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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年末年始). 한 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시작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때 어떨까요? 새해를 맞이할 준비로 굉장히 분주하죠. 서로 선물교환을 하거나 축전을 보내는 것도 흔합니다. 혹은 다가오는 해에 대해서 근심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군대는 어떨까요? 군대에서의 연말연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군인들의 '바쁜' 연말연시

연말연시에는 군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회에서도 연말연시가 되면 바쁜 것처럼, '작은 사회'인 군대도 마찬가지죠. 일과시간에 훈련물자창고, 보급품창고 등 부대소속 창고를 싹 청소합니다. 그냥 청소를 하는 것만 아니라 물품체크도 병행하면서요.

물품체크를 하면 웃지 못 할 일들이 터집니다. 분명히 없어졌다고 생각되던 물품들이 구석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검열 때는 그렇게나 찾아 헤매던 방탄 헬멧의 턱끈 등이 구석에서 발견되는 경우죠. 만약 이런 경우가 생기면 어떨까요? 수량조사를 다시 해야 해서 일이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저 역시 그런 상황이 있었죠. 창고를 정리하던 중에, 잊어버린 것으로 알았던 구형물품들이 주르륵 나왔습니다. 담당자인 동기는 난색을 표했습니다. 같이 창고를 정리하던 동기는 제게 말했습니다.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더 늘어날 것을 우려한 저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죠.

"야. 이거 못 본 거다?"

여유로운 병장들의 연말연시

지난 2013년 3월 22일 오후 경기도의 한 부대에서 촬영된 tvN 군디컬드라마 <푸른거탑> 촬영현장. 배우 김재우가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향해 장난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 2013년 3월 22일 오후 경기도의 한 부대에서 촬영된 tvN 군디컬드라마 <푸른거탑> 촬영현장. 배우 김재우가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향해 장난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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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연말연시에 가장 여유로운 것은 병장들이죠. 전역일이 얼마 남지가 않은 병장들에게 연말연시란 '다가오는 축복'이나 다름없습니다. 대다수 병장들은 연말연시가 다가오자 제일 먼저 뭘 했을까요? 먼저 주머니에 손을 넣습니다. 그리고는 굉장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걸어 다녔지요. 그렇게 천천히 막사를 돌아다닙니다.

제가 한참 후임이던 때, A라는 병장이 있었습니다. A병장은 전형적인 '말년병장'에 속했죠. 전역일이 앞으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A병장. 옛날에는 상당한 '악마 선임'으로 불리던 A병장은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연말연시가 되자, A병장은 고참의 상징인 '노란색 깔깔이'를 걸치고 천천히 막사를 돌아다니고 있었죠.

이때 저는 그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A병장은 씩 웃었습니다. 그러더니 제게 앞으로 전역까지 며칠이나 남았는지를 물어봤습니다. 당시 입대한지 고작 2개월~3개월 남짓했을 무렵이죠. 당연히 1년 6개월 이상이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1년 6개월 남았습니다"라고 말했지요. 그러자 A병장은 입이 귀까지 찢어졌습니다. 그러더니 키득키득 웃으면서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 1년 6개월이나? 나 같으면 자살한다!"

A병장은 낄낄대며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후임을 찾아서 똑같은 질문을 하고, 똑같은 대답을 했죠. 이제 전역일이 얼마 남지가 않음을 과시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고생을 했고, 이제 나갈 때가 되니 굉장히 즐거워할 만합니다. 친한 후임들은 "아~ 말뚝 박으시면 안 됩니까?" "아~ A병장님 오래보고 싶은데, 마음의 편지 써서 15일 더 복무연장 시켜야겠다!"라면서 장난을 치기도 했죠.

물론 여기에는 예외도 있습니다. 제가 상병 때의 일입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임이 곧 전역할 때가 왔습니다. 이즈음이 되면 웬만한 '악마 선임'들도 표정이 부드러워집니다. 더군다나 군인에게 휴일과 같은 연말연시까지 오고 있는 타이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유로운 표정이 아니었죠. 오히려 굉장히 불쾌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 선임의 대답은 걸작이었죠.

"야! 씨X, 이딴 X같은 곳에서 연말연시를 2번이나 보내야겠냐?

하지만 '눈'이 내리면 어떨까?

지난해 11월 육군35사단 장병들이 전북 임실군 임실읍 치즈마을에서 농가에 쌓인 눈을 치우는 모습.
 지난해 11월 육군35사단 장병들이 전북 임실군 임실읍 치즈마을에서 농가에 쌓인 눈을 치우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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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는 연말연시에 눈이 내리면 기뻐하는 사람들이 나오죠. 특히 어린이나 학생, 연인들은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연말연시의 즐거움이 새하얀 눈으로 배가되는 순간이죠. 그러나 연말연시에 병사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창고정리도, 약을 올리는 병장들도 아닙니다. 가장 힘든 것은 다름 아닌 '눈'입니다.

군인들에게 연말연시의 '눈'만큼 싫은 것이 없습니다.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민간인들과 달리 군인들은 눈이 내리면 '치워야 하기' 때문이죠. 특히 연말연시에 눈을 제거하는 '제설(除雪)'은 굉장히 번거롭고 짜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연말연시에는 평일보다 취침시간이 길게 주어집니다. 행복한 '꿀잠'을 자던 병사들은 기상방송을 듣습니다. 그와 동시에 당직사관의 전달사항이 전파됩니다. 듣는 순간 병사들의 거친 욕설과 짜증이 중대 곳곳에서 퍼져나갑니다. 당직사관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죠.

"중대원들은 방한대책 철저히 강구하고, 지금부터 '제설작전'에 들어간다!"

제설작전. 주둔지 및 근처 도로망 근처의 눈을 치우는 일이죠. 급박한 전시를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군대에서는 '제설작전'이라는 거창한 명칭을 사용합니다. '작전'이라는 거창한 명칭을 쓸 정도로, 병사들을 피곤하게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연말연시에 눈이 내린다면 병사들 입장에서는 아주 죽을 맛입니다. 편안하게 쉬어야 할 연말연시에 눈이나 치우고 있으니 말이죠! 방한대책을 아무리 철저히 하더라도 결국 추위에 벌벌 떨게 됩니다. 만약 눈을 치우는 과정에서 젖는다면? 살이 얼어붙는 통증까지 옵니다.

게다가 눈을 아무리 치우고 치우더라도 금세 쌓입니다. 빨리 눈을 치우라고 다그치는 당직사관. 끊임없이 내리는 눈을 보고 절망하는 병사들. 6.25전쟁 때 끝없이 몰려오는 중공군을 보던 국군의 기분이 이랬을까요?

거기에 밤에 폭설이 시작된다면? 병사들은 'X됐다'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린다'라고 중얼댑니다. 새벽에 곤히 자는 병사들을 즉시 깨워서 교대로 제설작전에 투입시킵니다. 물론 교대를 해도 눈은 그대로입니다. 아무리 치워도 계속 족족 쌓이거든요. 사실 이게 의미가 있는 행동인가 싶기도 합니다. 눈이 내리는 와중에, 아무리 눈을 치워도 진전이 있을까요? 오히려 병사들의 노동력을 낭비하는 바보짓이라는 생각도 들었죠.

이렇듯 연말연시에 눈이 내린다면 병사들에게 정말 '최악의 재앙'이 도래합니다. 혹시 지금 이 시간에도 추위에 벌벌 떨며 한참 '제설작전'을 수행하는 병사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병사들을 위해서, 올해 연말연시만큼은 눈이 '조금만' 내리길 기원합니다. 끝으로 국군장병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겠습니다.

"대한민국 국군장병 여러분, 연말연시에도 고생하십니다. 여러분 덕분에 우리들은 사회에서 안심하고 잠을 잘 수가 있습니다. 부디 다치지 마십시오. 하루빨리 가족의 따스한 품으로, 상식적인 민간사회로 건강하게 돌아오기 바랍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태그:#고충열, #입영부터전역까지, #제설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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