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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대학교 교직원을 그만두고 협동조합 일을 하기 위해 이직해온 지 5년차다. 수입은 2/3로 줄고 고용의 안정성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런 단점에도 일에 가치를 더하고, 자기주도적인 노동을 할 수 있어 여전히 협동조합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내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비교적 운 좋게 자리잡은 나의 경우와 달리 영리기업에서 좋은 일을 하고자 이직을 해오거나, 첫 직장으로서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그리고 이들을 지원해주는 중간지원조직 등 사회적경제분야의 일을 해온 이들이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경제적인 부분의 문제도 무시하기 어렵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사회적기업의 특성별 임금 실태와 일반 근로자와의 비교> 보고서(2016)에 따르면, 사회적기업은 일반기업보다 하위 22% 저임금 근로자까지는 임금 수준이 더 높다. 거꾸로 얘기하면, 그 이상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저임금 시장이다.

사실 많은 사회적경제기업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주고 있으며, 초과근무시간을 엄밀하게 포함하면 그 이하일 수도 있다. 그래서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마저도 실제 도입되면 상근자들의 급여를 최저임금 수준으로 지급하기 힘들 거라는 아이러니한 얘기도 많다.

그렇지만 영리기업과는 다른 선택을 한 이들이 실망을 하는 요인이 경제적인 부분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예상했던 부분이고 선택과정에서 스스로 감내했던 부분인 경우가 많다. 오히려 영리기업에서의 노동과는 다른 대안적 노동, 대안적 삶을 모색하며 왔는데 별반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영리기업보다 후진적인 노동문화에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청년들의 다른 목소리에 대해 기존 조직에서 "그 정도도 감내하지 못하다니 약해 빠져가지고", "활동이란 원래 헌신과 봉사에 입각한 것이지, 자기 노동권 챙기려고 했다면 영리기업에서 일했어야지"라며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개인 성장 문화가 없는 가운데 용역 업무의 연속인 2010년대 활동가 풍경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명수민, 이영롱 지음.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명수민, 이영롱 지음.
ⓒ 교육공동체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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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억압된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곪은 상처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이영롱 외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교육공동체벗, 2016)는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에서의 상처와 모순을 차분하게 정리해서 드러낸 의미있는 책이다.

이 책은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1~5년 동안 일해온 이들을 각 영역별로 4명씩 총 12명을 인터뷰하고 이를 5장에 걸쳐 다양하게 조명하고 있다.

1장은 활동, 노동, 운동이 혼합된 사회적 노동의 특성을 서술하고 있다. "수많은 제도적 장치와 관습 속에 놓인 노동의 현실이면서 동시에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상상이라는 이중적 위상"(17쪽)을 갖고 있다.

그러한 기대치는 일과시간만으로 마무리되지 않는 자기착취적인 노동의 양상이 되기도 하고 번아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해수면을 높여야 배가 점점 더 올라갈 수 있다"(56쪽)는 생각으로 노력이 이어진다.

2장과 3장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2010년대 사회적노동을 하는 20, 30대 청년들의 노동에 초점을 두었다. 이들은 "사회의 변화에 참여하는 만족감, 소외되지 않는 노동, 동료의식을 느낄 수 있는 조직문화, 주체성, 재미"(60쪽) 등을 기대하고 들어왔지만, "개인이 성장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94쪽)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스스로 성장해온 세대이며 그렇게 판이 만들어져왔기에 조직문화, 교육, 성장 자체를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활력소가 될 20~30대는 흥미와 열정을 북돋는 대신 실망과 분노를 키우고 있고, 허리세대인 30~40대는 이런 저런 이유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젊은 세대와 리더 세대 사이에는 갈등이 불거지고"(98쪽)있다.

더욱이 2010년대의 변화된 활동은 "기업의 프로젝트처럼 기금을 따낼 수 있는 혹은 조금이라도 더 가시적이고 단기간 내에 외부적 성과를 낼 수 있는 형태로 협소화"(115쪽)되고 있다. 차분히 이 일의 본래적 의미를 생각하고 지역과의 관계, 조직과 개인의 성장을 탐색할 시간없이 계속되는 용역사업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활동가 코르셋이 얹혀져 "자발적으로 착취하는데 이제는 거기에다가 이거 당연히 해야하는 운동이야라는 당위까지 얹혀지는"(136쪽) 단계가 된다.   

청년 세대 사회적 노동의 문제를 드러내자, 좋은 노동을 함께 그려가자

그렇다고 이러한 비판들이 모두 누군가의 문제로 쉽게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조직의 리더를 비판하는 탄원서나, 성급하게 정책을 제시하는 처방전은 아니다. 그동안 가리워져 있던 목소리를 함께 들어보자는 의미가 크다. "병을 자랑하라"는 말이 있듯이 문제를 감추고 되레 키우는 게 아니라 건강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함께 대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펼치는 게 문제해결의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3장까지가 문제점을 드러냈다면, 4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누군가의 책임으로만 한정해서 돌릴 수 없는 모순들이 있음을 드러내고, 마지막 5장에서는 영혼 있는 삶과 결합된 사회적노동을 향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개인이 인내하는 방식으로는 언제까지나 지치지 않고서 삶과 일을 유지하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달은 사람들의 이야기"(226쪽)이다. "노동자 개개인이 가진 열정, 헌신, 인내를 비롯한 소프트웨어적인 요소"와 "체계, 원칙, 규칙, 약속과 같은 일종의 조직차원의 하드웨어적인 요소"(228쪽)가 상호지지될 수 있어야 영혼있는 지속적인 일하기가 가능하다.

몇 년 전부터 불거진 사회적 노동 내부의 문제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극단적으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부당해고를 겪는 일뿐만 아니라 잠재된 조직의 문제를 쉬쉬 덮고 가는 경우가 많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사회적경제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시하다고 스스로 얘기하는 조직에서 정작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는 무시되고 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지, 너 말고도 이 조건에서 일할 사람은 많다. 우리 때는 활동을 하며 돈을 받을 생각도 못했어"라는 말은 어떠한가. 사람을 키우는 것이 조직을 키우는 것이다.

청년 세대가 사회적 노동을 하며 겪고 있는 고민을 들여다보고 손을 내밀어보는 것에서부터 출발이 아닐까. 마침 14일 오후 7시 청년허브 창문카페에서 이 책과 관련한 <'좋은 노동'은 어디에?>라는 포럼도 열린다.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의 현실, 청년의 노동, 사회에서 일을 한다는 것 등 좋은 노동의 의미와 조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질 예정이다.

4월 14일 7시에 청년허브에서 열리는 '좋은 노동'은 어디에?라는 제목의 포럼
▲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포럼 4월 14일 7시에 청년허브에서 열리는 '좋은 노동'은 어디에?라는 제목의 포럼
ⓒ 교육공동체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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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청년, #사회적 노동, #좋은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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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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