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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 AS노동자로 살면서 바라본 삼성은 늘 1등이었다. 회사는 '삼성맨'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1등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라고 말했다. 삼성은 고객들이 서비스가 좋아 삼성제품을 선택하기 때문에,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것이 경쟁력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삼성은 가정에 방문해 에어컨 실외기를 고치고 냉장고, TV를 수리하는 외근 기사에게 넥타이를 매줬고 구두를 신겼다. 위험천만한 고공작업과 악천후에도 '빨리빨리'를 강요했다. 삼성에겐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안전보다 눈에 보이는 고객평가와 실적이 중요했다. 일하다 다치면 산재처리는커녕 "일이 많은데 언제 복귀할 수 있냐"고 채근했다.

삼성맨의 현실

최종범 열사가 신었던 구두.
 최종범 열사가 신었던 구두.
ⓒ 추적60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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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가 끼니를 떼우기 위해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 라면, 김밥, 편의점 도시락이었다. 건당수수료를 받으며, 성수기에는 주120시간까지 근무해도 시간외근무수당을 받지 못했다. 비수기에는 최저임금도 못 받으며 대출로 생활해야 했다. 회사는 늘 내년에는 좋아질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는 것은 총수일가의 삶뿐이었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선택했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개처럼, 노예처럼 살았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제는 권리를 되찾아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며 '인간선언'을 했다. 1등 서비스의 뒤에는 살인적인 실적압박과 노동착취가 있었다. 하지만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것도 무노조 경영을 자랑하는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세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아니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배고파서 못 살겠다, 진짜 사장 나와라",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고 힘차게 외쳤다. 이 과정에서 2명의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먼저 간 동료들은 "동료들의 힘든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며 자신을 바친다고 말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렇게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단지 '삼성이니까' 하나만 붙으면 고용노동부도, 경찰도, 사법부도 모두 삼성 편이었다.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었다.

그렇게 뼈저리게 절감한 대한민국의 현실이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더욱 폭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뒤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최순실이 국정을 좌우해왔다는 사실은 온 국민을 충격을 빠뜨렸다. 그리고 그 뒤에, 비선실세에 대한 자금지원과 정경유착으로 경영권을 세습하고 '경제대통령' 노릇을 해온 삼성 이재용이 있다는 진실은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삼성이 쌓은 적폐를 청산하자고 말하며, "국정농단 진짜 몸통, 이재용을 구속하라"고 외치고 있다. 광장의 촛불민심 역시 뇌물을 주고 권력을 세습해온 재벌 총수를 구속, 처벌해 정의가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재용에 대한 영장청구 기각은 한국사회에서 삼성 재벌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법부는 법조인들이 노숙농성에 돌입하게 할 만큼 낯부끄러운 근거로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삼성과 재벌들에 의해 장악되었고 정의를 말하는 사법부 역시 이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박근혜 퇴진만으로는 안 된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이 지난 2014년 5월 2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생활임금보장과 노조탄압 중단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연 모습. 당시 노동자들은 앞서 염호석 양산센터 분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건을 계기로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노숙 투쟁을 벌였다.
▲ "삼성은 학살을 멈춰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이 지난 2014년 5월 2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생활임금보장과 노조탄압 중단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연 모습. 당시 노동자들은 앞서 염호석 양산센터 분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건을 계기로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노숙 투쟁을 벌였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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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만으로는 안 된다. 박근혜, 최순실에게 단호한 기득권세력들도 재벌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재벌이야말로 대한민국 적폐를 쌓은 1등 공신이며, 정권이 교체되어도 정경유착과 막강한 경제권력으로 한국사회를 농단해온 장본인이다. 재벌의 권력 세습을 통해 얻을 것은 총수일가의 이익 보전일 뿐이며, 국민적 희생과 노동자 착취에 다름 아니다.

이에 오는 10~11일 '비정규직, 정리해고,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꿈꾸는 노동자들이 박근혜-재벌 총수를 감옥으로 보내고 새로운 세상을 걷자는 '1박 2일 대행진'을 꾸린다. 이는 박근혜 정권과 재벌 천국하에서 신음하고 고통받던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대한민국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힘찬 발걸음이다. 새 세상을 열기 위해 내딛는 걸음에 많은 노동자 시민이 함께 했으면 한다.

대행진 포스터
 대행진 포스터
ⓒ 대행진 준비위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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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비정규직, #이재용,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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