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유치원 추첨에 대한 추억

막내 복댕이
▲ 다섯살 유아의 포스 막내 복댕이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막내 복댕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간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3월 초만 하더라도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엄마가 종일 보고 싶었다며 찡찡거렸던 아이가, 이제는 제법 어린이집에 적응했는지 등원 시간이 되면 젓가락도 먼저 챙기고, 엄마, 아빠에게 언제 데리러 오라며 주문도 한다. 가끔 어린이집에서 배웠다며 열심히 노래도 불러준다.

부지부식 간에 훌쩍 커버린 복댕이. 그러나 그런 막내를 보고 있자니 부모로서 기꺼운 한편 짠한 것도 사실이다. 여섯 살이 되어서야 엄마 품을 떠났던 누나, 형과 달리 녀석은 일찌감치 다섯 살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때문이다.

사실 녀석이 다른 형제들과 달리 1년 빨리 어린이집을 다니는 것은 우리 부부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국공립으로서 장애아 통합 시스템을 운영하는, 강동구에서는 가장 최고로 인정받는 어린이집이었는데, 그곳에서 원생의 동생에게 입소 가산점을 준다고 하니 어떻게든 아이를 밀어 넣는 수밖에 없었다.

재작년 겨울 그러니까 2015년 12월 우리 부부는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둘째 산들이가 곧 여섯 살로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는데 막상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았던 탓이었다. 첫째 까꿍이가 병설유치원을 다닌 만큼 원생의 동생 가산점으로 산들이를 병설유치원에 보내는 것이 가장 최상이었으나, 하필 그 학교가 재개발로 인해 폐교를 했다.

결국 다시 시작된 유치원 추첨 레이스. 우리 부부가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역시나 강동구 유치원 계의 소위 S대라 불리는 M유치원이었다. 그곳은 국공립단설유치원으로서 지역의 모든 부모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곳은 첫째의 병설유치원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쾌적한 환경을 지니고 있었고, 한 눈에 봐도 모든 시설이 유치원생 기준이었다.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는 탐낼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추첨을 기다리고 있다
▲ 단설 유치원의 위력 많은 사람들이 추첨을 기다리고 있다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운명의 추첨일. 아내는 다른 병설유치원으로 가고 내가 그 단설유치원으로 갔다. 엄청난 인파가 줄을 서서 추첨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설유치원의 인기 때문인지 M유치원 추첨에는 공정성을 위해 경찰관까지 한 명 와서 참관을 했다.

이어진 공 추첨. 소수의 부모들이 환호를 했고 대다수는 탄식을 내뱉었다. 나는 대기 20번이었는데 미련 없이 대기표를 찢고 나왔다. M유치원은 대기 1번도 확실하지 않은 곳이었다. 단설유치원은 유아를 가진 부모들의 최고 선택지였다.

단설 유치원을 더 이상 짓지 않는다고?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유치원 총연합회 사립유치원 교육자대회에 참석해 자신의 교육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유치원 총연합회 사립유치원 교육자대회에 참석해 자신의 교육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내가 굳이 2년 전 기억을 들춘 것은 종일 논란이 되었던 안철수 후보의 발언 때문이다. 그는 11일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2017 사립유치원 유아 교육자대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대형 단설 유치원은 신설을 자제하고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는 독립 운영을 보장하고 시설 특성과 그에 따른 운영을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몇몇 언론이 '단설'을 '병설'로 오보하면서 문제가 불거졌지만, 이에 대해 안철수 후보가 페이스북을 통해 해명을 하면서 문제는 더욱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오늘 행사에서 말씀드린 취지도 대형 단설 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보도와 달리 병설 유치원은 늘리겠다는 뜻입니다. 대형 단설 유치원은 거리가 멀어 통학의 어려움이 생기는 등 학부모 친화적이지 않으며, 여러 가지 국가재난 상황에 대한 대응이 어렵고, 교육 프로그램 등에 대한 맞춤형 관리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주위의 작은 유치원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설보다 훨씬 좋고 쾌적하다
▲ 단설 유치원 내부 병설보다 훨씬 좋고 쾌적하다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안 후보는 글을 통해 자신이 대형 단설 유치원을 짓지 않겠다는 것뿐 병설유치원은 늘리겠다고 해명했는데 과연 그가 단설과 병설의 차이를 알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대부분 병설은 단설을 못 갔을 때 선택하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을 위해 만들어 놓은 시설이 유치원생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대형 단설 유치원의 신설을 자제하는 이유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통학의 어려움은 그거까지 감수하면서도 단설 유치원을 보내고 싶은 부모의 의지에 달려있을 뿐인데 그것이 어찌 학부모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이며, 왜 단설 유치원은 국가재난 상황에 대한 대응이 어렵고 교육 프로그램 등에 대해 맞춤형 관리가 어렵다는 것인가. 오히려 초등학생과 섞여 있는 병설과 달리 단설은 유아들만 대상으로 하기에 대응시스템이나 관리가 좀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또한 '주위의 작은 유치원들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 역시 애매모호하다. 이는 부모들이 선호하는 국공립 단설 유치원이 생기면 주위의 사립 유치원이 어려워진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높은데, 안 후보가 뒤이어 언급한 국공립 유치원 확충과는 분명 논리적으로 배치된다. 물론 후보는 단설 대신 병설을 많이 짓겠다고 해명했지만 단설의 자제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바 사람들의 의심을 계속해서 자아낼 수밖에 없다.

장소의 문제

이제 안 해서 다행이다
▲ 복권보다 어려운 유치원 추첨 이제 안 해서 다행이다
ⓒ 정가람

관련사진보기


좋다. 이 모든 의심이 안 후보가 해명한 대로 한낱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치자. 그는 그가 이야기한 대로 병설 유치원을 통해 국공립 유치원을 확충할 예정이며, 사립 유치원의 독립운영권을 보장함으로써 공교육 체계 속에서 지금보다 체계적인 관리감독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 것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생각을 지닌 안철수 후보가 찾아간 공간이다. 그곳은 '2017 사립유치원 유아 교육자대회'로서 단상 뒤에는 '대한민국 유아교육! 사립유치원이 책임집니다'라는 표제가 적혀 있었고 심지어 현장에는 '국공립 신·증설 즉각 중단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교육의 공공성보다는 그들의 사유재산에 대해 관심이 더 많았을 곳이며, 안 후보의 해명대로라면 그의 정책은 그곳에 모인 이들의 요구와 전혀 반대 방향이다.

그러나 그들은 안 후보의 '단설 유치원 신설 자제'라는 말에 환호로 대답했다. 연설자의 뜻을 전혀 반대로 해석했다. 소위 난독이 아니라 오독 수준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안철수 후보가 뒤이어 병설 유치원을 증설하겠다는 말을 덧붙이지 않는 탓이 크다.

그렇다면 안 후보는 그들의 환호성만으로 당장 그들이 자신의 말을 오해했음을 깨달았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그들이 잘못 이해했다고 밝혔어야 한다. 물론 그들을 실망시키기는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대선주자로서 가져야 할 떳떳하고 책임 있는 자세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국공립 유치원은 매우 부족하다. 대부분의 사립유치원 원비는 국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높은 편이며, 혹자들은 사립유치원을 돈벌이의 수단으로도 운영하기도 한다. 부디 차기 대통령은 이와 같은 현실을 감안하여 국공립 유치원을 늘려주기 바란다. 이는 우리 사회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의 하나이다.


태그:#안철수, #유치원
댓글5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이 정도면 마약, 한국은 잠잠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