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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선비들은 대나무 돗자리에 목침을 베고 누워 죽부인을 안고, 부채(扇)를 부치면서 더위를 이겨냈다. 이처럼 다양한 여름 피서용품 중 때와 장소, 나이와 계층을 가리지 않고 사용된 게 부채였다. 자신이 선호하는 그림과 글귀를 써넣고 접었다 펼쳤다 하면서 멋과 풍류를 즐겼던 부채는 권위를 상징하기도 하였다. 의식용으로도 쓰였으며 모양과 장식 등 종류도 다양했다. 

부채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한다. 후백제 견훤이 고려왕으로 등극한 왕건에게 선물로 공작 깃털로 만든 공작선을 보냈던 것. 이는 견훤이 왕건의 통치권을 인정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오월 단오에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으며, 민요에도 '가을에 곡식 팔아 첩을 사고 오뉴월 되니 첩 팔아 부채 산다'는 대목이 나온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 여름에 최고 필수품이 부채인 것을 풍자한 것이다.

'부치는 채'라는 말이 줄어 이름을 얻었다는 '부채'. 특히 부채와 소리꾼은 실과 바늘 사이로 알려진다. 소리꾼의 발림(너름새) 동작에 필요한 부채는 시각적인 효과를 더하면서 이면에 따라 달라진다. <춘향가>에서는 암행어사 이몽룡의 얼굴 가리개가 되고, <심청가>에서 심 봉사가 걷는 모습을 노래할 때는 지팡이가 된다. <흥부가>에서 흥부가 박 타는 모습에서는 톱이 되고, <적벽가>에서 조조가 활시위를 당기는 대목에서는 화살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다섯 가지 부채춤 한자리에 모이다

신명숙, 박은미, 전민지 등이 재연한 권번 부채춤
 신명숙, 박은미, 전민지 등이 재연한 권번 부채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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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는 무용에서도 주요 부분을 차지한다. 화사한 의상과 경쾌한 민속악 반주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부채춤이 그것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 및 국빈 환영행사를 비롯해 올림픽, 월드컵대회 등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장에서 극찬받았던 부채춤 공연에서 잘 나타난다. 대부분 전문가는 부채를 접고 펼 때 마찰음, 부채의 포물선, 한복의 아름다운 곡선과 무용수들의 생동감 넘치는 기동인(起動因) 등을 부채춤의 진수로 꼽는다.

'국악의 꽃'이란 이름을 얻으면서 한국을 상징하는 춤으로 자리매김한 부채춤. 이 춤사위는 1954년 한국무용의 대가 김백봉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무속에서 무녀들이 추는 고운 춤동작과 굿의 신명을 궁중무용 춤사위에 결합하여 생동감 넘치는 작품으로 탄생시킨 게 오늘날 통용되는 부채춤이다. 한동안 독무 형태로 무대에 오르다가 1968년 멕시코 세계민속예술제전에서 군무(群舞) 형식으로 재구성됐다 한다.

기자는 권번 부채춤(신명숙), 북한 부채춤(최신아), 신 부채춤(홍은주), 김백봉류 부채춤(장인숙), 오방 부채춤(홍경희) 등 다섯 가지 부채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15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안국빌딩 4층(W스테이지 안국)에서 열린 제15회 교수작품발표회(주최: 대진대학교 무용학부/주제: <춤, 부채로 말하다>)에 다녀온 것.

이날 발표회는 그동안 막연히 알고 있던 부채춤뿐만 아니라 의외로 다양한 형태의 부채춤이 전승되고 있음을 무용가들의 춤사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 북한 부채춤은 이날의 백미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군산 소화권번에서 동기(童妓)들에게 가르쳤던 '권번 부채춤'이 지금까지 알려진 부채춤 중 가장 오래됐다는 것도 확인했다.

아래는 발표회가 끝나고 있었던 관객들과의 대화에서 출연자들 설명, 행사 팸플릿, 그리고 공연을 관람하고 느낀 기자의 생각 등을 공연 순으로 정리하였다.

신명숙 교수의 권번 부채춤
 신명숙 교수의 권번 부채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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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번 부채춤: 국내 유일의 민살풀이(수건 없이 추는 살풀이춤) 전수자 장금도(1928~) 명인이 열서너 살 때 군산 소화권번에서 익힌 춤이다. 이날은 신명숙 교수와 그의 제자 박은미 전민지 등 세 사람이 출연했다. 장 명인은 이 시대 마지막 예기(藝妓)로 그가 처음 배울 때는 부채에 국화, 매화, 산수화 등이 그려져 있었고, 춤은 두 사람 이상이 앉아서 시작했다.

안정감과 부드러움 그리고 담백하면서 예술적인 면이 돋보이는 게 권번 부채춤의 특징이다. 본래 장단은 자진모리였으나 타령장단에 맞춰 추기도 한다. 장 명인은 소화권번에서 스승의 춤을 엿보다가 들킨 것이 계기가 되어 배우게 됐다고 회고한다. 일제강점기 소화권번은 부채춤을 배우고자 희망하는 동기에게만 가르쳤다 한다. 소화권번에서 춤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 과목이었던 것.

군산소화권번 단체사진(동기들의 귀여운 모습이 눈길을 끈다)
 군산소화권번 단체사진(동기들의 귀여운 모습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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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소화권번 주식회사 창립 5주년 기념 단체사진(1939년 촬영)을 보면 각종 예복 차림에 화관, 패랭이, 흰 고깔 등을 머리에 쓴 귀여운 동기 열한 명 모습도 보인다. 이는 일제강점기 소화권번에서 화관무, 승무, 검무, 포구락, 부채춤 등 다양한 전통 무용을 가르쳤음을 시사한다. 

권번 부채춤은 장 명인이 유일한 전수자가 된 이후 함께 연행(演行)할 상대가 없어 기나긴 세월을 묻혀 있었다. 그러다가 1999년 신명숙 교수가 장금도 명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춤을 사사하던 중 춤사위를 발견하고 연구 끝에 재연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부채춤으로 조선 시대 교방춤(교방무)과 가장 근접한 춤사위로 평가받는다.

최신아 감독의 북한 부채춤
 최신아 감독의 북한 부채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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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부채춤: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한 최신아 감독에 의해 소개됐다. 최 감독은 신명나는 춤사위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머리에 패랭이를 쓰고 한 손에만 부채를 쥔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몸짓 하나하나가 무척 천진스럽고 아기자기하게 다가왔다. 표정과 몸짓에서 장난기도 엿보였다. 그럼에도 춤사위는 무대가 좁게 느껴질 정도로 역동적이고 다이내믹했다. 

최 감독은 함경북도 예술단 무용 감독으로 활동하다가 2012년 입국했다. 지금은 라온 최신아예술단 무용 감독을 맡고 있으며 KBS 국악한마당, 국악방송, 기관과 기초단체 행사 등 다양한 국악프로그램에서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최 감독은 "북한 부채춤은 최승희 선생 작품으로 혁명성과 대중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시 한다"고 부연했다.

한수경 무용가의 신 부채춤
 한수경 무용가의 신 부채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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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부채춤: 한수경 무용가가 출연한 이 작품은 화려하면서도 단정하게 느껴졌다. 특히 전통적인 긴 호흡과 동시대적인 맥박, 그리고 한복에서 느껴지는 우아한 선의 아름다움과 모던한 자연미가 돋보였다. 안무를 맡은 홍은주(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리을무용단 단장은 "기존 부채춤과 차별화하여 꽃잎의 화려함을 다양한 음색으로 승화해 냈다"고 소개했다.

'워커힐예술단' 무용 감독을 역임했던 홍 감독은 "신 부채춤은 2008년 SK 워커힐 예술단 상설공연 <동방의 빛> 중에서 초연됐던 춤"이라며 "따사한 봄날 뭍에서 노니는 꽃잎의 여정을 부채의 다양한 언어로 풀어낸 작품으로, 외국 공연에서도 찬사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장인숙 교수의 김백봉류 부채춤
 장인숙 교수의 김백봉류 부채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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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봉류 부채춤: 장인숙 전 전북대학교 무용학부 교수가 출연한 이 작품은 가장 널리 알려진 신무용으로 선율과 춤동작이 어디선가 많이 듣고 본 듯한, 그래서 가장 친근하고 익숙하게 느껴졌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60~70년대 시골학교 운동장에 설치한 야외무대와 극장에서 상영했던 대한뉴스, TV 국악프로그램 등에서 신명나게 봤던 그 춤이었다.

양손에 쥔 커다란 부채를 펼치고 접을 때 파생하는 경쾌한 마찰음과 단아하고 우아한 절제미, 화려한 의상 등이 어우러지면서 고전적인 중후함, 유연함 등이 함께 느껴졌다. 화사한 꽃 그림이 들어간 부채가 춤사위의 소도구나 보여주기 위한 장신구가 아니라 주제임을 강조하는 작품이었다.  

부채춤은 우리나라 무용 예술이 서양식 무대로 옮겨지면서 발생하는 시대적 사상과 형식의 변모 과정을 거쳐 1954년 김백봉에 의해 예술적으로 새롭게 창출된 작품이다. 한국의 부채가 갖는 멋과 아름다움을 마음껏 살려낸 부채춤은 창작자인 김백봉의 예술관과 우주관이 가장 집약된 작품으로 2014년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됐다.

홍경희 감독의 오방 부채춤
 홍경희 감독의 오방 부채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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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 부채춤(벽사진경의 부채춤): 머리에 건을 쓴 옷차림에서 느껴지듯 일반 백성과 가장 가까이서 행해지던 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경희 한국춤문화포럼 대표겸 예술감독이 재연한 이 작품은 생동감 넘치는 춤사위와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파란색(동쪽), 흰색(서쪽), 붉은색(남쪽), 검은색(북쪽), 노란색(중앙) 등의 화려한 의상이 시선을 끌었다.

이 춤은 요사스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이한다는 뜻이 담겨있어 '벽사진경(辟邪進慶)의 부채춤'으로도 표현된다. 무녀가 부채를 손에 쥐고 가무하는 모습은 신윤복의 무녀도(巫女圖)에서도 볼 수 있다. 무녀들이 언제부터 무채를 손에 쥐고 춤을 췄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꼭 필요한 소지품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화(붉은색), 수(검은색), 목(파란색), 금(흰색), 토(노란색)와도 관계있는 오방색은 단맛(토), 신맛(목), 쓴맛(화), 매운맛(금), 짠맛(수)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의 소리(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와 곡식(쌀, 보리, 콩, 조, 기장)과도 관련이 있어 음양오행 문화의 뿌리와 조상들의 사상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신명숙 교수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부채춤 전수자 및 이수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며 "한국의 부채춤 역사를 조금이라도 더 알아보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오늘 행사를 준비했다"고 작품발표회 의의를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와 매거진군산 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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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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