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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보디절 유치원 어린이들이 각자 싸온 도시락을 먹고 있다
▲ 도시락 마하보디절 유치원 어린이들이 각자 싸온 도시락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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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드웰라 지역은 스리랑카 내전 때 북쪽 지역에서 피난 왔던 주민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해방촌쯤으로, 달동네 빈민가이지요. 생활도 열악할 뿐 아니라 교육의 기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어 제가 유치원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중고 물품들을 지원받아 아이들에게 나눠주어 그럭저럭 꾸려가고 있지만 아직 유치원 건물 공사도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와치싸라 스님은 지난 4일 스리랑카의 유치원을 찾은 기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와치싸라(Welanhinne Wachissara Nayaka Thero)스님이 건네준 명함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외국인 상담법사, 재한 스리랑카 국가지도법사, 조계사부설 이주민센터 마하보디사 주지라는 직함이 한글로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와치싸라 스님은 경기도 양주시에 스리랑카 이주민들을 위한 마하보디 절을 운영하면서 13년 전부터 이곳 스리랑카 빈민촌의 어린이들을 위한 유치원을 만들어 어린이 교육을 돕고 있다.

유치원이 있는 스드웰라 지역은 콜롬보에서 남쪽으로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스리랑카가 영국으로부터 1948년 독립된 이래 북부의 타밀족과의 30년 내전 때 북쪽에서 피난 온 주민들의 집단 거주지다.

스리랑카 쌀은 끈기가 없는 쌀로 이곳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는다
▲ 스리랑카밥 스리랑카 쌀은 끈기가 없는 쌀로 이곳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는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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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쓰던 물건들을 가져와 유치원 용품으로 쓰고 있다
▲ 유치원 물품 한국에서 쓰던 물건들을 가져와 유치원 용품으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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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행사때 입으라고 선물한 세벌의 드레스를 입어 보인 어린이들
▲ 드레스 유치원 행사때 입으라고 선물한 세벌의 드레스를 입어 보인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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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속히 건물 공사를 마무리하여 이곳에서 초등학교 과정의 어린이들 교육을 하고 싶습니다. 이곳 아이들은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기에 계속해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거든요."

와치싸라 스님은 "스리랑카에는 의무교육이 없습니까?" 라고 묻는 말에 그렇게 답했다. 스리랑카 정부의 재정이 열악하여 아직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무교육은 없다고 했다. 피난민들의 삶이 열악하다 보니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어 아이들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안 와치싸라 스님은 피난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2002년(2009년에 내전 종식)이후 마하(큰) 보디(깨달음) 절을 세우기로 결심하고 허름한 땅 1,500평을 마련하였다.

그리고는 간신히 비만 피할 정도의 허름한 법당을 마련하고 상좌 교육을 시키기 시작하였다. 유치원 건물을 지어 2012년부터 주변 지역의 어린이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저의 집은 13형제가 있는데 저는 그 가운데 12번째입니다. 아버지가 3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 손에 어렵게 자랐지요. 그래서 남달리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22년 전 인도네시아 앞바다의 거대한 지진해일(쓰나미)이 몰아닥쳤을 때 이곳 골(Dutch Fort at Galle)해변에서도 수천 명이 죽고 건물이 파괴되어 고아가 수백 명 생겼습니다. 그때 저는 대학원 공부를 위해 인도 유학 중이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달려와 고아 400여 명을 거두며 교육을 시킨 적이 있습니다."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두명의 유치원 선생과 와치싸라 스님(왼쪽)
▲ 와치싸라 스님 1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두명의 유치원 선생과 와치싸라 스님(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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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후원을 하고 있는 와치싸라 스님 뒤에는 한국의 하회탈이 걸려있다
▲ 하회탈 유치원 후원을 하고 있는 와치싸라 스님 뒤에는 한국의 하회탈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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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치싸라 스님이 유치원을 비롯한 어린이 교육에 신경을 쓰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한국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보살피면서 본국의 유치원을 운영하는 일이 힘들 것 같아 "어렵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스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짐승이라면 몰라도 인간이라면 헐벗고 가난한 이들을 보고 외면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혼자서 수행의 길을 걸으면 그뿐이겠지만 저는 제 주변의 어렵고 불쌍한 이웃들의 삶이 곧 나의 삶이라는 생각에서 힘들지만 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나간 과거도 다가올 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지금에 충실한 것이 가장 바른 삶이지요."

와치싸라 스님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4일 일요일 오전 8시, 마하보디절 작은 법당에는 흰옷으로 곱게 차려입은 어린이 20여 명이 모였다. 모처럼 고국을 찾은 와치싸라 스님의 일요법회에 참석하였다. 스님이 한국에 있을 때에는 상좌들이 법회를 연다고 했다. 스리랑카 말로 진행된 불경(佛經)과 법회는 약 30여 분 동안 이어졌다.

와치싸라 스님에게 "어린이들에게 하신 법회 내용"을 물었더니,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살고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공양 올리는 일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임을 잊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스리랑카는 현재 불교국가지만 이곳 빈민가에도 교회가 들어서는 등 점차 "불교의 위기"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일요일 아침 와치싸라 스님이 어린이 법회를 열고 있다
▲ 법회 일요일 아침 와치싸라 스님이 어린이 법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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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포르투칼, 영국의 식민지 500년과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인도 타밀족과의 내전 30년 등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굳건히 오늘의 스리랑카를 지켜온 힘은 "부처님의 가피"로 여기고 특히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을 끌어안고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와치싸라 스님의 "불교관"은 30여 분 동안 진행된 어린이 법회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했다.

한국에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4만 명 정도 있다고 했다. 이들을 위해서도 물심양면으로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와치싸라 스님은 몸은 하나지만 마음은 이미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같다.

한국과 스리랑카를 넘나들면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한 또 하나의 "부처" 같이 여겨졌다. 지난 1월 29일 기자 일행과 인천 공항에서 만난 스님의 짐 속에는 이곳 유치원의 어린이들에게 나눠줄 헌옷들로 가득했다. 법회를 마치고 난 뒤 비록 헌 옷이지만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것들은 와치싸라 스님의 "새로운 마음"임을 새삼 느꼈다.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보살피고 있는 마하보디절 유치원 마당에서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기자, 하나 건너 와치싸라 스님
▲ 와치싸라 3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보살피고 있는 마하보디절 유치원 마당에서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기자, 하나 건너 와치싸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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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 경기도 양주 마하보디사 : 양주시 광적면 화합로 81번길 81. 031-873-4116



태그:#와치싸라 , #스리랑카, #마하보디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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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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