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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흐린 3.1절을 맞이했다. 종각역 1번 출구로 나오자 종로 1가 사거리에 차가 없고 사람만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종로 1가에서 차가 없는 것은 흔히 보기 광경이다. 차도에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이곳에서 태극기 집회를 여는 모양이었다.

종로 1가 사거리에 차는 없고 사람들만 있다.
 종로 1가 사거리에 차는 없고 사람들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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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역 1번 출구 바로 앞에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종각역 1번 출구 바로 앞에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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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이 있는 세종대로 사거리로 쭉 걸어가려 했지만 경찰과 버스장벽이 길을 막았다. 경찰당국은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에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고려해 완충지대를 만들었다. 할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 사람들을 따라 쭉 걸어갔다. 종로3길로 따라 세종로 119 안전센터 지나 광화문 삼거리까지 올라왔다.

충돌 우려로 경찰과 버스들이 장벽을 만들어 광화문광장 가는 길을 막았다.
 충돌 우려로 경찰과 버스들이 장벽을 만들어 광화문광장 가는 길을 막았다.
ⓒ 이주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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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버스 장벽 사이, 1m 조금 넘는 공간으로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 공간을 비집고 나오니 광화문 광장이 펼쳐있었다. 흐린 날에도 사람이 많았다.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들이 많아 다음날 출근을 앞둔 사람들이겠거니 싶었다. 20대로 보이는 사람도 많이 참여했다.

광화문 광장으로 가는 좁은 버스 통로
 광화문 광장으로 가는 좁은 버스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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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크게 소리가 들려왔지만 광장에 서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도 듣기 힘들었다. 연설 소리와 밴드 노브레인 공연 리허설 준비가 합쳐져 더욱 그랬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오후 4시께 광화문 광장에서 '18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를 개최했다.

벤드 노브레인이 공연 리허설을 하고 있다.
 벤드 노브레인이 공연 리허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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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겪는 국경일 3. 1절에 매주 토요일마다 이어져 온 집회가 열렸다. 3. 1절은 공휴일이다. 쉴 법도 하지만 사람들은 광장에 나왔다. 야외에서 개최하는 박람회처럼 광장에는 다양한 부스가 세워져 있었다. 구경하던 사이 태극기를 매단 군인이 눈에 띄었다.

3.1절을 기념한 촛불집회 용품 판매 부스
 3.1절을 기념한 촛불집회 용품 판매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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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서 온 박건태(남, 만 30)씨는 이미 예비역 복무를 다 마친 성인 남자였다. 촛불집회에 몇 번 참여했는지 물어보니 5번 참여했단다. 군복을 입고 온 이유를 물어봤더니 태극기 집회 참여자들이 태극기를 들고 군복을 입길래 그것을 패러디했단다. 태극기를 박사모가 전유하는게 보기가 싫었다고 말했다.

이번이 6번 집회 참여인 그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카운트 다운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탄핵 기각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말이다. 그가 말했다.

"탄핵이 인용되면 태극기 집회 쪽에서 폭동이 일어날테고 탄핵이 기각되면 촛불집회 측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죠? 지켜봐야 할 듯 싶어요."

군복을 입고 태극기를 매고 있다.
▲ 군인과 태극기 군복을 입고 태극기를 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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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50분쯤 되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젖을 수 있어 광화문역 9번출구 안으로 들어갔다. 곳곳에 경찰이 배치돼 있었다. 역 내에도 사람이 많았다. 안에서 우의를 입고 밖으로 나가려들 했다.

광화문역 9번 출구에 사람들이 붐볐다.
 광화문역 9번 출구에 사람들이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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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체험관 나무 바닥에 앞에 걸터 앉았다. 우의를 입으려는 어떤 아주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태극기를 들고 태극기집회에 참여하는 게 안타까워요. 일제 강점기에 그렇게 당해놓고 또 그래요. 예전 정치인이 선거철에 사람들에게 돈 뿌리면 그 사람 투표하는 식이에요. 지금이랑 똑같아요."

그 말에 살짝 흥미가 생겨 아주머니에게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 물어봤다. 60대 중반이란다. 이전에도 촛불집회에 참여했냐 여쭤보니 '수시로'라고 짧게 대답했다. 사는 곳은 서울시 중구 청구동이란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귀찮아서인지 아니면 급한 용무 때문인지 바쁘신지 아주머니는 허겁지겁 밖을 나가 광장으로 향했다.

아주머니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주머니는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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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리에 와서 앉았다. 얼마 후 바로 앞에 어떤 할아버지가 우의를 입으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꺼운 패딩을 입은 할아버지는 얇은 비닐 우의에 한쪽 팔을 넣기 힘들어 보였다. 거들어줬더니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촛불집회에 할아버지를 보는 것은 태극기 집회에 젊은이를 보는 것만큼이나 희귀하지는 않더라도 어떤 이유로 촛불집회에 참여했는지 그 생각이 궁금했다.

남양주에서 온 그는 나이가 66세라고 소개했다. 그는 현재 태극기집회 참여자들이 진짜 보수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단지 '수꼴'이라 했다. 오히려 진정한 보수는 이 촛불집회 참여자들이란다.

진정한 보수 속에서 진정한 진보가 탄생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 썩은 뿌리를 완전히 뽑아야 한단다. 그러지 않으면 30년 뒤에 또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박정희 정권을 겪은 그는 지금이 유신의 연장이라고 했다.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에게 만약에 탄핵기각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지 물어봤다.

그는 "탄핵 기각이 된다면 그것은 법에 따라 처리 했을거라 보고 인정해야 한다. 다만 우리 국민은 계속 싸워야 한다. 박근혜가 물러나지 않더라도 국정교과서, 사드, 개헌 문제는 우리가 나서서 꼭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특히 사드는 전작권이 없는 우리나라에게 무용지물이다. 전작권을 얻어야 된다"고 말했다.

얘기가 많이 길어졌다. 그는 자기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며 일어나 광장으로 향했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6시 50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7시 30분에 행진을 시작하는 줄 알았다. 배도 고파 밥을 먹고 행진에 참여하려 했다.

근처 식당에 밥을 먹고 편의점에서 우의를 사서 입은 다음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해산한 듯보였다. 길가는 사람에게 여쭤보니 행진이 끝났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7시 40분이었다. 몇시에 했냐고 물어보니 한 7시쯤에 했다고 말했다. 아차했다. 광화문 삼거리로 가봤다. 사람들은 청와대 쪽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들은 자기 의지대로 3. 1절이란 공휴일을 반납하고 국민으로서 일을 다하고 있었다.

행진이 끝나고 한산한 광화문 삼거리
 행진이 끝나고 한산한 광화문 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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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서 내려오는 촛불집회 참가자들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촛불집회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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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에서 내려오다 '정봉주의 품격시대'란 방송이 촬영 중이었다. 정봉주가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도 저 할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정봉주의 품격시대'가 촬영 중이었다.
 '정봉주의 품격시대'가 촬영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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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만 종이컵 안에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촛불도 저마다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요새는 LED로 나와서 꺼질 일이 없다고 한다. 비오는 날 공휴일, 광화문 광장을 걸으며 다시 종각역으로 향했다.

집회를 마치고 종각역 가는 길에 식사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 3. 1절 그리고 레스토랑 집회를 마치고 종각역 가는 길에 식사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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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촛불집회, #태극기집회, #광화문광장, #삼일절,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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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속에서 팬을 들고 전진한다. 진실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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