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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 조상이나 부모를 잘 만나 인생을 호의호식하며 편안하게 사는 사람을 흔히 '금수저'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제자를 잘 만난 덕분에 주변으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지난 9일 저녁 서울 종로2가 YMCA 옆에 있는 '문화공간 온'에서 조촐하면서도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이자 주변의 부러움을 한몸에 산 사람은 소설가 박도(72) 선생으로 이곳에서 박 선생의 근작 <허형식 장군>(눈빛출판사 간) 출판기념회가 열린 것이다.

<허형식 장군>출판기념회에서 허형식 장군 사진을 배경으로 선 박도 선생. 이날 박 선생은 30년만에 제자들을 만나는 설렘으로 밤잠을 설쳐 눈이 부어 있었다.
▲ 소설가 박도 선생 <허형식 장군>출판기념회에서 허형식 장군 사진을 배경으로 선 박도 선생. 이날 박 선생은 30년만에 제자들을 만나는 설렘으로 밤잠을 설쳐 눈이 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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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출판기념회는 박 선생이 이대부고 교사 시절에 가르쳤던 제자들이 스승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이제 중년이 된 제자들은 학생시절로 돌아가 저마다 가슴에 명찰을 달고 있었다. 필자 역시 출판기념회에 더러 참석해 보았지만 여느 행사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마지막 수업'을 연상시켰다.

행사 참석자는 50여 명에 달했지만 참석자는 극히 단출했다. 박 선생의 고교 시절 동창생, 이대부고 재직 시절의 동료교사(임무정‧이동재‧김성 선생), 그리고 박 선생이 허형식 장군 책을 쓰면서 맺은 인연들과 여러 제자들이 함께 했다.

외부 초청인사로는 이종찬 우당기념관장(전 국정원장), 석주 이상룡(李相龍) 선생 손자 이항증 선생(전 광복회 경북지부장), 장세윤 박사(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장),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 인권운동가 고상만, 후배문인 정용국‧김이하‧김윤태, 고교동창 이관세 씨 등이었다.

이항증 선생은 허형식 장군의 조카뻘로 박 선생을 중국대륙 항일유적지로 동행, 안내한 분이다. 장세윤 박사는 국내 최초로 허형식 장군과 관련한 논문을 발표한 분이며, 필자는 허 장군을 국내 언론에 처음으로 소개한 인연이 있다.

축사를 하는 이종찬 우당기념관 관장
 축사를 하는 이종찬 우당기념관 관장
ⓒ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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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종찬 관장이 첫 번째로 축사를 했다. 흔히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불리는 우당 이회영(李會榮) 선생의 손자인 이 관장은 허형식 장군의 위대함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듣고 보니 참으로 뼈아픈 얘기였다.

"우리나라 국호는 '대(大)한민국'인데 우리 국민들 마음은 '소(小)한민국' 같다. 외국 것만 부러워하고 중요시하는 풍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독립운동사만 해도 그렇다. 빨치산이라면 흔히 체게바라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허형식 장군이 훨씬 앞선다. 김일성 일파가 소련으로 도망을 갈 때도 허 장군은 '여기서 싸워야지 무슨 소리냐?'며 만주에 남아서 끝까지 투쟁하다가 장렬하게 순국하셨다. 그럼에도 허 장군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북에서는 김일성이 독립투쟁사를 독점하고 있고 남에서는 숨겨진 역사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박 선생이 쓴 <허형식 장군>은 진흙 속에서 진주를 캐낸 셈이다."

허형식(許亨植·1909~1942) 장군은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을 지낸 분으로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빨치산)으로 불린다. 경북 구미 출신의 허 장군은 만주군 장교를 지낸 박정희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박도 선생 역시 구미 출신으로 박 선생은 평소 허형식 장군에 대한 책 집필을 필생의 업으로 여겨왔다. (참조 :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의 최후)

박 선생은 젊어서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났다고 한다. 중동고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이관세 박사(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이날 "박 선생은 고교 시절부터 문예반에서 활동하면서 교지 편집장을 지냈다"며 "박 선생이 고교 시절에 쓴 '국화꽃 필 무렵'이라는 단편소설을 읽고서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한 박 선생은 경기도 여주제일중학교, 서울 오산중학교, 중동고등학교, 이대부속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33년간 봉직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기도 한 박 선생은 그간 작품집으로 장편소설 <약속>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 <제비꽃>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비어 있는 자리> <일본기행>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등을 펴냈다.

박 선생의 저작 가운데 주목할 점은 독립운동사 관련 저서들인데 역사학자 못지않은 열정으로 다양한 책들을 출간했다. <항일유적 답사기> <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 <영웅 안중근> <사진으로 엮은 한국독립운동사>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등이 있으며, 조만간 <미군정 3년>도 펴낼 계획이다.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 인연으로 만난 4인 (왼쪽부터 필자, 이규상 눈빛출판사 대표, 박도 선생, 장세윤 박사).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 인연으로 만난 4인 (왼쪽부터 필자, 이규상 눈빛출판사 대표, 박도 선생, 장세윤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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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관련 저작들은 대부분 눈빛출판사에서 나왔다. 이날 출판기념회에 초대 손님으로 참석한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국어교사를 역사교사로 바꿔 놓아 죄송하다"는 우스개에 이어 "다들 박 선생님과 같은 역사인식을 갖고 계신다면 우리나라가 10년은 앞서 선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가문을 꼽으라면 안중근 가문, 석주 이상룡 가문, 우당 이회영 가문, 왕산 허위 가문을 꼽을 수 있다. 허형식 장군은 왕산 가문이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석주의 손자이자 허형식 장군의 조카뻘인 이항증 선생과 우당의 손자인 이종찬 관장이 참석해 더욱 뜻깊었다.

왼쪽부터 이항증 선생, 박도 선생, 이종찬 관장, 필자
▲ 독립운동가 후예들 왼쪽부터 이항증 선생, 박도 선생, 이종찬 관장,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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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출판기념회를 이대부고 26회 졸업생 천경환(51)씨 등 30여 명이 십시일반으로 성의를 모아 준비했다. 천씨는 인사말을 통해 "박 선생님은 소탈하시고 진솔하신 분으로 제자들 가슴 속에 참 스승으로 자리잡고 있는 분"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씨(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도 이날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는데 그는 22회 졸업생이다.

행사를 준비한 제자 천경환(오른쪽) 씨와 함께 한 박도 선생
 행사를 준비한 제자 천경환(오른쪽) 씨와 함께 한 박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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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부고 22기 제자들과 함께 한 박도 선생. 오른쪽 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씨.
 이대부고 22기 제자들과 함께 한 박도 선생. 오른쪽 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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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저자와의 시간' 차례가 되었다. 한 제자가 "그간 쓰신 책을 얼마나 팔았느냐"고 물었다. 박 선생은 "언젠가 책 10권을 쓰겠다고 얘기해 놓고선 후회를 많이 한 적이 있는데 돌이켜보니 무려 39권이나 썼다"며 "모두 여러분 덕분에 많이 팔았다"고 웃어넘겼다. 대중적 인기를 얻은 베스트셀러는 없지만 박 선생의 책들은 생명력이 긴 책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저녁 9시경, 마지막 순서로 '종례시간'이 되었다. 박 선생은 "30년만에 여러 제자들과의 만남이어서 길게 준비했노라"며 교사 시절을 회고했다.

"지난 시절 부족하고 잘못한 일도 참 많았습니다만, 제가 잘 한 일이라면 교단생활 33년을 평교사로 지낸 것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교장, 교감 같은 감투에 연연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자리는 결코 마련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허형식 장군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박도 선생의 이대부고 시절 제자들
 <허형식 장군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박도 선생의 이대부고 시절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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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선생은 교사, 작가, 기자로 70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왔다. 평교사로 33년을 봉직한 후 정년을 몇 년 앞두고 후진을 위해 조기에 은퇴하였다. 이후 시골생활을 통해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저술활동을 통해 인생 후반기를 불태웠다. 끝으로 박 선생은 초로의 제자들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했다.

"인생은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중요합니다. 세상에 공짜란 없으니 다들 열심히 사십시오. 그리고 늘 아래를 내려다보고 살아야 합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며 꿋꿋이 살아가길 바랍니다. 또 진정한 강자는 위기에 강한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꿈을 가진 인생을 사십시오."

박 선생은 자신의 '꿈' 세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여러 제자 가운데 조국통일의 역군이 나오길 바라며, 둘째는 그간 자신이 쓴 작품이 통일문학상을 수상하는 것, 마지막으로 만일 당신의 저서가 용케도 많이 판매된다면 자신의 호(설송)를 딴 '설송문학상'을 제정하여 돈이 없어서 책을 못 내는 문인들을 지원해주고 싶다고 했다.

예수, 공자, 부처, 그리고 철학자 플라톤 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훌륭한 제자들을 두었다는 점이다. 만약 이들에게 제자가 없었다면 그들의 가르침은 후세에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흔히 사제 간을 두고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고 한다. 스승은 학생들을 가르침으로써 성장하고, 제자는 스승으로부터 배움으로써 진보한다는 말이다.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온 것은 사제 간의 인연, 정(情)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허형식 장군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박도 선생의 이대부고 시절 제자들
 <허형식 장군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박도 선생의 이대부고 시절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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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례를 끝으로 식순이 모두 끝이 났다. 그냥 헤어지기 섭섭했던지 누군가의 제안으로 다함께 일어나 모교의 교가를 제창하였다. 졸업한 지 30년이 지난 중년들임에도 10대 시절에 익힌 교가는 옛날 그대로였다.

박도 선생의 '마지막 수업'은, 아니 출판기념회 모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태그:#소설가 박도 선생, #허형식 장군, #출판기념회, #이종찬, #이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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