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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의약품 반입 자료를 분석한 뒤 충격을 받았다"
 ""청와대 의약품 반입 자료를 분석한 뒤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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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남성 대통령들이 어떤 실정을 해도 이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광주시민을 학살한 남성 대통령도 "남자는 너무 폭력적이어서 대통령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은 듣지 않았다. 멀쩡한 4대강을 망가뜨린 남성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대통령 됐다고 세상이 달라진 건 아니다. 여성이 일상에서 마주해야 하는 장벽은 남성의 그것에 비해 여전히 높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느덧' 3선 중진 의원이다. "여성은 집에서 애나 봐야지"라는 말이 거리낌 없이 나오던 시절에 여성운동을 했다. 오랜 시간 시민사회 진영에서 활동하다 2008년 즈음에 제도 정치권으로 들어갔다.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생활을 했다. 2012년 총선 때는 일명 '김문수 텃밭'으로 통하는 부천 소사 지역구에서 승리했다. 상대는 김문수가 아니었지만, 승리하려면 '김문수 신화'보다 더 독한 신화를 써야만 했다. 그렇게 지역구에서 재선 의원이 됐다.

민주화운동, 여성운동, 지역구 정치에서 '김문수 아우라 깨트리기'까지. 돌아보니 험한 길만 걸어왔다. 어디에나 한 일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있다. 김상희 의원이 그렇다. 그런 김 의원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큰 역할을 했다. 수상한 의약품이 청와대로 들어간 정황과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밝힐 작은 퍼즐을 찾아낸 것이다.

지난 12월 15일 김상희 의원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여성정치, 촛불민심, 정권교체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여성 폄하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의 정치 참여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시작했는데, 최근 상황은 무척 안타깝다. 박근혜-최순실 사태는 대한민국만 말아먹은 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여성 리더십의 상징, 성공한 여성정치의 표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 상황을) 잘 분석해서, 국민이 여성 정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 벌써 3선 중진 의원이 됐다.
"3선이면 중진이라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 (웃음) 사실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서 부천 소사 지역구로 갔다. 김문수 전 의원이 네 번, 차명진 전 의원이 두 번 국회의원을 한 지역 아닌가. 우리 당에겐 불모지였다.

오랫동안 시민단체 활동을 했고, 거기서 배운 가치를 제도권 정치에서 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처음엔 비례로 국회의원(2008년 18대)이 돼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다. 4대강 사업을 막고,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때 여당 간사가 차명진 의원이었다.

1997년 노동법 날치기 때는 김문수 의원이 큰 역할을 했는데, 2009년 노동법 개악 때는 (김문수 의원 밑에서 일했던) 차명진 의원이 주역이었다. 나는 부천 소사에 아무런 연고가 없었으나 차 의원을 잡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다들 이길 가능성이 적다고 했지만 '김문수-차명진을 심판해야 한다'면서 죽으라고 뛰었다."

- '열심히 해서 이겼다'라고 쉽게 정리하기 어려울 것 같다.
"처음엔 가는 곳마다 유권자들이 김문수 이야기만 했다. 김문수가 무명인으로 소사에서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이긴 뒤에도 지역을 수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 김문수는 바닥 민심을 열심히 듣고 훑는 방식의 활동으로 우리 정치 문화를 많이 바꾼 사람이다. '김문수 신화'가 뿌리 깊은 곳이어서 김문수 이상으로 뛰어야만 했다. 부천 소사는 경기도 뉴타운 1호 지역이었다. 그 때문에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그걸 해결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물론 2012년 총선은 이명박 정권 말기 때 치러졌기에 (야당에게) 우호적인 분위기도 있었다."

청와대 의약품 목록은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작은 퍼즐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피켓시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피켓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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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서 소사지역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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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국회의원으로서 이룬 성취에 비해 많이 부각되지는 않았다.
초기엔 당직을 맡았지만, 2010년부터는 지역구 일에 집중했다. 시민운동가 출신 국회의원들은 대개 신중한 편이다. 돌출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조직적으로 일을 한다. 독자적으로 튀는 행동을 잘 안 한다. 정책 중심으로 일한다. 좀 '튀려면' 돌출 발언도 해야 하는데,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 아쉬움은 별로 없나.
"최근 여기저기서 (활동에 비해 별로 안 떴다는) 이야기를 조금 들었다. 청와대 반입 의약품을 공개한 뒤 '모르는 의원이다'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웃음) 국회의원 300명인데, 스타성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정치인은 튀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쪽으로 욕심을 내지 않았다."

- 청와대 의약품 문제는 언론계 용어로 따지면 일종의 '특종'이다.
"처음 자료를 분석한 뒤 충격을 받았다. 머리가 띵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4월 16일에 7시간 동안 뭘 했느냐는 모두의 의문이었다. 피부과 시술이나 성형…. 뭐 이런 걸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은 있었다. 그래서 관련 자료를 정부에 많이 요구하고 파고들었다. 청와대로 어떤 약품이 들어갔고, 무슨 의료 행위가 이뤄졌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그동안 정부는 자료를 잘 주지 않았다. (이번에) 자료를 받고 여러 상상을 했다. 청와대에서 벌어졌을 만한 일들에 대해서 말이다.

오랫동안, 주기적으로 미용주사 등이 청와대로 들어갔다. 그걸 과연 청와대 직원들이 썼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피부, 미용 시술에) 집착하고 의존 상태였다는 게 느껴졌다. '최순실 단골 병원' 김영재 의원 쪽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그 날 골프 치러 갔다고 했는데, 프로포폴 하나가 처방된 게 드러났다.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직 모든 진실이 드러나진 않았으나, 작은 퍼즐을 하나 맞춘 기분이다. 우리 의원실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왜 이렇게 외모에 집착했을까. 미용 주사제 등에 집착한 걸 보면 인간적으로 측은한 느낌마저 든다. 평생 '공주 놀이'를 했던 사람이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박근혜 대통령'을 뽑은 국민들의 실망감도 무척 크다.
"박근혜 대통령은 1998년 보궐선거로 국회에 들어온 후 13년 7개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표 발의한 법안이 15건밖에 없다. 거의 활동을 안 한 셈이다. 지금은 청와대 관저에 계시고, 국회의원 시절엔 집에만 있었던 것 같다. 다 신비주의였다.

정치인 박근혜는 2004년 천막당사 때부터 보수정당의 정점에 있었다. '박정희 환상'이 큰 역할을 했다. 보수정당이 그걸 이용해서 권력을 만들었다. 보수세력이 위기에 처하면 '선거의 여왕'으로 포장해 박근혜를 권력 유지 수단으로 이용했다."

- 일각에서는 이번 촛불정국을 '피 없는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역사를 보면 고비마다 시민이 큰 역할을 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 2004년 탄핵정국, 이번 촛불까지. 결국 역사는 제도 정치권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시민이 역사를 쓰고 만든다. 시민이 가리키는 방향은 정확하다. 정치권이 시민의 뜻을 잘 받아서 정치에서 녹여야 한다. 과거 1987년에는 그걸 제대로 못 했다. 시민이 목숨 걸고 싸워서 만든 걸 정치권이 휴짓조각으로 만들었다. 이번에도 위태로운 적이 있었다. 다행히 시민들이 정치권을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시민은 정치권이 흔들릴 때마다 길을 만들어줬다. 정치권은 시민의 뒤를 쫓아가기에 급급했다고 본다."

- 이번에 시민이 왜 이렇게 분노했다고 보나.
"여러 누적된 문제가 있다고 본다. 과거에 비해 경제 규모는 커졌는데, 국민들 상황은 나날이 어려워졌다. 빈부격차도 심하고 그 속에서 열패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이런 문제의식이 꽉 차 있는 상태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국민은 '우리는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대통령이 저러고 있었을까' 하고 배신감을 느꼈다. 그 분노가 굉장히 컸다고 본다. 50대 이상 기성세대의 가슴 속엔 일종의 자부심이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를 일으키고, 민주화를 이룩한 장본인들 아닌가. 그런데,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에 그들 역시 대통령에게 크게 실망했다고 본다."

- 시민 스스로 자신들이 선택한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큰 틀에서 대한민국은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 경제 대국은 됐는데, 다들 먹고 살기 힘들어 한다. 모든 사람이 고루 잘 사는 사회, 일상과 미래가 불안하지 않은 사회, 일한 만큼 보답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공정하지 않은 걸 고쳐야 한다. 경제 불평등과 사회적 불공정, 이걸 꼭 해결해야 한다. 더불어 (길게는) '87년 체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체제가 필요하다."

- 이번엔 시민이 한 발짝 앞섰지만, 늘 그럴 수는 없다. 정치권이 의제를 던지고 사회를 이끌어야하지 않나.
"돌아보면, 성매매방지법, 호주제 폐지 등도 아주 오랫동안 싸워서 겨우 됐다. 정치적 사안이 아닌데도 그렇다. 새로운 법안이 국민 의식수준을 너무 앞서가면 사장되기도 한다. 정당이 사회에 의제를 던지고, 그것이 국민 사이에서 공론화되고, 새로운 제도와 인식이 안착되고…. 이런 게 정상일 거다.

새로운 입법과 제도 안착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핵문제, 환경문제 등 (합의가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정치권이 의제를 제시하고, 공론화 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정당이 국민과의 소통 공간이 돼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된 측면이 있다. 정당이 실질적인 민주적 정당으로 바뀌는 게 중요하다."

230만이 모인 '혁명'... "제대로 일 하겠다"

"미용 주사제 등에 집착한 걸 보면 측은한 느낌마저 든다"
 "미용 주사제 등에 집착한 걸 보면 측은한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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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운동가 출신인데, 정치활동에 많은 도움이 됐는지.
"나는 격렬하게 운동을 한 세대다. 우리 세대의 시민운동은 준 정당 기능을 많이 했다. 새로운 정책, 법 개정을 많이 이뤄 냈다. 남녀고용평등법, 성매매방지법, 호주제 등은 시민운동이 싸우고 정치권이 따라온 정책 중 하나이다. 여성 비례대표 절반 배치도 시민사회 쪽에서 정치개혁연대 만들고 의제를 던져 이룩한 일이다. 그렇게 훈련을 많이 한 상태에서 정치권에 들어와 크게 어렵거나 생소하지는 않다.

다만, 시민사회에 있을 때는 무엇이 정의인지, 원칙과 당위를 중심으로 주장을 하면 됐다. 그런데 정치권은 많이 다르다. 여기에는 여야가 있다. 같은 당 내부에서도 합의를 해야 하고, 다른 정당인 상대방도 존중하면서 토론, 합의를 해야 한다. 게다가 지역구 여론과 의견도 청취해야 한다."

- 30년 시민운동과 10년 정치인, 어느 게 힘든가.
"시민운동은 좋은 세상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했기에 몸은 고달팠어도 행복했다. 정치는 책임감 때문에 힘든 측면이 있다. 그래도 여러 상황을 따지면 시민운동이 당연히 힘들지 않겠나."

- 과거에 비해 시민운동이 많이 약화됐다.
"전환기에 있다고 본다. 과거에는 시민운동이 준 정당 역할을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즈음까지 말이다. 그때는 제도권 정치가 워낙 취약했다. 정치가 의제를 못 던지고, 입법 등 정당 기능을 제대로 못 했다. 그 시기에는 시민운동이 그 역할을 했다. 그 이후 시민운동가들이 제도 정치권에 들어오고, 정당의 기능이 좀 회복됐다. 이제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이 자리 잡을 때다. 요즘은 생협, 인터넷 동호회 등 이전과는 다른 흐름과 운동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운동이 결정적 순간에는 활발하게 불타오를 수 있다고 본다."

- 어떤 정치인으로 남고 싶나.
"시민사회 진영에서 정치개혁 운동을 하면서 정치에 참여한 사람이다. 시민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으니, 그 역할을 계속하고 싶다. (언제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개헌을 할 것이다. 개헌을 하면 87년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87년 체제는 30년 동안 이어졌는데, 대대적인 정치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의성과 비례성이 반영되는 제도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대의제다. 대의제는 투표의 등가성, 비례성이 확보돼야 한다. 지금은 1000만 표가 사표가 되는 상황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지역구도가 깨지고 정치 다양성이 실현된다.

또 그렇게 돼야만 이원집정부제든, 내각제든, 4년 중임제든 정치가 제대로 선다. 개헌을 통해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꼭 바꿔야 한다. 핵심은 국회의원 선거법을 바꿔서 투표의 비례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럴 때 진보정당이 제대로 의석을 가지고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우리가 지향하는 새로운 시대의 가치가 반영되는 정치가 실현된다.

나는 정치 개혁에 관심이 많다.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기본 틀을 잘 짜고 싶다. 그래야만 좋은 생산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지금이 그 논의를 할 수 있는 최적기다. 지금까지 뉴타운, 여성, 노동 등 정책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앞으로는 정치개혁에 많은 신경을 쓰고 싶다."

- 시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이번 촛불정국 때 많은 걱정을 했다. 시민 230만 명이 광화문에 모인 12월 3일, 나는 그 날이 혁명의 날이라고 본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을 국민이 그날 명징하게 보여줬다. 감사한 마음이 크다. 정치인으로서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크다. 우리에게 힘을 줬으니, 제대로 일을 하도록 노력하겠다.

더불어, 국민 여러분들께서 정치권에 어떤 결과를 요구하면서 조금 인내심을 가져 주셨으면 한다. 당장 시민과 똑같은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라겠지만, 국회에는 서로 상대방이 있는 만큼 토론-조율-합의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정치권을 신뢰하면서 질책해 주시면 고맙겠다. 그리고 정권 교체까지 힘 잃지 말고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상규님은 전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회사를 그만둔 지금은 지리산 자락에서 사는 백수지만, 여전히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입니다. 사진은 박영록님이 촬영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17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김상희 , #세월호 , #청와대 의약품 , #마늘주사 , #태반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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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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