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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균충', '조려대', '분캠충' 같은 대학 내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런 말이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균충', '조려대', '분캠충' 같은 대학 내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런 말이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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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캠퍼스 서열에 남몰래 눈물 훔치는 17학번들' 기사가 나간 후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고려대 세종캠은 지방 공립대보다 낮은 수준인데 어떻게 같은 고려대냐?', '노력해서 고려대 왔는데, 세종캠이랑 같은 취급하는 것은 역차별 아니냐?' 등의 내용이었다.

이들 댓글을 관통하는 중심 생각은 '능력주의(meritocracy)'로 풀이된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권력이 부여되는 사회원리를 의미한다. 능력주의에 따르면 다른 능력에는 다른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이러한 불평등은 정당하다고 인식된다. 반대로 다른 능력에 같은 보상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 고려대 안암캠 입학생이 세종캠 입학생과 하나의 고려대로 묶이기를 거부하는 이유다. 안암캠 학생은 세종캠보다 성적이 높기 때문에 세종캠과는 당연히 구별돼야 한다는 것이다.
   
능력주의에는 매우 중요한 전제가 있다. 노력이 곧 능력과 직결되는지 여부다. 과거 신분제 사회의 불평등을 부당하고, 능력주의 사회의 불평등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도 능력이 곧 개인의 노력 여부에 의해 성취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교육에서 이미 능력주의의 신화는 깨진 지 오래다.
  
'순전히 내가 노력해서'라는 환상 

한국사회학회가 지난해 발간한 <한국 사회학 제50집 5호>에는 세대별 상급학교 진학 양상을 부모의 사회계층과 연관해 분석한 자료가 실렸다. 분석에 따르면 자녀의 진학 성과는 부모의 직업에 따라 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의 대학 진학률은 부모가 자본가(85.53%)와 관리자ㆍ전문직(87.55%)인 계층에서는 80% 후반이었다. 그 뒤로는 노동자(64.21%), 농촌자영업자(59.71%) 등 순이었다.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전문직과 가장 낮은 농촌자영업자 계층의 차이는 27.84%p였다. 수도권 4년제 대학을 살펴보면 두 계층 간 진학률 격차는 40%p로 커졌다.
소득이 높을수록 대학 진학률도 높아지고 있다. 1분위와 5분위 사이의 대학 진학률 격차는 38.3%p다.
 소득이 높을수록 대학 진학률도 높아지고 있다. 1분위와 5분위 사이의 대학 진학률 격차는 38.3%p다.
ⓒ 홍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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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소득 수준과 자녀의 대학진학률 사이의 상관관계도 이미 상당하다. 민인식 경희대 교수와 최필선 건국대 교수가 낸 '한국 세대 간 사회계층 이동성에 관한 연구'를 보면 소득이 1분위인 부모를 둔 자녀가 4년제 대학에 갈 확률은 30.4%다. 5분위 부모의 자녀는 68.7%다. 무려 38.3%p 차이다.
학력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인 사교육 수준은 소득에 따라 크게 갈린다.
 학력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인 사교육 수준은 소득에 따라 크게 갈린다.
ⓒ 홍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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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비 격차도 계층별로 심하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소득 700만 원 이상 가구는 2015년 대비 5.6% 증가한 44만3000원을 사교육비로 썼다. 반면 월 소득 600만 원 미만 모든 계층에서는 사교육비 지출이 1년 전보다 줄었다. 그 결과 월 소득 700만 원 이상 가구와 100만 원 미만 가구의 사교육비 격차는 2015년 6.4배에서 8.8배로 더 커졌다.

'내가 대학 잘 온 것은 나의 노력 덕이고, 네가 대학 못 간 것은 노력을 안 해서'라는 생각은 환상임을 이미 여러 지표가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여전히 '노력'을 잣대로 대학을 편 가르고, 같은 대학 안에서도 '급'을 나눈다.

이에 대해 전북대 반상진 교수(교육학과)는 양극화 심화의 극단적인 측면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는 노력에 따라 보상이 분배되는 사회라고 보기 힘들죠. 양극화가 심해지며 교육의 기회도 고르게 분배되지 않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여기서 문제는 이러한 교육 양극화의 맥락을 무시하게 하는 '성적 제일주의' 한국 교육이다.

"한국 교육은 어떤 상황에 학생이 처해있든 점수만 높으면 무조건 우월한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해왔습니다. '노력만 하면 대학 잘 간다'는 말이 이제는 통하지 않음에도 아직도 대학생이 높은 점수와 학력을 기준으로 서열을 나누는 이유죠."

우월한 능력은 곧 조롱할 권리인가

'문송' 사회에서 이과는 문과보다 취업률이 더 높다. 정시로 입학한 대학생은 기회균등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보다 수능점수가 대체로 높다고 한다. 고려대 안암캠 학생은 세종캠보다 더 좋은 사회적·경제적 대우를 받고 있다. 높은 학력의 학생도, 상대적으로 낮은 학력의 학생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문제는 높은 학력의 학생이 자신의 우위를 인지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보다 낮은 학력의 학생을 향해 멸시·조롱의 언어를 발화하는 현실이다. 중앙대 이병훈 교수(사회학과)는 '기균충', '조려대' 등의 말을 사용하는 것은 타인을 낮춰 자신의 우위를 인정받으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학벌 사회에서 학생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기 위해 본인의 위치를 계속 재확인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보다 낮은 학벌을 비하해 스스로의 위치를 인식하고 만족감을 얻는 것이죠. 한국 교육이 심하게 뒤틀렸다는 방증입니다."

반상진 교수는 무의식 속에 있던 학력에 따른 우월감이 의식으로까지 진출한 결과라고 밝혔다.

"그동안은 학력에 따른 우월감이 무의식 속에서만 작동했다면 이제는 언어로까지 발화되는 것이죠. 차별의식이 매우 심화됐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너는 나보다 열등하고 절대 내 그룹에 들어올 수 없다'고 아예 언어로 낙인을 찍고 칸막이를 쳐버리는 것이니까요."

덧붙여 그는 이러한 대학생의 행태가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 촛불집회 등에 나가 기득권적 체제 개혁에 앞장서는 대학생이 본인이 당면한 학벌문제에 대해선 바꿔야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되레 매우 기득권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뒤틀린 한국 교육의 자화상

앞선 기사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던 17학번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안암캠 학생만큼 대우를 받자는 게 아니에요. 제가 공부를 못 했으니까 같은 대우를 받는 건 정당하지 않죠. 그런데 꼭 '조려대'라고 불러야 하나요. 제가 고려대 안암캠 학생보다 공부를 못 했다고 놀림감이 돼도 괜찮은 건 아니잖아요."(고려대 세종캠 17학번 D씨·21)

"기사가 나오고 댓글을 봤어요. '집에 컴퓨터 하나 없어서 인터넷 강의 못들을 정도 아니면 솔직히 기회균등전형으로 들어올 자격 없다'는 댓글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저희 집에 컴퓨터 있어요. 그런데 가난하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없어요. 공부하면서도 항상 아르바이트 자리 알아보고, '집안이 이런데 편하게 공부해도 되나'라는 생각과 계속 싸워야 해요. 저는 고3 때 '공부 걱정'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단국대 17학번 C씨·20)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는 종종 '인생에서 필요한 능력은 정말 많다. 학벌이라는 능력만으로 사람 평가하면 안 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공부를 못 해도, 좋은 대학에 못 가도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자주 쓰인다.

그러나 대학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대학생에겐 어느새 학벌과 점수가 능력의 전부이자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유일한 자산이 돼버렸다. 그 유일한 자산을 지키기 위해 혐오의 언어는 거리낌 없이 사용된다. 타인을 상처 주는 것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구조. 뒤틀릴 대로 뒤틀린 한국 교육의 자화상이다.


태그:#대학, #학벌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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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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