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희, 연기자로 거듭 영화 <싱글라이더>에서 지나(유진아) 역의 배우 안소희가 23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싱글라이더>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 안소희. 아이돌 가수 출신의 꼬리표를 떼고 힘찬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 이정민


아무래도 배우보단 무대 위에서 "어머나!" 포즈를 취하던 원더걸스 소희의 기억이 강했다. 이처럼 아이돌의 힘은 무섭다. 10대 끝자락에 가수로 데뷔해 정상을 경험했고, 각종 드라마와 영화 <부산행> 등으로 이미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던 그의 입장에선 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제 모습이니까 그렇게 신나게 할 수 있었겠죠?"라며 웃는다.

최근 개봉한 영화 <싱글라이더>에서 안소희는 딱 또래의 청년 지나가 됐다. 한국을 뒤로 하고 호주로 날아들어 워킹 홀리데이로 근근이 돈을 모아놓은 인물이다. 잘 나가다 부실채권 판매 문제로 나락으로 떨어진 증권사 팀장 재훈(이병헌 분)과 달리 뿌리도 정착지도 없이 흩날리는 캐릭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가수로 연예인으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은 그가 과연 그 외로움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기우였다.

긴장의 연속

물론 크게 긴장했다.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 캐릭터의 감정이 주가 되어 흐르는 구조라 재훈과 지나의 균형감이 중요했다. 낯선 땅에서 각자 홀로 날아온 이방인이 서로를 알아보고 기대는 과정이 핵심인데 상대는 베테랑 이병헌이다. "처음엔 이병헌 선배, 공효진 선배와 함께 한다고 해서 신나고 좋았는데 갈수록 걱정이 커졌다"고 그가 고백했다.

그럴수록 안소희는 연출을 맡은 이주영 감독과 사전에 많이 만나려 했다. CF 감독 출신인 이주영 감독은 캐릭터 하나하나를 짚거나 장면 별로 짚으며 도움을 줬다. 여기에 원더걸스 활동으로 미국에 머물렀을 당시 절감했던 외로움의 감성을 지나에 대입했다.

"타지에서 혼자 있는 외로움은 잘 알아요. 그래서 지나가 짠하게 다가왔고, 그 마음을 생각하며 만들어 갔죠. 여행을 좋아하고, 시간이 되면 여기저기 가려고 했어요. 혼자 다닌 적은 별로 없는데 최근 큰 용기를 내서 화보 촬영 후 베를린에 혼자 5일간 남았어요(웃음). 지나를 연기하며 배낭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더라고요. 

해변에서 재훈에게 지나가 처음으로 소리 높여 도와 달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어요. 영화에서 두 사람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이고, 저도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했어요. 사실 쉽게 그 장면을 오케이 받지 못했어요, 몇 번을 더 찍었죠. 이병헌 선배가 '진짜로 내가 뒤돌아 볼 수 있게 외쳐야 한다. 날 돌아보게 해달라'고 격려해 주셨고, 그 말에 힘을 얻어 진심으로 소리쳤죠."

 영화 <싱글라이더>의 한 장면.

영화 <싱글라이더>의 한 장면. 지나는 호주에서 본인이 아르바이트 하며 모은 돈을 또 다른 한국인 워홀러들에게 뺏기고 만다. 그 상실감을 안소희가 표현해야 했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아마도 안소희에겐 이번 작품에서 자신을 한 번 깨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현장에서 살갑게 선배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했고, 연기에 대해서도 주저하다가 여러 번 여쭤봤다"는 말에서 예상할 수 있듯 연기에서도 실제 현장에서도 그는 매번 용기를 장전해야 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싫은 마음"에 조용히 지내는 편이라지만 연기만큼은 "전보다 나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할 정도로 열정이 가득했다.

오랜 꿈

그 열정의 또 다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싱글라이더> 캐스팅 과정에 있다. 캐스팅 단계 직전 시나리오만 나온 상태에서 작품을 접한 후 그는 "만약 제작이 된다면 꼭 알려 달라"고 당부할 정도로 관심을 두고 있었고, 이병헌과 공효진 참여 소식이 들린 후 한 번 더 "꼭 참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다행히 이주영 감독과 만남이 성사될 수 있었고, 안소희의 마음을 감독은 읽었다.

"감독님이 절 캐스팅하기로 한 건 아니었는데 시나리오를 쓸 때 제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며 지나를 썼다고 하셨어요. 되게 놀라고 감사했어요. 만약 이 작품에 참여한다면 진짜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2007년 김민희와 함께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비중 있는 캐릭터를 맡긴 했지만 연기력에서 사실 안소희에 대한 관객의 평은 박했다. 2013년 원더걸스 탈퇴 이후 연기자를 전향한 후에도 비슷한 꼬리표가 붙었다. 이런 평에 "속상한 면도 분명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게 많은 게 사실"이라며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게 제 입장에선 가장 좋다"고 말했다.

 영화 <싱글라이더>에서 지나(유진아) 역의 배우 안소희가 23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리고 또 하나 잘 알려지지 않은 속마음이 있다. 원더걸스 해체 때보다 훨씬 이른 시점부터 안소희는 배우의 길을 품고 있었다. 가수와 연기를 병행하는 이들도 많은데 왜 탈퇴를 했는지 묻자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전했다.

"그렇죠. 꽤 오래 전부터 한 분야에 집중하고픈 마음이 컸어요. 원더걸스 활동 때는 물론 무대가 재밌었고, 단체 활동이다 보니 거기에 중심을 두는 게 맞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국에도 간 거고. 귀국한 뒤 다른 멤버들과 공백기를 갖기로 했을 때 '이젠 연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JYP 오디션을 볼 때 춤과 노래만 한 게 아니라 연기도 했잖아요. <뜨거운 것이 좋아>를 했을 때 '나, 연기할래!' 이런 마음이 커졌어요. 시기를 보고 있었는데 때가 온 거죠. 그래서 멤버들과도 상의했고, 이해를 해준 거죠."

끝이 아닌 출발

그런 의미에서 안소희는 원더걸스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싱글라이더> VIP 시사 때도 멤버들이 함께 와 감상을 나누고 갔다. "제가 많이 알려진 이미지가 원더걸스 때니 그걸 지우고 싶지 않다"며 "다양한 작품을 하면서 거기에 덧칠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고 나름의 계획을 밝혔다.

"하나씩 자연스럽게 칠해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원더걸스 해체라는 단어 자체로는 뭔가 마무리 하는 느낌인데 그보단 여러 생각이 들어요. 해체 기사가 나온 날 예은 언니에게 연락이 왔는데 언니도 많은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 같아요. 다음이 중요하고, 다음 걸 잘해내야죠."

 영화 <싱글라이더>에서 지나(유진아) 역의 배우 안소희가 23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JYP 오디션으로 발탁되기 전까지 그는 방직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곁에서 자신이 연습하던 보아나 H.O.T 춤을 선보이고, 드라마 대사를 외워 가족을 놀라게 하는 아이였다. "<명성황후>나 <대장금> 같은 사극을 본 날엔 한복을 입고 집에 있기도 했다"며 그가 멋쩍은 듯 웃어보였다. 마냥 조용해 보이고 얌전해 보이는 그에게 다양한 끼와 재능이 이미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밝음과 그늘이 동시에 존재하는 안소희의 면모는 분명 좋은 작품을 통해 승화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싱글라이더>는 배우 외길을 걷기로 한 그에게 진짜 출발점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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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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