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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입니다. 오랜만에 국민의 힘으로 만든 '역사의 봄' 입니다.

갈수록 서울스러워지는 제주의 4월, 그래도 제주국제공항에서 10여 분 달려 애월읍이나 조천읍 정도까지 가면 노란 유채꽃과 분홍 벚꽃 향기가 지천에서 느껴집니다. 제주는 그 향기에 취해 오름과 바당을 베고 누워서 일상을 접고싶은 욕망의 섬입니다.

열 명 중 한 명이 희생자였던 '제주 4·3'

 제주 4.3은 올해로 69주년, 내년 2018년에 70주년을 맞는다.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올해 출범하였다.
 제주 4.3은 올해로 69주년, 내년 2018년에 70주년을 맞는다.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올해 출범하였다.
ⓒ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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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4·3은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입니다.

69년 전 제주 아픈 기억들은, 생살 찢기듯 오늘 다시 돋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제주4·3에 대한 정부의 공식기록인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더라도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이 희생자입니다. 3만 명이나 소중한 생명을 잃어야했습니다. '대비극'이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4·3사건을 침묵해야만 했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진실의 빛을 찾았습니다. 제주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과정은 과거사 해법의 전범(典範)이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제주도민들과 4·3유족들의 피나는 노력이 4·3특별법을 만들었습니다. 정부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됐습니다, 국가공권력의 잘못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를 이끌어냈습니다. 번듯한 4·3평화공원도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주 4·3은 국가추념일로도 지정됐습니다.

제주 4·3을 겪으면서 고난의 세월을 온 몸으로 버티며 살아 온 분들이 계십니다.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 앞에 직접적 체험 세대가 100여 명 정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4·3과 연관된 제주의 이야기는 이제 끝일까요? 지금처럼 '화해와 상생'하고 평화와 인권시대로 넘어가자고 말하면 되는 것일까요?

69주년을 맞는 제주4·3의 풍경은?

 4월에는 제주 4.3 그리고 제주를 향해 항해해갔던 세월호 4.16 참사를 함께 기억하려고 한다.
 4월에는 제주 4.3 그리고 제주를 향해 항해해갔던 세월호 4.16 참사를 함께 기억하려고 한다.
ⓒ 기억공간 re:born + 벨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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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관하는 4·3 추념일은 광주5·18민중항쟁 국가추념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싸우듯이, '잠들지 않는 남도'가 불려질까를 놓고 '민·관'간 기억의 충돌이 재현됩니다.

국가공권력의 잘못임이 국가에 의해 밝혀졌지만 그 희생에 대한 개별적인 배상, 보상은 한 줄도 진전된 것이 없습니다. 재판도 제대로 없이 감옥으로 끌려갔다온 수형인에 대한 명예회복은 여전히 개개인의 몫으로 돌려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4·3 행방불명인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틈만 나면 4·3을 폭동으로 왜곡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한 '반란의 섬'. '빨갱이들의 천국'으로 각인시키려고 왜곡하는 세력들도 적지 않습니다.

4·3은 미국이 당시 한반도 이남을 지배하고 있던 미군정(美軍政) 시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정작 4·3에 대한 미국의 책임에 대해서는 70년 가까이 지나고 있지만 구체화된 것이 없습니다.

한 해 16만 명이 찾는다는 제주4·3 평화공원, 다른 국내 역사공원의 콘텐츠에 비하면 비교적 잘 꾸려져 있습니다. '가스통 할아버지'들이 평화기념관의 시설물을 철거하라고까지 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4·3의 역사를 객관화시켜 잘 전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4·3평화기념관에서 길지 않은 작은 어둠의 터널을 지나자마자 처음 마주하는 것은 백비(白碑)입니다. 마땅한 작명(作名)을 하지 못해 비석에 글씨를 새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학술논문의 각주처럼 '미완의 역사'라며 합리화 할 수도 있지만 과연 4·3은 이름이 없는 '사건'인 것일까요?

제주4·3 70주년, 그 날의 봄을 이야기 할 때

 찾아가는 현장위령제 '관덕정 해원상생굿', '역사맞이 거리굿' 등의 행사를 준비하고있다.
 찾아가는 현장위령제 '관덕정 해원상생굿', '역사맞이 거리굿' 등의 행사를 준비하고있다.
ⓒ 제주민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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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겨울이 아니라 봄”으로 현시대와 함께 하는 제주4.3
 더 이상 “겨울이 아니라 봄”으로 현시대와 함께 하는 제주4.3
ⓒ 기억공간 re:born + 벨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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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제주4·3은 진행형입니다. 2018년 제주4·3 항쟁 70주년이 다가오면서 4·3에 대한 논의가 민간에서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사상최대 연대조직이었던 '박근혜 퇴진 제주행동'을 넘는 단체들이 "약간의 차이를 넘어서 힘을 모으자"며 70주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도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 범국민위원회가 결성되고 있습니다. 최근 4·3단체와 시민단체 주최로 '4·3 70주년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회에서는 4·3의 '정명'(正名) 문제가 재론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름이 뭐냐는 것입니다. 발표문 가운데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대목은 이렇습니다.

"1948년 서울 종로통에서 걸어다는 행인들의 90%는 단독 정부를 반대했었지. 당시 여론조사도 있던 팩트야. 당대의 시선으로 보면 제주사람들도 4·3당시 서울사람들과 마찬가지였던 보편적 정서를 이야기했을 뿐이지."

4·3 당시 '국가폭력'에 의한 억울한 죽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70년 전 국가폭력과 함께, 제주도민들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제는 기억을 되살려야 할 때입니다. 왜 그 시절, 제주도민들은 '단선·단정'을 반대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려 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당시 잘 보지 않았을 '국제면'도 뒤져봐야 할 때입니다. 왜 미국은 한반도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애썼는지에 대해서도 살펴야 합니다. 실제 4·3 당시 미군정은 제주도에서 5.10선거가 무산되자 미 6사단 광주주둔 제20연대장 브라운 대령을 제주지구 미군사령관으로 파견합니다. 모든 진압작전을 지휘, 통솔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딘 군정장관의 특명을 받은 브라운 대령은 제주도에 온 후 "제주사태의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국제적으로 '팩트'로 밝혀내는 일은 '반미'(反米)가 아니라 '지미'(知美)입니다. 국민들에게 4·3의 참상을 제대로 알려내는 일과 함께 '국제민중연대'를 통해 당시 미국의 책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때입니다.

4·3은 현재와의 대화도 필요합니다. 국가폭력 위에 새워진 제주해군기지에 미군 소속 세계최강 '줌월트 구축함'이 우리 눈앞에서 드나드는 일이 현실화돼가고 있습니다. '강정은 제2의 4·3'이라는 말은 더 이상 문학적 표현으로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거리의 시인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제주의 김경훈 시인은 "이제 4·3의 겨울이 아니라 4·3의 봄을 이야기 할 때"라고 합니다. 120% 동의합니다. 역사의 봄을 만드려고 했던 70년 전 제주도민들의 함성에 대해서도 기억을 재구성하고 국민들과 함께 해야 할 때입니다. 그 토대 위에서 4·3은 '평화와 인권의 시대'를 향한 대장정이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강호진씨는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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