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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달 급여와 퇴직금 문제로 상담 중인 하림
▲ 임금체불 상담 중인 하림 마지막 달 급여와 퇴직금 문제로 상담 중인 하림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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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림은 귀국을 앞두고 마음이 뒤숭숭하다. 마지막 달 월급과 퇴직금은 인도네시아에 가서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사장의 말 때문이다. 그동안 귀국한 선배들에 의하면 마지막 달 월급이나 퇴직금 중에서 얼마는 떼먹힐 생각하는 게 속편하다고 했다. 그 중에는 아예 못 받은 경우도 있다고 들었던 하림은 고용노동부에 출국확인신고를 하면서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하림은 월급일자가 10일이고, 출국일이 15일이라 며칠 일한 것 정도는 인심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 며칠 귀국하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사장의 태도가 이상했다. '사람이 한 순간에 변하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장은 "마지막 달 월급은 인도네시아 가면 보내줄게" 하면서 월급날이 지났는데도 월급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월급일이 지났는데, 왜 지급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사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답했다.

"우리 회사 월급날은 10일부터 20일까지야."
"월급날이 10일이잖아요."
"그건 너희들 편리 봐 줘서 그런 거고. 20일까지만 주면 되는 거야. XX야."
"그래도 저는 15일에 인도네시아 가야잖아요."
"그럼 인도네시아로 보내 줄게. 옛날에도 다 그렇게 했어."
"아구스는 못 받았다고…."
"씨X. 개XX들. 잘해 준 건 X도 기억 못해요. 안 준 거 없어. 임마!"

출국한 선배들은 못 받은 월급과 퇴직금 때문에 사장에게 전화하면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받은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에서 전화하면 "나 사장 아니오"라는 말로 끊어 버린다는 걸 하림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귀국하기 전에 받을 건 받고 갈 생각으로 다시 물었다.

"지금 마지막 월급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은 받았어요. 13일까지 일해요. 월급 주세요."
"아, 이 XX가. 너 당장 나가."

하림은 한국에서 4년을 넘게 있었다. 그 동안 세 번 회사를 옮겼다. 충청남도에 있던 첫 번째 회사는 부도 때문에 옮겼다. 그 다음 이천에 있던 회사는 월급을 제때 주지 않았다. 마지막 회사는 출국일자가 잡히기 전까지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가끔씩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월급 떼어먹고, 출국한 선배들이 얼마를 못 받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들은 다시 한국에 오길 원했다. 하지만 사장은 그들을 다시 불러 주지 않았다. 하림은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결국 하림은 출국 사흘을 앞두고 상담을 위해 이주노동자쉼터를 찾았다. 같이 일하던 동료 한 명이 따라 나섰다. 그는 출국일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며 따라 나섰다.

쉼터에서는 "월급 날짜를 10일부터 20일까지 라고 정하는 경우는 없다. 월급은 매월 1회 이상 일정한 날짜를 정해서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다"라고 분명히 알려주었다. 자신감이 생긴 하림이 사장에게 전화로 월급 지급을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전화를 받은 사장은 왜 전화했는지를 꼬치꼬치 묻고는 "나 사장 아니오"라며 끊었다.

하림은 출국한 선배들로부터 사장이 그런 식으로 월급을 떼먹었다는 사실을 전달하며 고용노동부에 진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사장은 외부에서 전화가 왔다는 핑계로 퇴직금도 의무적으로 적립해 둔 금액 말고는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쯤은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하림의 뜻대로 고용노동부 진정을 하려고 해도 문제는 출국일이다. 임금 관련 진정은 퇴사 후 14일이 지나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임금 문제를 해결하려면 체류 허가 기간을 넘겨야 하고, 예약해 놓은 항공권도 변경해야 한다. 체류 기한을 넘기면 어쩌면 한국에 다시 들어올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없을지 모른다. 게다가 의무 조항으로 납입했던 퇴직금 성격의 출국만기보험도 회사에서 신청해 주지 않으면 그나마 받을 수 없다.

임금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그 밖에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을 말한다. 사용자가 노동의 대가로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은 노동자 및 그 가족의 생계수단이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은 ▶통화 지급 ▶직접 지급 ▶전액 지급 ▶정기 지급이라는 지급 원칙을 두고 있다. 확실하게, 신속하게,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근로기준법의 원칙인 셈이다.

하림은 쉼터에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임금지급원칙에 대해 분명하게 배웠다. 하지만 그 원칙은 이주노동자에겐 꿈만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것 또한 깨닫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손해 볼 걸 뻔히 알면서 귀국할지, 재입국할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포기할지….



태그:#이주노동자, #인도네시아, #임금체불, #퇴직금, #출국만기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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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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