 비롯한 108개의 대학생 단체가 대선 후보들에게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정책 공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20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큐브)를 비롯한 108개의 대학생 단체가 대선 후보들에게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정책 공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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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캠프 인사의 막말 없이도 한국 성소수자의 인권은 벼랑 끝에 내몰린 지 오래다. 최근 육군의 '동성애자 군인 색출 표적수사'에 대한 폭로를 포함하여, 성소수자가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법이 되는 상황에 직면하였음을 매순간 확인하고 있다. 일상에서의 차별과 혐오는 또 어떠한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비수술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온갖 모욕과 폭력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 '성평등한 세상'인가.

이러한 와중에 성소수자와 관련하여 대선 캠프와 공당이 힘을 쏟는 방향이 '누가 누가 성소수자 혐오 더 큰 목소리 내나' 따위를 경연하는 자리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도대체 성소수자는 언제까지 이따위 홀대를 참아내며 살아가야 하는가. 후보자와 대선 캠프가 양심이 있다면, 성소수자의 인권과 존엄을 논하는 자리에도 나와 목소리를 들어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며 스스로 정치적 무능력만 드러내지 말고,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기 위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일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후보자와 대선 캠프, 혐오 발언을 내뱉은 당사자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낸다. 우파 개신교 집단이 주최한 발표회에서 한 발언을 즉각 철회하고 이에 대한 공식 입장과 더불어 사죄의 뜻을 즉각 밝혀라. 그리고 성소수자와 대화하라. 저주를 일삼는 저들에게는 찾아서까지 굽실대며 안심시키면서, 당사자와 대화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가. 성소수자의 삶을 들어라. 그리고 이들의 인권과 존엄을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들어라. 줏대 없는 '주판알 튕기기'를 멈추고, '촛불 이후 첫 대통령 후보'다운 모습을 갖추라. 나중은 없다. 성소수자는 벌써, 지금 국민이다.


태그:#성소수자,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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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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