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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문라이트>에서 '게이같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놀림받고 폭행당하는 샤이런.
 영화 <문라이트>에서 '게이같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놀림받고 폭행당하는 샤이런.
ⓒ 문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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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인 걸 어떻게 아나요?"
"그냥 알게 돼, 그냥."

영화 <문라이트>의 어린 주인공 샤이론은 학교에서 '동성애자 같다'는 이유로 폭행과 괴롭힘에 시달린다. 자신을 때리는 친구들을 피해 도망치다 우연히 만나게 된 후안과 테레사에게 어린 샤이론은 묻는다. '동성애자인 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동성애자의 삶을 잔잔하게 그려내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문라이트>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 영화를 봤을까? 봤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기독교 우파는 동성애 혐오를 선택지처럼 보이게 한다"

이런 궁금증이 들었던 이유는 얼마 전 그가 한 발언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월 13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만난 자리에서 '동성애 차별엔 반대하지만 동성애를 지지하는 건 아니'라고 밝혔다. 더불어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을 막는 내용이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있으니 추가 입법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란을 막아야 한다는 게 더불어민주당 공식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차별금지법 제정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민주당이 성소수자 사안에 대해 '반인권적 입장'을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8대 대선을 앞둔 지난 2012년 12월 13일,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캠프의 김진표 종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종교특위 기독위원회' 명의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앞으로도 동성애, 동성혼을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당시 김 위원장의 발언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고,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인권교육법 제정,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 인권 보장을 약속하던 문 후보의 대선 공약과 반대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됐다.

그런데 5년 지난 지금, 문 전 대표 본인이 같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5년 동안 한국 성소수자의 인권 환경이 크게 개선돼 차별금지법이 필요 없어진 것은 아닐 텐데, 본인만 5년 전 공약보다 더 후퇴한 셈이다.

지난 2012년 제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밝힌 공약.
 지난 2012년 제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밝힌 공약.
ⓒ 유튜브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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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크대 윤리학, 여성학 교수인 캐시 루디는 자신의 저서 <섹스 앤 더 처치>(2012)에서 '(미국의) 기독교 우파는 미국인이 성차별주의와 동성애 혐오를, 수용 가능한 정치적 선택지로 더 잘 느끼게끔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지적했다. 사람의 '인권'은 다수결에 따라 결정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마땅히 누려야 하는 생래적, 천부적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으면 제한할 수 있는 '선택지'로 여기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비단 미국의 일만은 아닌 듯하다. 언제부터인가 대선이 다가오면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동성애에 대한 후보들 의식 점검'에 나섰고, 심판대에 올라선 대다수의 후보는 한결같이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했다.

"저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말 앞엔 '동성애자가 차별받는 것에는 반대하지만'이라는 나름의 안전장치가 붙긴 했지만,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표현 자체가 이미 반인권적이다. 우리 중 누구도 '나는 여성을, 흑인을, 이성애를 지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은 '지지'를 표하고 말고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성애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의 샤이론'들을 위하여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50~60대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게' 자신의 단점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50~60대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게' 자신의 단점이라고 말했다.
ⓒ SBS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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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지지는 많이 받는데, 50~60대 지지를 많이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월 12일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에서 자신의 단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이 맞다. 48% 대 51.6%, 3.6%P 차이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 패배한 지난 18대 대선에서도 그는 50~60대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의 '변심'을 두고 상대적으로 '동성애 이슈'에 보수적인 50~60대를 겨냥한 우클릭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나는 너무 울어서 눈물로 변해버릴 것 같을 때가 있어."

영화 <문라이트>에서 샤이론은 친구 케빈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동성애자 같다'는 이유로 괴롭힘과 폭행을 당하는 그를 보호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국의 샤이론들도 똑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2014년 '한국 LGBT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8.4%가 자살을, 35%가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18세 이하의 응답자에서는 45.7%가 자살을, 53.3%가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같은 해인 2014년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 통계 결과를 보면 중1~고3 학생들 중 자살을 시도했다고 답한 비율은 2.9%였다. 같은 문항에 대한 청소년 성소수자 대답 비율과 비교해보면 15.7배에 달한다. 전해인 2013년 수치(4.1%)와 비교해 봐도 11배가 넘는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서도 청소년 성소수자의 98%가 학교에서 교사나 다른 학생들로부터 혐오 표현을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올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 조사결과를 봐도 상황은 바뀐 게 없다. 영화 <문라이트>의 샤이론이 지금 '우리의 얘기'인 것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표를 이야기하기는 부끄럽다.

"계속 타협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4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3·8 여성의 날' 기념 100인 합창및 여성정책발표에서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2017.3.4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4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3·8 여성의 날' 기념 100인 합창및 여성정책발표에서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2017.3.4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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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기독교계에서 이걸(차별금지법 반대) 강력하게 종교적 신념으로 말씀하시니까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으로서 일정하게 타협했다고 볼 수 있죠. 그렇게 자기 신념이나 옳은 정책을 표를 위해서 타협을 계속하게 되면 우리 사회가 앞으로 계속 나가기가 어렵다고 봐야죠."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지난 2월 22일 <뉴스타파> 뉴스포차 인터뷰에서 차별금지법에 찬성한다면서 "목사님들 말씀 거역하면 선거에 지장이 많이 되니까 사실 고민이 많이 됐"지만, "제가 정치를 하는 이유가 가장 기본적으로 인간으로의 존엄성을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불리에 따라서 가치나 철학을 바꾼다면 제 스스로 자기정당성을 상실할 것 같았다"고 차별금지법 찬성 당시를 회상했다.

심 후보는 같은 달 26일 열린 '성소수자 인권포럼' 축사에서도 "동성애나 성적 정체성은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지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인권과 자유입니다"라고 말했다.

한 사람은 인권에 대해 얘기하며 정치인들이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차별금지법이 불필요하다'며 자신의 입장을 바꿨다. 어느 후보가 말하는 세상이 '사람이 먼저'인 세상일까? 모든 국민의 인권이 보장되기 위해선 누구를 택해야 할까. '지지'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태그:#문재인, #심상정, #차별금지법, #동성애,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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