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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에서는 치매 노인을 돌보는 일이 가능했다. 일단 여럿이 모여 살다 보니 일손이 남는다. 한 사람이 전담해서 노인을 돌보지 않으니 부담이 적다.
연령과 성별에 따라 나누지 않고, 구별없이 모여 먹는다
▲ 고노하나 페밀리의 점심식사 연령과 성별에 따라 나누지 않고, 구별없이 모여 먹는다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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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삶이란 주제로 2주 후에 1년 정도의 긴 여행을 떠난다. 긴 여행을 위한 사전연습 삼아 일본에 있는 공동체에 다녀왔다. 공동체는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의 하나다. 공동체를 눈 여겨 보게 된 건 신약 성경 때문이었다.

신약 성경의 사도행전 2장 44절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라는 말이 있다. 이 천 년 전의 허무맹랑한 얘기 같지만, 공동체는 지금도 세계 각지에 있다. 한국에서는 '마을 만들기', '공유 주택' 등의 이름으로 변형되어 알려져 있다.

공동체에서 살면 지속가능한 삶을 살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마을 사람들과 공동소유한 주택에서 살고 있으므로 실업자가 돼도 은행에 집이 넘어갈 확률이 낮다. 공동체가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준다.

어린아이가 있는 맞벌이 부모는 공동 육아를 통해 육아와 커리어의 병행이라는 짐을 줄일 수 있다. 혼자서는 가격 때문에 부담스러워 설치하지 못하던 태양열 집열판도 공동으로 구매하여 쓰기 때문에 대안 에너지 사용도 수월하다.

알면 알수록 공동체는 매력적이었다. 어느 공동체든 일단 한번 가보고 싶었다. 세계 곳곳에 있는 공동체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에코 빌리지, 지구 공동체를 꿈꾸다'라는 책을 읽었다. 일본의 고노하나 패밀리에 가보기로 했다.

1994년 후지산 여신의 계시에 따라 설립된 고노하나 패밀리

작년 2월, 고노하나 패밀리에 총 3박 4일을 머물렀다. 고노하나 패밀리는 1994년에 후지 산 여신의 계시에 따라 설립됐다. 공동체 구성원이 무려 100명에 육박한다. 후지산 자락의 농촌 마을에 아주 커다란 일본식 전통 가옥 2~3채를 구매하여 100명이 같이 산다.

공동체에 들어 오려면 사유재산을 모두 공동체에 기부해야 한다. 공동체에 들어오면 본인의 선택에 따라 공동체를 유지하는 다양한 업무를 한다. 공동체는 친환경 농업을 중점으로 유지된다. 사유재산이 없어도 괜찮은 걸까, 친환경 농업이란 뭘까 등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직접 보고 싶어 고노하나 패밀리에도 가보기로 했다.

마을에 머무르면서 가장 놀란 것은 그들의 거의 완벽한 친환경살이나 뛰어난 채식 식단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관계였다. 3박 4일이 짧은 시간이어서 좀 더 깊숙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한계는 있었으나, 분명 이전까지 경험한 인간관계와는 달랐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밤 7시가 되면 공동체 식당에 모인다. 학교 대강당만큼이나 넓은 공간이다. 목조 건물이라 더욱 학교 강당 같은 느낌이 난다. 식사할 때는 연령별로, 성별로 뭉쳐 앉지 않는다.

30대 청년이 70대 노인 옆에 앉아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공동체 리더, 이사돈씨도 다른 구성원들과 같은 식탁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다. 거동이 불편해 늘 휠체어에 앉아있는 노인도 공동체 사람들의 도움으로 같이 밥을 먹는다. 누구도 소외 당하지 않는 평화로운 식탁이었다.

휠체어를 탄 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식사를 하는 노인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얼마 전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3년 정도 치매를 앓으셨고, 거의 요양병원에 계셨다.

요양병원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나 다름없다. 따뜻함, 웃음, 평화로움이라고는 바늘귀 만큼도 없다. 부모님과 나는 그런 곳에 할머니를 모신다는 죄책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모시고 살 용기도 없었다. 할머니 수발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부모님과 나 전부 돈을 벌고 매일의 생활을 이어 나가기도 벅찼다.

여럿이 모이니 일손이 남는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일이 가능하다

공동체에서는 치매 노인을 돌보는 일이 가능했다. 일단 여럿이 모여 살다 보니 일손이 남는다. 한 사람이 전담해서 노인을 돌보지 않으니 부담이 적다. 돌아가며 노인의 수발을 든다. 공동체에 있는 아이들도 허물없이 노인에게 재롱을 피운다.

서울에서 보던 지하철의 무례한 노인, 공원 벤치에 쓸쓸히 홀로 앉아있는 노인을 보며 나도 모르게 노년에 대한 공포를 키웠었다.

고노하나 패밀리에서 목격한 노인들은 달랐다. 60이 넘어도 공동체 유지를 위한 노동에 계속 참여했다. 일이 있으니 쉽게 늙지 않는다. 거동이 불편해지고 치매가 와도 요양비만 축내는 노인 취급 받지 않는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같이 식사를 하고, 일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공동체의 젊은 사람들은 행복한 노인들을 보며 노년의 삶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줄인다. 게다가 노인들로부터 육아나 농업에 관한 지식을 전수받을 수도 있다.

밤 9시부터 3시간 정도 전체공동체 회의를 한다. 공동체 회의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한다. 주제는 다양하다. 내가 참여한 첫날은 일본 사회에 대두되는 히키코모리 문제, 유명인의 부패 스캔들을 토론했다.

고노하나 패밀리는 공동체 내부에 고립되지 않고 외부사회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치려 한다. 외부사회와 소통 없는 공동체는 컬트 집단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70대에게 충고하는 30대, 70대의 반응은?

공동체 사람들이 모여사는 일본식 전통가옥이다.
▲ 고노하나 페밀리, 공동주택 공동체 사람들이 모여사는 일본식 전통가옥이다.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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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에는 좀 더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100명이 넘는 사람 앞에서 30대 청년이 70대 노인에게 큰소리로 충고했다. 노인의 부주의한 운전 습관 탓에 교통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청년은 노인에게 운전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청년이 크게 노인을 꾸짖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30대가 70대에게 충고를 한다는 것 자체는 충격이었다.

나의 반응과는 달리 노인은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앞으로 더욱 조심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두 사람 모두 언짢아하는 기색은 없었다. 마치 늘 있는 일 같았다. 회의가 끝나고 당사자 네코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네코 할머니, 아까 그 젊은 청년이 할머니한테 운전하지 말라고 할 때요, 혹시 기분 나쁘지 않으셨어요?"

"아니, 괜찮아. 그 친구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줘서 말하는 건데 뭐. 내가 더 조심해야지."

할머니의 반응은 정말 '쿨' 했다. 일본 역시 한국만큼이나 장유유서의 개념이 확실한 나라인데.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어쩌면 할머니와 청년 간의 관계가 돈독했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 사람들은 매일 같이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이야기한다.

서로의 삶에 주제넘은 간섭을 한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노인과 청년 사이의 대화가 '오지랖'이 아닌 '서로에 대한 관심'으로 해석될 수 있던 배경이다.

고나하나 공동체에서의 3박 4일은 짧지만 강렬했다. 1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사유재산 없이 모여 사는 모습은 사실 100%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에 자꾸 기억이 난다.

차가운 요양병원이 아닌, 따듯한 공동체 속에서 죽음을 담대하게 기다리는 노인을 보며 자본주의 시스템의 인간소외 현상을 공동체가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70대와 30대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사람 사이의 신뢰에 대해 고민해봤다.

공동체가 유토피아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쩌면 돈 때문에 사람이 소외되고, 얼굴을 맞대는 대신 SNS로 이야기하며 너도나도 키보드 워리어가 돼 버린 현재 사회에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
첨부파일
고노하나.jpg


태그:##세계일주, ##공동체, ##고노하나패밀리, ##대안주거, ##후지산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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