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살인의 추억> <공동경비구역 JSA> <그놈 목소리> <이태원 살인사건>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뭘까?

위 작품들은 모두 SBS 간판 탐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아래 <그알>)를 통해 널리 알려진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그알>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그알>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한 편의 추리 영화나, 미드의 형식과 흡사하다.

'탐정 사무소'가 연상되는 세트장부터, 제작진과 MC가 시청자에게 단서와 질문을 하나씩 던지며 범인을 좁혀 나가는 구성, 차근히 추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런데 말입니다"하고 한 번씩 치고 들어오는 반전까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 제작진의 집요한 취재로 밝혀지는 진실들, 거기에 이를 쉽고 빠르게 이해·몰입하도록 만드는 특유의 구성까지, <그알>은 새로운 소재를 찾는 영화 제작자들에게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집요한 '중년탐정' 김상중의 '탐정 사무소'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왜 지금 다시 이 사건을 꺼내들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는 '중년탐정' 김상중의 탐정 사무소를 연상케 한다. ⓒ SBS


<그알>의 박진홍 CP에 따르면 "아주 초기부터 팩트를 기반으로 추리 소설적인 구성을 유지해 왔고, 팀원들 모두 이런 구성에 오랜 훈련이 돼 있는 상태"라고. 박 CP는 <그알>에서 다룬 사건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고, 같은 사건을 다루더라도 <그알>에서 다루면 더 크게 화제가 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한 번 방송됐다고 끝이 아니라, 한 번 소재가 된 이야기는 사건이 완전히 해결되거나 의혹이 풀릴 때까지, 집요하게 다룬다는 점이 아닐까"라고 답했다.

영화 <재심>의 소재가 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경우, '하나의 사건, 두 명의 범인'(2003년 6월 21일 방송), '소년범과 약촌 오거리의 진실'(20013년 6월 15일 방송), '친구의 비밀-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까지 정규 회차로만 세 번, 2013년 연말 송년 특집에 추가 취재한 것을 곁들여 짧게 방송한 것까지 합치면 총 네 번을 다뤘다. 처음에는 사건의 기본적 사실을, 두 번째는 군산에서 잡힌 진범에 관해, 세 번째는 친구의 증언과 재심의 필요성에 대해 다뤘는데, 이 같은 집요하고 끈질긴 <그알>의 취재 방식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사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공감을 돕고, 영화 제작자들이 캐릭터를 잡거나 이야기를 만들 때 뼈대가 될 실화의 숨은 이야기들을 다각도로 전해준다. 

<그알> 원작 영화는 지금도 제작 중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이끈 박준영 변호사와, 영화에서 그의 역할을 맡은 배우 정우.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이끈 박준영 변호사와, 영화에서 그의 역할을 맡은 배우 정우. ⓒ 오퍼스픽쳐스


공전의 히트를 친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 그리고 현재 박스오피스 1~2위를 유지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재심>까지. <그알>에 담긴 영화 같은 현실들은 지금도 스크린으로 옮겨지고 있다. <재심>에서 정우가 연기한 이준영 변호사의 실제 인물 박준영 변호사의 또 다른 '재심 프로젝트' 중 하나이자, <그알>에서도 2002년 5월과 2014년 9월, 두 번에 걸쳐 다뤄진 '삼례 나라슈퍼 3인조 살인사건'의 영화화가 결정됐다.

'삼례 나라슈퍼 3인조 살인사건'은 1999년 2월,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침입해 할머니(76)를 숨지게 한 혐의로 최대열씨 등 3명이 유죄가 인정돼 처벌받았으나, 이후 진범이 나타난 사건이다. 하지만 당시 경찰과 검찰은 이미 수감 중인 이들이 누명을 썼다는 사실이 밝혀질까 두려워 사건을 은폐했다. 이후 17년이 지난, 2016년 3월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고, 그 해 10월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김훈 중위 판문점 의문사 사건'을 다룬 2014년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김훈 중위 판문점 의문사 사건'을 다룬 2014년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 SBS


이미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영화화된 적이 있는 '김훈 중위 판문점 의문사 사건'도 다시 한번 영화로 만들어진다. '김훈 중위 사건'은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 중 하나로,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인근 비무장지대 경비초소에서 김훈 중위가 오른쪽 관자놀이에 의문의 총상을 입고 사망한 사건이다.

군 당국은 3차례에 걸쳐 김훈 중위의 사인을 '자살'이라고 발표했지만, 김 중위의 아버지와 대법원, 국민권익위원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은 '자살로 단정할 수 없다'며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알>은 1998년, 2010년, 2014년 총 4편에 걸쳐 이 사건을 다뤘다.

이번 제작될 영화 제목은 2010년 <그알> 에피소드 제목이었던 '아버지의 끝나지 않은 전쟁'과 유사한 <아버지의 전쟁>이다. 주연으로는 한석규가 캐스팅됐으며, <공동경비구역 JSA>가 김훈 중위가 북한군과 우정을 나눴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것과 달리, <아버지의 전쟁>은 김훈 중위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군과 전쟁을 시작한 3성 장군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다.

이 사건은 어떨까?

 지난달 17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대통령 5촌 간 살인사건'의 한 장면.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대통령 5촌 간 살인사건'의 한 장면. ⓒ SBS


"대법원의 재심 결정 이후 검찰 입장이 확 바뀌었다. 난 그 이유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태원 살인사건> 선례가 있잖나. 영화 때문에 패터슨을 잡을 수 있었다. <재심>의 흥행은 알 수 없지만, 영화화된다는 사실이 검찰을 많이 자극한 것으로 본다. 실화의 영화화가 여러 긍정 효과가 있겠지만, 해결이 쉽지 않은 사건에 큰 힘이 됐다." - 박준영 변호사 

<재심>의 경우, 재심 결정이 내려지기 전 영화 제작이 결정됐고, 촬영은 무죄 판결 전 끝났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진범은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진행 중이던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의 '재심 프로젝트' 스토리 펀딩을 보고 늦게나마 진실을 밝힐 용기를 냈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미궁에 빠진 사건, 특히나 피해자가 공권력 등 거대 권력과 싸우고 있는 경우, '여론'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재심>의 김태윤 감독은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사건들이야 어쩌겠는가.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는, <그알>이 취재했던 여러 사건의 영화화를 기대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영화화됐으면 싶은' 사건으로는, <그알> 레전드 에피소드로 꼽히는 '엽기토끼 살인사건'과,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세모자 사건' 등이 거론된다. 이 외에도 최근 방송된 '대통령 5촌 살인사건', 박준영 변호사의 '재심 프로젝트' 중 하나로 최근 재심이 결정된 '무기수 김신혜 사건' 등도 영화화 할만한 극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추천되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그알 재심 정우 강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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