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Leon -> Astorga 구간 중 순례자 동상과 함께
▲ 산티아고순례길 Leon -> Astorga 구간 중 순례자 동상과 함께
ⓒ 임충만

관련사진보기


3수 편입,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그리고 내 자신을 찾기 위해 삶을 여행하다보니 28살이 되었다. 흔히 대한민국 청년들은 고등학교 때는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대학교 4년의 학업이 끝날 때쯤엔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취업에 도전한다.

나 역시 다른 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삶을 주도적으로 살기보다는 때에 맞추거나 점수에 맞췄더니 어느 순간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잘 몰랐다. 그나마 영어를 좋아하고 봉사활동에 자주 참여해 NGO나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 관심이 많다는 그 쯤이었다.

2015년 여름, 나는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대학생이었는데 한 번 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휴학을 연장했다. 당연하게도 부모님께서는 '걱정 충만'하셨다. 주위 친구 자녀들은 취업준비하기 바쁜데 장남이 또 외국을, 그것도 공부나 취업이 아닌 다른 이유로 간다니 걱정할 만도 하셨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여행하고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직에 들어가기 전 내가 이제까지 배운 것과 경험한 것을 실행해보고 싶었다. 기획, 홍보, 마케팅 등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게 '응답한다1988 프로젝트'(88회 헌혈 88년생 800km 순례길 88헌혈증 기부해 88한 에너지 불어넣기)이다.

2015년 2월 인턴 마지막날 프로젝트 발표
▲ 런던인턴 2015년 2월 인턴 마지막날 프로젝트 발표
ⓒ 임충만

관련사진보기


28살 런던 인턴과 첫 자유여행

2015년 1월,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대학생으로 처음 유럽에 갔다. 마지막 학기를 남겨뒀지만 아직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직장에 다닐지 구체적으로 윤곽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휴학을 결심하고 30살이 되기 전, 그리고 취업 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해보면서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계획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계획한 게 유럽 인턴과 여행이었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어 산업혁명지의 발상지인 런던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 국제처 프로그램 중 런던 인턴에 지원했고 인턴이 끝나고서는 첫 자유여행을 기획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상해를, 2011년 선교를 위해 캄보디아를 방문했고 2013년에는 해비타트 건축봉사로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는데 자유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4주간의 런던 인턴 동안 자유롭게 런던을 활보한 것은 내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런던 중심지에 위치했던 회사는 교육 컨설팅을 하는 곳이었는데 나는 마케팅 홍보 업무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고, 인턴 시간이 끝난 후에는 무료 개방인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주말에는 같이 인턴하는 친구 동생들과 근교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고 그 도시의 문화를 접하는 건 굉장히 즐겁고 행복했다. 회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나라는 다 제각각이었고 인종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국어 문화도 다 달랐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어우러지는 모습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여유있는 삶
▲ 프랑스 여유있는 삶
ⓒ 임충만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4주간의 인턴이 끝나고 그동안 파트타임잡으로 모은 돈으로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체코,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취업하면 우리나라 문화 특성상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장기간의 휴가를 사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장기여행이 힘들고 나 또한 더 늦기 전에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직접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진과 책에서나 보던 역사적인 건물과 도시를 보고 직접 걸어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어쩌면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여행할 기회가 있음에 감사했고 이제까지 배움의 기회를 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함이 들었다.

첫 산티아고순례길
▲ 산티아고대성당 첫 산티아고순례길
ⓒ 임충만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마지막 나라로 스페인을 여행했다. 중학생 때부터 레알마드리드 지네딘 지단 선수의 팬이어서 마드리드를 여행하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다. 10년 넘은 꿈이 이뤄질 때 나는 정말 감사했다.

스페인에 가서는 그저 관광보다는 의미있는 여행을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했다. 일정상 800km에 다다르는 프랑스길을 다 걸을 수는 없고 Leon부터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300km 정도를 걷기로 했다.

걸으면서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의 삶을 듣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고 걷기와 운동을 좋아해 한번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약 10일 동안 300km를 걸으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무탈하게 목적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야고보 대성당에 도착했다. 하지만 도착의 순간 성취감 보다는 허무함이 컸다. 그리고 내가 돌아온 길을 돌이켜 보니 목적지에 다다르는 순간보다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크다고 생각이 들었다. 스티브 잡스도 "The journey is the reward"라고 말했는데 여정 자체가 내게 보상이었다.

걸을 수 있는 감사함. 건강 주신 부모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3수 편입 등 나 나름대로 우여 곡절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겐 여행과 배움의 기회는 있었다. 나에게 도전은 열정 자체의 문제였지만, 그것조차 사치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방법은 없을까라는 고민과 함께 내 첫 유럽여행은 막을 내렸다.

적십자 본사
▲ 스위스 적십자 본사
ⓒ 임충만

관련사진보기


다시 취준생

그렇게 첫 자유여행이 끝나고 귀국하고 나니 또 다시 나는 '취준생(취업준비생)'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내 자신을 조금 더 발견하고 나를 성장시켰지만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갈지는 여전히 숙제였다.

그저 취업을 위한 영어 공부와 시간날 때 틈틈이 나를 위한 독서를 하며 지내는데 학교 단과대에 스위스CSR(기업사회공헌활동)에 대한 연수 프로그램 공고가 올라왔다. 스위스는 물가가 높아 여행지에서 제외했었고 마침 봉사나 기업 사회공헌활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또 첫 자유여행과 같이 새로운 곳에서 선진국의 시스템을 조금이나마 엿본다면 또 배우는 것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2015년 8월10일~20일 짧은 시간 동안 스위스 기업과 적십자 IOC 등을 방문하며 그들의 사회공헌활동을 엿볼 수 있었고 나는 보고 느낀 바를 꼭 실행해 보고 싶었다. 아직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재단을 만들거나 사회적 기업을 만들 수는 없지만 나 나름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한 드라마가 내게 영감을 주었다.

'응답하라1988'. 지금도 시국이 어수선하지만, 작년에도 대한민국 청년의 입장에서 느끼기엔 청년 실업은 늘어만 가고 부정부패는 만연하고 불합리한 사회 같았다. 이런 대한민국 국민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했다.

그때 좋아하는 것(여행) 잘하는 것(걷기) 공적인 것(봉사 헌혈)에 대해 생각해면서 나를 되돌아봤다. 봉사활동에 자주 참여하며 마침 88회의 헌혈을 앞두고 있는데 헌혈을 독려하는  여행을 통해 헌혈 참여와 골수기증 참여를 독려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헌혈증을 모아 치료비 때문에 부담갖는 환우와 가족을 위해 기부하면 누군가에게 팔팔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88회 헌혈에 참여한 88년생이 800km 순례길을 걸으며 88장의 헌혈증을 기부한다면 이 걸음이 누군가에게 거름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산티아고 프랑스 순례길 800km 전 구간을 걷되, 내 자신만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누구나 같이 참여하고 실질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걸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태그:#산티아고순례길, #유럽여행, #취준생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