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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인 지난 25일 오후 서울광장 일대에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회원을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탄핵 기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탄핵기각' 친박 집회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인 지난 25일 오후 서울광장 일대에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회원을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탄핵 기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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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모'(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는 과연 서울시청광장의 무법자일까. 지난 20일 <노컷뉴스>는 "무전 취식 박사모…태극기만 봐도 스트레스" 제하 기사에서 박사모 시위대에게 시달리는 인근 상인의 사연을 소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익명의 한 상인은 박사모 회원들이 무전취식을 일삼거나 탄핵 반대를 요구하며 설교했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지난 11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시청 앞 서울도서관이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더 이상 화장실을 개방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나온다. 서울도서관은 지난해 11월 26일부터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매주 토요일 오후 10시까지 화장실을 개방했다. 하지만 태극기 집회 참가자 일부의 소란으로 인해 경찰 1개 중대와 공공안전관을 배치하고, 정시에 문을 닫기로 방침을 변경했다.

함부로 결론을 내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12월 31일, 태극기 집회 현장의 한가운데 있었다. 세월호 리본을 맨 가방을 들고 시청광장 앞 도너츠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에는 박사모 회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SNS상에는 세월호 리본만 봐도 폭행을 일삼는다는 '박사모 경계령'이 내려져 있었다. 하지만 기자는 오히려 노트북 좌석을 양보받았고, 폭행이나 위협은 없었다. 오로지 구호를 통해서 태극기 집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최자로 보이는 이가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며 1월 6일 오후 1시 삼각지에 모여줄 것을 호소하고 있었다.

태극기 집회 이틀 뒤인 지난 2월 20일 월요일, 그 카페를 다시 찾았다. 종업원에게 "토요일에 비해 한산하네요"라 말을 건넸다. 멋쩍게 웃던 그는 "토요일은…(아휴)"하며 고개를 연신 저었다. 서비스업 종사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취재 목적을 밝히자 그는 난색을 보였다. 생각하기도 싫었던 것일까. 떠올려 보면 참가자들은 음료를 마시기도 했지만, 그저 앉아있거나 언 몸을 녹이며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추위 견디려 핫바·라면 등 애용, 단가 낮아 매출에 도움 안 돼"

시청 후문 입구에 걸려있는 화장실 안내도. 서울시는 작년부터 집회 참가자들의 편의를 위해 화장실을 개방해왔다.
 시청 후문 입구에 걸려있는 화장실 안내도. 서울시는 작년부터 집회 참가자들의 편의를 위해 화장실을 개방해왔다.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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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광장 주변의 상점을 수소문했다. 2호선 시청역 지하 1층의 편의점 점주 지아무개(55)씨는 "행패는 없었다. 가끔 있는 '진상' 손님은 있었지만 평소와 같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특이한 것은 매출의 변화였다. 촛불집회 당시에는 매출이 급상승했으나, 태극기 집회가 있는 지금은 원래대로 줄었다는 것.

"평일이 원래 100이라 치면 (탄핵요구) 촛불집회 때에는 400 가까이 벌었지. 그때는 LED 촛불이나 각종 물건들이 빠짐없이 나가서 동이 났어. 지금은 많이 줄었지. 00번 출구 앞 편의점 가 봐. 거기도 줄었을걸?"

지하의 편의점은 집회에 참석하러 가며 지나치는 길목에 있다. 지상은 어떨까. 시청 광장 바로 건너편 상점을 찾았다. 익명을 요청한 상인 이아무개(40)씨도 "피해는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씨는 토요일에 혼자서 상점을 운영하는데,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몰려서 "감당하기 버겁다"고 말했다.

"평소 100명 정도인데 토요일에만 400명이 찍혀요. 매상이 올랐느냐고요? 단가가 낮은 제품만 사 가는데요. 주로 800원어치 기본 컵라면이나 온음료, 삼각김밥을 사 먹고 가요. 돈 되는 곽 과자나 상품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세요."

집회가 끝나면 쓰레기가 큰 봉지에 2~3개가 나온다고 했다. 평소에는 하루에 1개 정도 나오는 것에 비교하면 상당량이다.

반면 도로 건너 인접한 다른 편의점의 경우 "차 벽에 막혀서 장사가 전혀 안 된다"고 말했다. 차 벽에 영향받지 않는 지하의 카페에서는 "오히려 커피 매출이 늘어서 좋다"는 의견도 나타났다. 이는 태극기와 촛불의 차이라기보다, 탄핵 정국 장기화로 생겨나는 문제로 보였다.

"태극기냐, 아니냐" 태극기 게양 주문하거나 정치적 의견 피력

시청역 앞, 힘 없이 걸려있는 태극기.
 시청역 앞, 힘 없이 걸려있는 태극기.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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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광화문은 집회의 중심지다. 이곳에서 오래 장사한 상인이라면 수많은 종류의 집회를 겪었을 테다. 기자가 만난 상인들은 공통적으로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정치적 의견을 강하게 표출한다"고 말했다. 상인에게 노골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묻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호쾌하게 웃던 지하의 지아무개(55)씨.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의견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갑자기 박원순이 사퇴해야 한다고 말하길래 물었지. 왜 사퇴해야 하나요? 그런데 그러더라고. 태극기가 국가 상징물인데, 시청에 태극기 게양대 하나 안 만들어놓는 게 말이 되느냐고. 그러다가 또 문재인 빨갱이라 그래. 그건 또 왜 그러냐니까 NLL은 보호하지 않고 세월호나 참배하러 가니 빨갱이래. 공감해서 웃기도 하고, 그냥 눙치기도 하지."

여성인 이아무개씨는 "저는 '태극기파냐, 뭐(촛불파)냐'는 질문을 받고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편의점에 게양하려고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생업이 위협받는 게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시종일관 그는 상점의 위치나, 자신의 인적사항이 노출되는 걸 두려워했다. 지하에서 만난 또 다른 여성 상인은 "정치적 의견은 개인 판단의 자유라 생각한다" 말하면서도 "함부로 대답했다 잘못되기 쉬워 (대답을) 꺼렸다"고 말했다.

두려움보다 "애처로움"... 살기 위해 '입 닫는' 상인들

2호선 시청역 지하 상점가. (사진의 편의점은 기사와 상관이 없습니다)
 2호선 시청역 지하 상점가. (사진의 편의점은 기사와 상관이 없습니다)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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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인들은 주요 언론에서 노출된 박사모의 '행패'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힘들기는 하나 '행패'라 보기에는 표현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지아무개씨는 "예전 동성애자 집회 때 종교 믿는 사람이랑 집회 지지자랑 실랑이를 한 적은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없어. 뭘 부수거나 우리를 괴롭히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아무개씨는 나이 많은 손님들이 추위에 떨면서도 집회에 나서는 것을 보고 "동감하지는 않지만,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평범한 어르신들이라고 설명했다.

"집회 참석하신 분들이 말씀하세요. 힘들지만 내 자식들에게 좋은 나라 물려주고 싶어서 나왔다고. 개인의 정치적 의견인데 어쩔 수 없죠. (제가) 힘들어도 추워서 몸 녹이러 오신 분들이고, 물건을 부수거나 행패를 부리지는 않아요."

시청 광장에는 박사모, 탄기국 측 농성장이 서 있었다. 텐트 옆에는 큰 태극기 게양대가 서 있었다. 텐트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인적은 드물었다. 토요일의 폭풍 같은 함성이 일어나던 곳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탄핵 정국이 장기화 되며 평범한 사람들은 서로를 증오하게 되었고, 상인들은 살아가기 위해 입을 닫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1인 미디어 또바기(ddobaginote.tistory.com)에도 게재됩니다.



태그:#태극기, #탄기국, #박사모, #시청광장,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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