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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퇴진 후,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까요? 광화문 광장의 '퇴진 캠핑촌'은 촛불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대안 토론 광장을 엽니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와 <광화문 퇴진 캠핑촌 광장토론위원회>가 공동기획했습니다. [편집자말]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월에는 탄핵하라-14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월에는 탄핵하라-14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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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장석준 정의당 부설 미래정치센터 부소장입니다.... 편집자말

촛불 항쟁은 어느덧 '촛불시민혁명'이라 불리고 있다. 작년 12월 2일에서 9일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혁명'이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4월 총선 결과로 형성된 원내 정치 지형에서는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가 거의 불가능했지만 오로지 촛불 시민의 힘으로 이를 밀어붙였다.

그래서 강력한 여당 새누리당을 둘로 쪼개고 박근혜를 직무 정지시켰다. 그러나 아직 '혁명'이라 부르기에는 섣부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인용 판결이 나와야 비로소 '혁명'이라 불릴 수 있다.

기존 대의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터져 나온 혁명이 아니라 기존 대의제가 대중운동의 뜻에 따라 움직이도록 만드는 방식의 혁명이기 때문에 이런 지루하고 불안한 과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도 불안 요소가 상존한다.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촛불 대오를 최대 규모로 유지하면서 광장을 완강히 지키는 수밖에 없다.

이런 특성 때문에 1987년 민주 항쟁과 비교해보면 '1987년을 이미 넘어선 점'과 '아직 1987년에 미치지 못한 점'이 공존한다. 냉정히 보면, 현재 촛불 항쟁은 6월 항쟁이 6.29 항복 선언으로 거둔 '절반의 승리'조차 이루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아직 6월 항쟁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달리 보면, 이미 6월 항쟁 수준을 넘어선 면도 있다. 수백만 대중이 평화 시위로 권력을 무장 해제시켰다는 점이 그렇다. 비폭력 투쟁 전술을 놓고 논란이 많았지만, 공권력이 광장을 내주고 그래서 수백만의 평화 시위가 가능했던 것은 사회 세력 관계가 촛불 시민 쪽으로 이미 기울었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 민주화가 대단히 형식적이고 제한된 형태를 취했다고는 해도 그 결과로 사회 세력 관계의 기본 균형이 1987년 당시와는 다르다. 여기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엄청난 진실이 불을 붙이자 세력 관계가 확연히 기울었고, 누구보다 공권력 자체가 이를 감지한 결과가 평화 시위 허용이었다. 이 공간에서 1987년에는 없던 네트워킹 능력으로 무장한 시민들이 축제를 통해 시대정신을 만들어낸 것은 분명 1987년을 넘어선 성취였다. 

그러나 촛불 항쟁의 미래도 과연 1987년을 훌쩍 뛰어넘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6월 항쟁도 그렇고 지금의 촛불 항쟁도 그렇고 그 토대에는 분명 사회경제적 불만이 자리하지만, 이것이 중심 쟁점은 아니다. 중심 쟁점은 어디까지나 '직선제 개헌 쟁취'나 '박근혜 퇴진' 같은 정치적 요구다. 사회경제적 불만이 밑에 깔려 있다 해도 이런 정치적 요구로 치환돼 나타난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끝없는 노동탄압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천안 신부동 공원에서 법원까지 오체투지를 벌이고 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끝없는 노동탄압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천안 신부동 공원에서 법원까지 오체투지를 벌이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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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논리로만 보면, 이런 형태의 투쟁이 사회경제적 투쟁으로 이어질 필연성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 항쟁은 어쨌든 7, 8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둘을 이어준 가장 강력한 요소는 '승리'의 경험이었다. 정치 전선에서 승리를 맛본 대중은 이를 사회경제 전선에서 반복하길 원했고 실제 행동에 나섰다.

당시는 자생적 파업과 민주노동조합 설립이 이런 욕구의 적절한 배출구가 돼주었다. 촛불 항쟁도 2017년판 노동자 대투쟁을 낳을 것인가? 반복해서 말하지만, 그럴 필연성의 근거는 전혀 없다. 즉, 2017년이 사회경제적 투쟁의 폭발이라는 점에서 1987년보다 못할 가능성은 엄존한다.

탄핵 인용 판결 이후 '승리'의 경험을 다른 전선으로 전이하려는 대중의 욕구가 과연 분출할 것인가 아닌가가 모든 것을 판가름할 유일한 변수다. 조건은 1987년보다 훨씬 좋기도 하고, 훨씬 나쁘기도 하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민주노총도 있고 진보정당들도 있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함정일 수도 있다. 가령 노동조합이 기업별 노동조합의 이미지로 굳어 있기 때문에 투쟁에 나설 이유와 의지를 지닌 대중에게 노동조합 설립이나 가입이 적절한 배출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점에서 1987년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해진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회경제적 전선에서'승리'를 반복하려는 대중의 욕구를 불러일으킬 것인가? 촛불운동 주체들이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물음이다.

안타깝게도 이 고민이 기대보다는 치열하게 이뤄지는 것 같지 않다. 특별검사와 헌법재판소가 주도하는 정국이 아직 매듭을 짓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정당들을 중심으로 대통령선거 후보 선출 국면으로 넘어가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대중운동의 리듬은 이러한 일정과는 다르게 전개돼야 한다. 특히 탄핵 인용 이후 대선이 있고 새 정권이 들어서면 대중운동이 다시 시작된다는 식의 관점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잘못된 타성이고 게으른 관성이다. 6.29 선언 있고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진 뒤에 대선이 실시됐던 1987년과 달리 이번에는 탄핵 인용 판결이 날 경우 곧바로 대선이 실시된다. 이 점이 위기이자 기회다. 대중운동이 손 놓고 방관한다면, 승리의 열기는 대선으로 모두 빨려들고 만다.

반면 대중운동이 적극 개입한다면, 대선과 동시에 2017년판 노동자 대투쟁이 전개될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대선 자체가 이전의 대선들과는 다른 논리 아래 전개될 수 있다. 정권 교체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진보정당 후보의 득표가 더 많아진다는 의미에서 달라진다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대선 지형 전체가 대중운동의 눈치를 보면서(물론 다른 쪽에서는 대립각을 세우면서) 구축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가령 대중운동이 요구하고 광범한 여론의 지지를 받는 대단히 구체적인 개혁 과제를 대선 과정에서 실제 입법화할 수도 있다. 집권 후 실시하겠다며 입으로만 약속할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입법하라고 요구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한국 정치에서는 전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대선과 대중운동 정세가 이렇게 서로 만난 것 자체가 전례 없는 상황이다. 이 상황을 역사적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입법 성과 자체보다 더 중요한 성과는 이런 작은 승리를 통해 이후 정치 지형을 대중운동에 이로운 방향으로 짤 수 있다는 점이다. 누가 집권하든 차기 정권 초기에 대중운동이 공세를 펼칠 수 있는 지형을 능동적으로 미리 만들어낸다는 게 진정 중요하다. 

그럼 어떤 구체적인 개혁 요구를 내걸 것인가? 토론자는'최저임금제 개혁'이 그런 의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아마 더 좋은 의제들이 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조건이 있다. 첫째, 조직 노동보다는 노동조합 바깥에 있는 대중이 관심을 갖고 공감하며 행동에 함께 할 수 있는 요구여야 한다. 실은 1987년 여름에도 그랬다.

둘째, 아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승리'를 쟁취하고 확인하며 공유할 수 있는 요구여야 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전선에서'승리'의 경험을 반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촛불운동 주체들 사이에 일정한 합의가 이뤄진다면, 헌법재판소 판결 이전에라도 국회에 입법화를 요구하며 광장의 주목을 요청해야 한다. 이런 개혁 공세야말로 세력 관계를 촛불 시민들에게 이롭게 지탱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태그:#박근혜 탄핵, #최순실 국정농단, #광화문 캠핑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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