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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준공된 신축 건물(광운대 80주년 기념관)은 내부 공사 중이었다. 주로 지상·지하 1층의 도서관 자료실 내부에서 이뤄졌다. 유리벽에는 뿌연 비닐이 붙여졌다. 공사 가림막 대용일까. 흐릿해진 유리벽 너머에서 날카로운 기계음이 들려왔다. 절삭공구로 금속과 목재를 절단할 때 나는 소음이었다. 각종 시스템 장비의 설치도 한창이었다.

청소노동자가 '동시통역실'로 가는 이유

구순자 씨가 80주년기념관 지상 1층을 청소하고 있다.
 구순자 씨가 80주년기념관 지상 1층을 청소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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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자 씨가 80주년기념관 지상 1층을 청소하고 있다.
 구순자 씨가 80주년기념관 지상 1층을 청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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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와중에도 세 남학생이 1층 자유열람실 밖에서 공부를 했다. 오전 청소를 마친 구순자 조합원(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이 학생들 사이로 지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4층으로 올라갔다.

4층은 교직원 사무실과 대강당 출입구가 있는 곳이었다. 상당히 한산했다. 지상·지하 1층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순자 조합원은 4층의 외딴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강당 출입구 쪽이었다. 더 깊숙하게 들어가니, '동시통역실'이란 글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동시통역실'은 강당과 관련된 공간처럼 느껴졌다.

순자 조합원이 '동시통역실' 문 앞에 섰다. 디지털 도어록에 비밀번호 4자리를 차례대로 꾹꾹 눌러댔다. 숫자 조합을 모두 끝마치자, 경쾌한 소리가 났다. 잠금장치가 풀린 것이었다. 곧이어 '동시통역실' 내부가 드러났다.

구순자 씨가 '동시통역실'(휴게실)로 들어가고 있다.
 구순자 씨가 '동시통역실'(휴게실)로 들어가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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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동시통역실'로 들어갔다. 라디오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동시통역실'에는 이미 다른 노동자들이 있었다. 점심식사 준비 중이었다. 이를테면 밥상 위에 각종 반찬들이 올라와 있었다. 노동자들이 하나둘 '동시통역실'로 왔다.

그렇다. '동시통역실'은 신축 건물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이다. 3층에도 '창고/대기실'이란 이름을 가진 휴게실 하나가 또 있다. '동시통역실'과 비슷한 구조의 공간이다. 새 건물을 쓸고 닦는 청소노동자가 많기 때문이리라. 문에 적힌 글자들을 액면대로 보면, 두 곳 모두 원래는 청소노동자 휴게실이 아니었다. '동시통역실'과 '창고/대기실'은 대강당의 부수적 공간이었다. 애초 설계 때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잘 안 쓰는 공간을 청소노동자 휴게실로 내준 듯했다.

순간, 리모델링을 잎둔 중앙도서관 건물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이 생각났다. 그곳은 1층 계단 밑 창고였다. 사실상 토굴이나 다름없었다(관련 기사: 1.7평 방에서 5명이... '테트리스' 같은 휴식). 방금 식사 준비에 나선 노동자들이 불과 1~2달 전까지 중앙도서관 건물을 청소하며, 사용해온 휴게공간이었다.

"(우리는) 신축 건물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원래는 도서관 (건물)에서 계속 일하다가 (도서관 자료실과 열람실이) 신축 건물로 이전하면서 여기로 자연스럽게 넘어온 사람들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저희는 일터가 바뀌면서 휴게실도 자연스럽게 바뀌었어요. 그런 점에서 지금 휴게실이 옛날 (도서관 건물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좋아요. 물론 새 건물이니까, 그렇겠지만요. 그래도 진짜 예전에는 (중앙도서관 건물 휴게실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몰라요."

창고 쉼터를 꽤 경험한 임효선 조합원(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이야기다. 생각건대, 새 건물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예전보다 확실히 좋아졌다.

청소노동자들이 '동시통역실'(휴게실)에서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이 '동시통역실'(휴게실)에서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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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천장이 꽤나 높은 곳에 위치했다. 어디서나 서 있는 자체가 가능했다. 노동자들이 쉬는 곳의 높이는 내가 팔을 쭉 뻗었는데도, 손이 닿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창고 쉼터는 계단의 경사로 탓에 천장이 130cm에 불과했다. 노동자들이 천장에 자주 머리를 찧어온 원인이었다. 높은 천장 덕에 이제는 허리를 숙일 필요가 없다. 형광등도 마찬가지였다. 창고 구조상 형광등이 사람 앉은키 높이에 붙어 있는 만큼, 눈이 자주 시려왔다. 너무 빛났기 때문이다. 현재는 형광등의 눈부심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형광등 옆에는 시스템 냉난방기도 설치된 상태였다. 올 겨울은 따뜻한 휴식이 가능해졌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견디기에도 충분해졌다.

외부의 소음에도 시달릴 이유가 없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 건물의 휴게실은 계단 자체가 천장이 아니었다. 천장 위로 어떤 소리도 안 들려왔다. 예전이면 벌써 구두와 신발의 거친 발자국 소리로 휴게실 안이 진동했을 것이다. 그게 또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자들의 대화 소리뿐이었다.

"우리는 언제쯤 인간다운 휴식이 가능할까요?"

"나는 경희의료원에 갔을 때 신주만 봤어. 신주가 빛이 났거든. 그런데 내가 과연 저렇게 (신주를) 닦을 수 있을까 속으로 생각한 거야. 잠도 안 오는 거야. 어떻게 하면 잘 닦을 수 있을까 고민하느냐고... 그때는 청소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었어."
"진짜 자기 직업은 못 속여. 그것도 직업병이야, 직업병."

마주앉은 노동자들이 점심을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ㄱ자 구조의 창고 쉼터 안에서는 전혀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창고 쉼터에 들어가면 구석에 있는 사람의 얼굴은 잘 안 보였다. 보이지 않는 상대와 대화하는 것이었다. 노동자의 음성으로 누구인지 구별해야 했다. 하지만 새 건물의 휴게실은 ㅁ자 구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6명이 함께 쉬기에는 여전히 좁다. 휴게실의 면적은 대략 6.4㎡(1.94평)에 불과하다. 창고 쉼터와 비슷한 면적이다. 잠시 누웠을 때 뒤척이지도 못할 정도로 제한적이다. 테트리스 게임의 일자형 퍼즐처럼 쉬는 꼴이다. 여전히 누워서 쉬는 일은 쉽지 않다. 불편하기 그지없다.

"여기가 많이 좁아요. 휴게실을 좀 넒은 데로 옮겨줬으면 좋겠어요."

이틀 전부터 신축 건물에서 일을 시작한 황보경 조합원(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이야기다. 보경 조합원 옆에 앉은 효선 조합원도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황보경 씨가 '동시통역실'(휴게실)에서 창밖 풍경을 보고 있다.
 황보경 씨가 '동시통역실'(휴게실)에서 창밖 풍경을 보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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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마친 황보경 조합원이 창밖을 바라봤다. 확 트인 광운대 교정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순간 외부의 빛이 창문으로 슬며시 들어왔다. 자연광이었다. 불을 꺼도 어느 정도의 밝기를 유지했다. 창고 쉼터와는 정반대였다. 창고 쉼터에서는 오로지 '눈부시게 밝은 형광등 조명'에 의지해야 했다. 창문이 없는 탓이었다. 밤낮의 구별조차 어려웠다. 불을 안 켜면, 어두컴컴했다.

창문의 존재로 휴게실 내부의 환기도 가능해졌다. 계단 밑 창고에서는 절대 불가능했다. 오로지 출입문을 열어둬야 했다. 환풍기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런데 몇몇 학생들이 열린 출입문 사이로 창고 쉼터 내부를 힐끔 보고 지나갔다. 그때마다 노동자들은 누군가가 몰래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출입문을 열어두지 않는 만큼, 학생들의 불필요한 관심을 받을 필요가 없다.

"(신축 건물 휴게실에) 여전히 부족한 점도 많아요. 좋아진 점도 분명히 많아졌죠. 옛날 계단 밑에 있을 때보다는요. 그래도 학교가 지금의 부족한 점들을 고려해서 (신축 건물) 청소노동자들이 좀 제대로 쉴 수 있는 휴게실을 다시 결정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80주년기념관이 새로 지어지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정말 쾌적한 휴게실을 받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정작 잘 안 쓰는 장소를 하나 딱 골라서 떼어준 거예요. 원청 면담 때 총무처(교직원에게)에도 말은 했었는데, 생각해보겠대요.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항상 그런 식이거든요. 말만 하지, 약속이 지켜진 적이 없었으니까요. 우리가 요구하는 것들을 좀 이제는 들어주실 때도 됐는데..."

'동시통역실'(휴게실) 내부 모습이다. 휴게실의 면적은 대략 6.4㎡(1.94평)이다. 5~6명이 쉬기에는 굉장히 비좁다.
 '동시통역실'(휴게실) 내부 모습이다. 휴게실의 면적은 대략 6.4㎡(1.94평)이다. 5~6명이 쉬기에는 굉장히 비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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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분회장님(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이야기다. 신축 건물에서 청소 일을 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줄곧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휴게공간을 요구 중이다. 아직은 "두더지들이 사는 공간"에서 막 벗어난 상황에 불과하니까.

이를테면, 산업안전보건법(제29조 제9항)과 서울시 청소근로환경시설 가이드라인대로 세면(목욕)·세탁·탈의·식사(취사)가 이뤄질 만한 공간이다. 청소 일의 특성상 필요한 구성조건이다. 1인당 5㎡(1.65평) 내외의 면적이 적용된 '넓은 공간'도 절실하다. 작업복과 평상복을 수납할 가구도 구비돼야 한다. '동시통역실'에 설치된 각종 시설들이 갖춰져야 하는 건 물론이다. 너무나 무리한 요구일까?

그래도 신축 건물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은 나은 편이다. 다른 건물의 청소노동자들은 더 열악한 공간에서 쉰다. 교내에 계단 밑 휴게실은 아직도 많다. 화도관(대학본부 건물), 비마관(전자정보공과대학 건물), 연구관(정보과학교육원 건물)의 청소노동자들은 창문 없는 창고 쉼터에서 휴식 중이다.

더군다나 비마관 휴게실의 외벽은 자판기로 둘러싸여 있다. 휴게실이 물탱크 옆에 있는 곳도 있다. 옥의관(자연과학대학 건물), 복지관의 청소노동자들은 물탱크와 동거한다.(관련 기사: 전기도 안 들어오는 창고에서... 우린 현대판 노비")

"휴게실 문제는 정말 해결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학교 (관계자들이) 우리 이야기 좀 제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언제쯤 인간다운 휴식이 가능할까요?"

황보경 씨가 '동시통역실'(휴게실)을 나가고 있다.
 황보경 씨가 '동시통역실'(휴게실)을 나가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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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맛 같은 휴식은 곧 끝이 났다. 노동자들은 약간의 피곤을 얼굴에 머금은 채 하나둘 휴게실을 떠나간다. 잔잔하게 깔려온 라디오 진행자의 말소리도 어느새 사라졌다. 모두가 일터로 돌아가고 남은 휴게실은 다시 '동시통역실'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2016년 12월 21일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태그:#광운대 청소노동자, #휴게실, #광운대, #민주노총 서경지부, #청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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