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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런던 시내 노숙인 13명에게 3천파운드(약 450만원)를 줬을 때 9명이 지붕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었고, 2008~2009년 나미비아의 한 마을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최저임금 1만 원' 만큼이나 '기본소득'이 대세다. 기본소득을 두고 터무니 없던 이야기라고 하던 때가 불과 10년도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난해 6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원장이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기본소득을 이야기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기본소득의 일종인 청년배당제도를 시행한 지 1년만인 지난 10일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0~29세 유소청소년과 장애인, 65세 이상 노인, 30~65세 농어민에게는 1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주겠다고 밝혔다.

빈곤을 극복할 대안, 기본소득과의 만남

10년 전, 한 인터넷신문사에서 기자생활을 하면서 매년 기초생활수급자 기준을 정하는 시기가 될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소득이 발생하면 수급비용보다 더 적은 비용을 벌더라도 수급권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가난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라고 만든 것인데, 노동을 하는 순간 더 가난에 놓이게 된다. 결국 이 제도는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하는 제도가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던 때, '기본소득'을 알게 되었다. 무릎을 치며 "바로 이거구나"라고 외쳤더랬다.

기본소득이 우리나라 빈곤의 문제점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설명하기란 너무 어려웠다.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로서의 기본소득을 말하기에는 한국사회는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았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이 도입되는 것이 국가가 재정을 흔드는 일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기본소득은 납득불가 이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오준호 지음/개마고원)이 반가웠다. 기본소득을 연구하는 학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기본소득 개념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오준호 작가가 역사, 소설, 영화, 심지어 예능프로그램을 소재로 가져와 기본소득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미래를 바꿀 키워드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 지은이 오준호 / 펴낸곳 개마고원 / 2017년 1월 2일 / 값 14,000원
▲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 지은이 오준호 / 펴낸곳 개마고원 / 2017년 1월 2일 / 값 14,000원
ⓒ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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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에 대한 정의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은 '국가나 정치공동체가 그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일정한 생활비'를 말한다. 가구단위가 아닌 개인에게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미성년자도 지급을 받게 된다.

소득이 있는지, 집이나 차를 가지고 있는지, 빈자인지 부자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즉 자격심사 없이 받을 수 있다. 구직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등의 조건이나 의무를 요구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정기적으로, 현금 형태로 지급되어야 한다.(22~23쪽)

그래서 성남시의 청년배당,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기본소득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이라고 하지만 기본소득이라 말할 수 없다.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기본소득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 <문화적 충동>에는 이 같은 논리가 '심리적 거부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독일인에게 "기본소득이 생기면 하던 일을 그만둘 것인가"라고 설문조사를 해보니 응답자의 60%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30%는 일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다른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답했다. 10%는 우선은 돈을 벌고 나중에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응답자들에게 "기본소득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은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보는가"라고 묻자 80%가 "그렇다"고 답했다. (74쪽)

다른 사례들도 있다. 2009년 런던 시내 노숙인 13명에게 3천파운드(약 450만 원)를 줬을 때 9명이 지붕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었고, 2008~2009년 나미비아의 한 마을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니 빈곤률이 줄고 소득이 늘었으며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2011~2013년 인도의 빈민층에게도 이와 같은 실험을 하니, 빚의 악순환에서 벗어났으며, 2014년 독일에서 무작위로 추첨된 1명이 1년간 기본소득을 받는 '마인 그룬트아임콤멘(나의 기본소득)' 프로젝트가 시작한 이래 50여명 중 단 한명도 베짱이가 되지 않았다.

이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는, 그들이 게으르고 절제력이 없어서 가난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96쪽)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면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선입견과 '노동없이 돈을 주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지배계급의 노동윤리를 벗어나야만 기본소득은 온전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저임금, 장시간노동에 빠져 있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과 청년 노동자들에게 기본소득은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서울시 청년 아르바이트 생태계 조사' 연구 결과를 진행했다.

서울지역 아르바이트 노동자 1016명을 대상으로 1년 후 인생계획을 물어보니 학업진행(30%), 아르바이트 지속(35.8%), 정규직 준비(18.6%), 창업 및 동업(6.7%) 순으로 나타났다. 학업을 유지하기 위해(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알바를 하고, 취업을 하지 못해 알바를 하고, 알바를 하다보니 알바가 계속되는 삶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한겨레 21>이 지난해 9월부터 '기본소득 135만원 받으실래요?'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최초의 프로젝트다. 첫 번째 수혜자는 11월 말 추첨으로 선정되었다.

첫 번째 수혜자는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12시간을 학교 실험실에서 근무하는 대학원생으로 "학생이라기엔 늦은 나이라 부모님께 용돈 받기도 죄송하고 알바를 하고는 있지만 너무 빠듯한 상황이다. 이제는 취업 준비도 해야 하는 데 기본소득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지원했다.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미래를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청년들의 가치있는 삶을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 책에서 기본소득을 '무너져가는 사회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한다. 오준호 작가도 이 책을 쓰며 "기본소득이 미래를 바꿀 열쇠라고 생각하며, 이 생각을 널리 공유하는 게 기본소득 제도화를 앞당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제 기본소득이라는 마지막 희망을 펼쳐볼 때이다.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 기본이 안 된 사회에 기본을 만드는 소득

오준호 지음, 개마고원(2017)


태그:#기본소득, #청년, #아르바이트, #청년수당, #청년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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