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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역장을 위한 좋은 환경은 뭘까

몇 년 전, 일본의 작은 시골역에서 고양이 역장 타마가 유명세를 타며 거의 없어질 뻔했던 역이 인기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역에서 지내던 길고양이를 '고양이 역장'으로 임명하며 특별한 테마를 부여한 것이다. 하루에 기차가 몇 번밖에 다니지 않는 시골이었지만, 고양이 역장 타마를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내가 타마가 있는 기시역에 찾아갔을 때는, 타마가 나이가 많아 풀타임 근무(?)를 하지 못하고 대신 2대 고양이 역장 니타마가 역을 지키고 있었다. 삼색 고양이 니타마는 역내의 큼직한 유리관 안에 있었다. 피곤하지 않도록 하루 일정 시간만 이곳에 들어가 있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로운 공간에서 휴식한다고 했다.

일본 기시역의 고양이 역장 니타마
 일본 기시역의 고양이 역장 니타마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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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 살리고 길고양이도 어엿한 집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라 서로에게 좋은 취지인 것은 분명했다. 다만 지나친 오지랖일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매일 몇 시간씩 그리 크지 않은 유리박스 안에 갇혀 있는 고양이가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역곡역 고양이 역장이 실종됐다

이후 우리나라에도 고양이 역장이 등장했다. 역곡역의 고양이 '다행이'였다. 다행이는 덫에 걸려 앞발가락을 잃은 채 구조되어, 2003년 어린이를 구하려다 다리 하나를 잃었던 김행균 역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김 역장님과 다행이의 닮은꼴 묘연은 큰 화제가 되어 역곡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사연으로 알려졌고, 동화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역곡역 고양이역장 다행이
 역곡역 고양이역장 다행이
ⓒ 다행이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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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다행이의 실종 소식이 전해졌다. 김 역장님의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장기 입원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다행이가 '반려동물지원센터'에 맡겨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센터에서 잠시 택배기사가 들어오며 문을 열어둔 사이에 다행이가 문밖으로 나가 벌써 한 달이 넘게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역곡역과 센터에서는 최선을 다해 다행이를 찾는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행이의 실종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누리꾼들이 '다행이를 역곡역 홍보를 위해 이용만 한 것이 아니냐'며 분노했다.

여전히 역곡역 곳곳에 다행이의 캐릭터가 있고 심지어 다행이 광장이 있을 정도인 상황이다. 그런데, 김 역장님이 입원으로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역곡역의 대표적인 마스코트였던 다행이를 반려동물 지원센터로 보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역곡역의 다행광장
 역곡역의 다행광장
ⓒ 다행이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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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보다 중요한 건 키울 수 있는 환경

비판이 이어지자 코레일 측에서는 지난 12일 다행이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김행균 전 역곡역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장기간 입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다행이가 느낄 정서적 불안감을 염려한 나머지 '반려동물지원센터' 측과 협의하여 퇴원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보호소에서 다행이를 보호하게 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알렸다.

더불어 "부천시청 도시농업과와 반려동물지원센터에서도 다행이 찾기 운동을 매우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전했다.

다행이 페이스북
 다행이 페이스북
ⓒ 다행이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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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입장 설명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환경이 바뀔 때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 동물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그때문에 익숙한 역곡역에서 계속 지내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를 위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보호센터에 맡긴 다행이를 잃어버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애초에 역곡역의 마스코트인 다행이를 김 역장님이 부재중이라 하여 역곡역에서 책임지지 않은 것은 결국 고양이에 대한 이해와 성의의 부족이라는 아쉬움을 지우기 어렵다. 역곡역이 대표적인 마스코트로 고양이를 내세웠다면, 그만큼 고양이가 잘 머물 수 있는 환경과 이해가 충분히 갖췄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있으나, 어쩌면 지금 제일 마음이 아픈 건 입원한 사이 반려묘를 잃어버리게 된 김 역장님이 아닐까? 잃어버린 고양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찾을 수 있는 확률이 더 줄어든다. 실종 열흘이 넘어버린 현재, 다행이의 '골든타임'은 이미 끝나가고 있다. 다행이를 찾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동물을 단순한 홍보 수단으로만 이용한다는 비판에 대해 각 지자체들 역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태그:#고양이, #다행이, #고양이역장, #역곡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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