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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가족 풍경. 강원도 강릉시 오죽헌의 향토민속관에서 찍은 사진.
 설날의 가족 풍경. 강원도 강릉시 오죽헌의 향토민속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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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음력 1월 1월 설날에 점을 치는 사람이 많았다. 설날 윷놀이 풍습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윷을 던져 1년 운세를 예측하던 풍속에서 이 놀이가 나왔다.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설날에 윷놀이를 하는 것은 풍흉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시대 사람들한테는 그런 모습이 미신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는 미래를 예측해주는 시스템이 많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가까운 미래의 정치·경제 상황을 예측해주는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들려준다. 신문 기사에서도 동일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개인별 운세를 알려주는 서비스도 많다. 이렇게 얻은 미래 정보들을 근거로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런 시스템이 없었던 옛날에는, 1월 1일 같은 특별한 기회를 이용해 미래를 예측할 수밖에 없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무당이나 승려들에게 후한 대가를 치르고 미래를 알아볼 수 있었지만, 일반 서민들은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지극히 저렴한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방법 중 하나가 청참이었다. 조선 후기에 홍석모가 쓴 풍속학 서적인 <동국세시기>에 나오는 점이다. 청참(聽讖)은 들을 聽과 조짐 讖으로 이뤄진 글자다. 소리를 듣고 치는 점이라는 의미다. <동국세시기>에서는 1월 1일에 다음과 같은 식으로 청참을 본다고 말했다.

"꼭두새벽에 거리로 나간 뒤, 방향과 관계없이 처음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근거로 1년의 길흉을 점친다. 이것을 청참이라고 한다."

이처럼 1월 1일 새벽에 길거리에서 처음 듣는 소리를 근거로 길흉을 예측하는 것이 청참이었다. <동국세시기>에서 청참의 방식을 세세히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당시 사람들은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청참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음력 12월 31일 청참을 하는 청나라

홍석모는 청참과 비슷한 문화가 청나라 수도 연경(베이징)에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청나라에서는 음력 1월 1일 새벽이 아닌 음력 12월 31일 밤중에 이런 청참을 했다고 한다. 조선보다 몇 시간 빨리 청참을 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연경 풍속 중에, 섣달그믐날 밤중에 부엌신에게 방향을 알려달라고 기도한 다음에, 거울을 가슴에 품고 문 밖으로 나간 뒤 길가에서 들려오는 말을 근거로 다음 해의 길흉을 점치는 것이 있다. 우리 동방의 풍속도 그런 류다."

이런 청참 외에도, 설날에 쳤던 점의 종류는 많다. 그중 하나가 앞에서 언급한 윷점이다. 청참을 치려면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이른 새벽에 길거리로 나가야 했을 뿐 아니라 새벽 추위도 견딜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청참은 부지런한 아침형 인간에게 적합한 것이었다. 청참이 힘든 사람은 윷점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집 밖으로 안 나가도 볼 수 있었고 거기다가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점이었다.

설날 윷놀이. 경기도 용인시의 한국민속촌에서 찍은 사진.
 설날 윷놀이. 경기도 용인시의 한국민속촌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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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점에 대해 자세하게 정리한 학자가 있다. <발해고>의 저자로도 유명한 유득공이다. 풍속학 서적인 <경도잡지>에서 그는 윷점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일반적인 윷놀이와 달리 윷점에서는 도·개·걸·모만 인정했다. 윷은 모로 간주됐다. 이런 상태에서 윷을 세 번 던졌다. 그렇게 해서 나오는 경우의 수를 64개로 분류했다. 그 64개 경우의 수에 따라 1년 운세가 결정된다고 본 것이다.

실학자 이익은 풍흉을 예측할 목적으로 윷점을 본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풍흉 예측이 윷점의 최대 목적이라는 뜻이지 윷점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농업 수확뿐 아니라 자식운·취업운 같은 다양한 운세를 볼 목적으로도 윷점을 쳤던 것이다. 그래서 경우의 수를 64개로 분류한 것이다.

그 64개 경우의 수 중에 도·개·개라는 점괘가 있다. 윷을 세 번 던져 도·개·개가 나오는 경우다. 이것은 '죄 지은 사람이 공을 세운다'는 점괘였다. 만약 임금과 연루된 부패 사건으로 수감된 피고인이나 피의자가 감옥 바닥에 윷을 세 번 던져 이 점괘를 얻었다면, 그는 감옥을 나갈 준비를 해도 됐을 것이다.

자기가 아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시원하게 자백해서 사헌부(검찰청) 수사나 의금부(왕명에 의한 특별 수사기관) 수사에 도움을 준다면 그렇게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죄인 신분이기는 하지만,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나라를 바로세우는 데 기여한다면, 자기가 지은 죄보다 훨씬 더 큰 공로를 세우게 되는 것이었다.  

고려 충혜왕이 얻었으면 기뻐했을 '도·모·모란 점괘'

도·모·모란 점괘도 있다. 정치적 권위를 상실해 직무 정지를 당한 임금이라면, 이런 점괘가 나오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이것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점괘다.

고려 충혜왕 같은 사람이 이 점괘를 얻었다면 특히 기뻐했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후궁들과 신하의 아내에 대해 성폭행을 일삼고 백성들의 재산을 함부로 침해했다. 거기다 매일 같이 유흥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가 고려 귀족들의 고발을 받은 몽골 정부가 사신단을 파견해 그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몽골 수도인 대도로 끌고 갔다. <고려사>에 따르면, 이 날은 음력으로 계미년 11월 22일, 양력으로 1343년 12월 9일이다. 이로부터 정확히 673년 뒤인 2016년 12월 9일,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의 직무도 정지된다.

<고려사>에 따르면, 1344년 설날에 충혜왕은 몽골 수도 대도에 있었다. 대도는 지금의 베이징에다가 약간 위쪽을 합한 지역이었다. 예측불허 상태에 놓인 충혜왕이 설날 새벽 베이징의 숙소에서 윷을 던져 첫 번째는 '도'가 나오고 두 번째는 '모'가 나왔다면, 그는 일순간 긴장했을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모'가 나오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도·모·모 점괘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윷을 던지기 직전, 그는 권한이 회복되고 개경으로 돌아가는 환상을 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감시하는 사람들이 이런 점괘가 나오도록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던진 세 번째 윷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감시자들이 윷을 얼른 집어 들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윷점에 실패했다면, 충혜왕은 감시자들의 눈을 피해 숙소 밖으로 나가 청참이라도 치고 싶었을 것이다. 대도 사람들은 12월 31일 밤중에 청참을 치기 때문에, 1월 1일 새벽의 대도에서 청참을 치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실제로 이런 점을 봤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봤다면 좋은 점괘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 안 있어 그는 몽골 정부로부터 귀양 판결을 받고 유배를 가다가 암살을 당하고 말았다.

윷점에서 나오는 경우의 수를 정리한 도표. 경기도 여주시의 명성황후 생가에서 찍은 사진.
 윷점에서 나오는 경우의 수를 정리한 도표. 경기도 여주시의 명성황후 생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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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점 점괘 중에서 걸·모·걸과 모·개·도 같은 것은 일반 백성들한테 희망이 될 만했다. 걸·모·걸은 행인이 길을 찾는 점괘다. 길을 잃고 무작정 걷던 행인이 올바른 길을 발견하게 되는 점괘다. 모·개·도는 어둠 속에서 불을 발견하는 점괘다.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인가의 조명을 발견했을 때의 환희를 느낄 수 있는 점괘다. 

걸·개·걸 같은 점괘는 시험을 준비하는 선비나 그 가족에게 희망이 될 만했다. 이것은 '가난한 선비가 녹을 받는다'는 점괘다. 안정된 직장을 바라는 사람들은 이런 점괘가 나오기를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라고 해서 윷점의 결과를 있는 그대로 믿었을 리는 없다. 우리 시대보다는 못했지만, 옛날 사람들도 그 시대 나름의 합리성을 추구했다. 고도의 철학체계를 갖춘 불교의 신봉자들도 그랬고, 현실주의 사회윤리를 추구하는 유교의 신봉자들도 그랬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옛날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점을 쳤다. 설날을 포함한 명절에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1년 운세를 점쳐본 것이다. 점의 결과를 100% 믿지는 않았지만, 그 외에는 미래를 예측할 만한 방법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우리 시대 사람들에 비해 점에 의존하는 정도가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태그:#설날, #윷점, #청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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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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