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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히 보면 닭과 고양이가 보인다
 자세히 보면 닭과 고양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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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 고양이가 해변을 걸어 다닌다. 닭과 병아리들은 서쪽으로, 고양이들은 동쪽으로 유유히 각자의 길을 가는 이곳, 루아오르 마을(Luaor). 술라웨시 섬 남부지역의 큰 도시 마카사르에서 위쪽으로 6시간을 넘게 달리면 도착하는 해안가 동네이다.

국제구호단체인 '개척자들'은 바다에서 하는 평화활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활동가의 훈련을 위해 매년 인도네시아에서 항해 훈련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한국에서 4명, 현지인 2명이 마을에 왔다. 루아오르 마을에는 훈련을 위한 전통 요트 '산덱'이 보관돼 있는데 3일 정도 머무르면서 점검 및 수리 그리고 1년간 묵은 때를 벗겨야 한다.

미(라면)를 사러 도로에 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본다. 나도 그들이 신기한 것처럼 이들도 내가 신기한가보다. 눈을 마주치고 "할로"하고 인사를 하면 까르르 웃으며 환한 미소로 응답해준다. 같이 사진을 찍자는 소녀들도 있다. 이런 관심이 불편하다는 팀원도 있지만 나는 기분 좋은 관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길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 마을에서 아주 중요한 장소인 수무르(우물)
▲ 길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 마을에서 아주 중요한 장소인 수무르(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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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망고나무를 쉽게 볼 수 있는데 한 집 건너 한 그루를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아이가 초록색 망고를 따고 있다. 덜 익은 망고로 뭘 할지 궁금해서 물었는데 옆에 있던 아줌마가 6개나 따서 그냥 주셨다. 이러려고 물어본 게 아닌데…. "뜨리 마카시(고맙습니다)"를 연거푸 말하고는 돌아왔다.

1년간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에서 지냈던 한국인 언니, 다코타가 알려주기를 익지 않은 망고도 썰어서 소금에 찍어 간식으로 먹는다고. 실제로 그렇게 먹어보니 신맛이 강하지만 소금의 짭짤함과 어울려서 먹기 좋았다. 그러다가 조금 챙겨온 고춧가루를 뿌려서 먹자 딱 잘 익은 깍두기 김치 맛이 났다. 미(라면)와 함께 먹으면 그만인 나의 짝퉁 깍두기. 이후로도 자주 만들어 먹었는데 배 위에서는 소금도 필요치 않다.

 간단한 장비를 가지고 정교한 수리를 뚝딱 해내는 마을 사람들
 간단한 장비를 가지고 정교한 수리를 뚝딱 해내는 마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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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아이들이 작은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놀아도 누구하나 걱정하거나 못하게 하는 사람이 없다. 배 수리를 할 때 꼬마아이가 배 위에서 얼쩡거려도 가만히 두고는 바로 옆에서 무심히 망치질하는 어른들. 혹시 아이가 못질 할 곳에서 놀고 있다고 해도 안아서 다른 곳으로 옮길 뿐이다.

마카사르 산덱 레이스 경로 한반도 크기 정도인 술라웨시 섬. 매년 마무주(Mamuju)에서 마카사르까지 산덱 레이스 경기를 한다. 보통 이 경로 안에 들어가는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배를 만들어 마을 단위로 출전한다. 마무주와 마제네 사이에 있는 루아오르 마을에서는 아직 출전한 적이 없다
▲ 마카사르 산덱 레이스 경로 한반도 크기 정도인 술라웨시 섬. 매년 마무주(Mamuju)에서 마카사르까지 산덱 레이스 경기를 한다. 보통 이 경로 안에 들어가는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배를 만들어 마을 단위로 출전한다. 마무주와 마제네 사이에 있는 루아오르 마을에서는 아직 출전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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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덱 레이스(Sandeck Race) 약 50팀이 참가하는 인도네시아 전통 요트 경주
▲ 산덱 레이스(Sandeck Race) 약 50팀이 참가하는 인도네시아 전통 요트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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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박사는 1999년 동티모르(현재는 독립국)를 시작으로 쓰나미 피해지역 반다아체에는 2005년, 루아오르 마을에는 2007년에 왔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카사르에서 개최하는 산덱 레이싱 경기에 대해 신문에서 보고, 이곳에서 항해 훈련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이 마을보다 조금 큰 마제네 같은 도시보금자리 할 장소를 찾았지만 상업화 되어서 조용한곳 찾다보니 이 마을까지 오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쏭"이라고 부른다.

자기 일처럼 집 짓는 걸 도와주고 우리가 항해할 배 수리도 도와주고 바나나도 그냥주고, 생선도 구워주는 사람들. 라면 1개에 2500루피(한화 약 250원), 오렌지 1개에 100원…. 낮은 물가에서 생활이 가능해서일까 참 넉넉하다. 처음에는 한국 물가대비해서 생활비가 싸다고 생각했지만 이곳 사람들이 받는 월급이 20~30만 원 정도라고 하니 물가도 그에 비례해서 생각하면 그리 넉넉한 삶도 아닐 텐데…마음이 더 여유로워서일까 나는 하루 종일 "뜨리 마카시"를 입에 달고산다.

불 피워서 생선 굽는 로미 우리와 같이 배를 탈 현지인 익산(사진가)과 로미(활동가). 우리 곁에는 항상 아이들이 있다
▲ 불 피워서 생선 굽는 로미 우리와 같이 배를 탈 현지인 익산(사진가)과 로미(활동가). 우리 곁에는 항상 아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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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보금자리 아래에서는 생선을 굽고 있다. 바나나 잎을 깔고 팜유(Paml Oil)를 부은 다음 생선을 넣는다. 이 때 기름의 양은 튀긴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꽤 많이 쓴다. 이렇게 기름을 많이 쓴 음식을 자주 먹어도 되는 걸까. 그러나 그것보다 나중에 쏭에게 들은 얘기에 마음이 불편했다.

팜유는 음식을 만들 때 쓸 뿐만 아니라 립스틱부터 치약, 도넛, 초콜릿 바, 콜라, 샴푸, 세제, 바이오 디젤 등 우리가 쓰는 제품의 약 50%에 쓰인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전세계의 팜유 중 85% 이상을 생산하는데 팜유 나무를 심기 위해서 숲에 사는 동물들의 생명까지 위협한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음식에 팜유를 많이 쓰지만 정작 소비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미국과 유럽이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마을. 실제로 쏭은 10년 동안 이곳에 왔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게 없다고 한다. 시간이 빨리 가는 것 만큼 모습도 빨리 변하는 한국. 가끔씩 들러도 많이 바뀌지 않는 고향을 원하는 건 욕심일까. 이렇게 멀리 떨어져있는 인도네시아에 와서 들판 대신 아파트로 가득 차 버린 내 고향 양산을 떠올린다.

일찍 잠자리에 든 탓일까 잠자리가 바뀌어서인가, 눈을 뜬 시각은 새벽 5시 반, 아직 해가 밝기 전이다. 자연 화장실인 해변으로 나가려니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들 3명이 나란히 바닷가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엽고 정겨워 엄마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다가 신호가 점점 급하게 오는지라 아이들 없는 장소를 모색하며 이리저리 배회를 하다 결국 다시 그곳에 갔다. 인기척을 들었는지 아이들은 동시에 날 뒤돌아보고는 후다닥 뛰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남자아이 2명과 여자아이 1명. 아랫도리를 챙겨 입을 새도 없이 달려 나왔다.

이 꼬마들은 꼭두새벽부터 놀고 있던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전날의 묵은 과거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것도 친구인지 형제인지 모를 동지들과 깔깔 웃으며, 얘기를 나누며. 나는 해변에서만 해결하는 줄 알았지 바다 속에서 대소사가 이뤄지는 것은 처음 목격하였다. 미리 알았다면 그들의 신성한 의식(?)을 방해하지 않았을 텐데….

개척자 멤버로 활동한지 1년이 된 20대 청년 바람말. 그가 재밌는 질문을 하였다. 항상 함께 지내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보며 이들도 혼자만의 시간이란 것을 가지기는 하는지, 그 의미를 알긴 하는지.

 수영하다가 사진기를 들자 가까이 와서 손을 번쩍 들어준다
 수영하다가 사진기를 들자 가까이 와서 손을 번쩍 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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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나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본 아이들은 항상 삼사오오 모여서 바다에서 수영하고, 아버지가 만들어준 작은 배를 타고, 해변에서 공차기와 고무줄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즉 노는 시간이 많다. 마을 어른들은 내 자식, 너의 자식 구분 없이 아이들을 챙겨준다. 이곳에도 왕따라는 개념이 있는지 궁금했다. 혹시나 하고 물었는데 쏭이 아는 한 루아오르 마을에 왕따는 없다고 하니 내심 다행이다.

처음에는 자주 웃어주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보며 '뭐지? 왜 이리 자주 웃어주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정말 따듯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낯설어하는 이방인에 대한 배려, 미소를 지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왠지 앞으로 웃을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시간은 곧 돈이라는 논리에 사로잡혀 사람을 만나는 것도,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것도 마음보다는 머리를 먼저 굴리게 되었는지. 그래서 자신의 일을 남겨두고 남의 배를 성심껏 수리하고 청소해주는 이 사람들이 아직은 100% 이해되지는 않는다.

2016 제주평화항해 3박 4일에 걸쳐 강정포구에서 광치기 해변까지 카약을 탔다. 개척자에서는 매주 수(水)요일에는 강정포구에서 해군기지 앞까지 카약을 타고 오는 시위를 하는데 일반인도 참가 할 수 있다
▲ 2016 제주평화항해 3박 4일에 걸쳐 강정포구에서 광치기 해변까지 카약을 탔다. 개척자에서는 매주 수(水)요일에는 강정포구에서 해군기지 앞까지 카약을 타고 오는 시위를 하는데 일반인도 참가 할 수 있다
ⓒ 박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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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사건과 관련하여 취재를 다니다가 우연히 들렀던 제주 강정마을. 1947년부터 7년간 양민을 학살했던 사건과 현재 제주 강정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은 공통점이 많았다. 그곳에서 만난 개척자 사람들. 단순한 레저 스포츠가 아닌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서 참가하는 카약이나 요트 시위가 좋고, 그들에게 배울 점이 많아 행동을 따라 가다보니 인도네시아 전통 배까지 타러 왔다. 교회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세계의 재난 현장에 공감하며 연대를 시작한 개척자. 기독교인도 아닌 나를 동행할 수 있도록 해줘서 감사하다. 매일 기록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최대한 남겨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여정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며칠 사이에 내 보금자리가 되어버린 대나무집에 좀 더 머무르고 싶다. 반면에 푸른 바다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항해하며 만날 섬 사람들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마음이 수시로 변한다. 하지만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은 이틀 밤만 더 자면 배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약 350km(바람에 따라 지그재그로 갈 때도 있기에 실제는 더 멀다) 거리의 랑카이 섬까지 가야한다. 그리고 나서 우린 다시 이 마을로 이 배를 그대로 타고 돌아올 것이다. 돌아올 곳이 있고, 이 마을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뒤숭숭한 이 밤을 위로해준다.

*송강호 :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실천신학으로 박사 학위(Th.D)를 받았다. 사단법인 개척자들의 대표, 분쟁지역 파견 선교사 담당 간사 등으로 섬겼으며, 2011년부터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하였다. 참고자료 송강호 저서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덧붙이는 글 | 평화 항해를 위한 배를 구합니다 dlgidfla2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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