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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TV에서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삶의 형태에 더 밀착되는 한 해였다. 직장생활, 결혼, 육아 등 많은 사람이 살면서 겪는 모습이 브라운관에서 익숙한 얼굴로 재현됐다.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독신으로 살며 '혼밥'을 먹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놀랍게도 이와 같은 소재를 1년 앞서 모아놓은 책이 있다. 독자 여러분에게 <오마이뉴스> 편집부 기자들이 쓴 <난지도 파소도블레>를 소개한다.

편집기자의 일상으로 엮은 '아름다운 섬'

풋내기 신입기자들의 솔직궁상 사는 이야기 <난지도 파소도블레>
▲ 책표지 풋내기 신입기자들의 솔직궁상 사는 이야기 <난지도 파소도블레>
ⓒ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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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일에 발간된 이 책은 4명의 편집기자가 팀블로그에 꾸준히 올렸던 글을 엮은 것이다. '풋내기 신입 기자들의 솔직궁상 사는 이야기'라는 책의 부제에서 엿보이듯이, 편집부 기자들이 일하고 살아가며 겪는 일화와 다양한 소회를 담았다.

'소인배 통신 이현진'부터 '과민성 유부청년 최규화', '감성역 8번 출구 김지현', '취미는 오지랖 이주영'까지. 4명의 저자가 적은 소제목부터 문장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풋풋한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다. 말과 글을 업으로 삼으며 지내는 사람들이 일상을 소소하게 적은 것이 내용이다.

<오마이뉴스> 본사가 위치한 상암동은 언론사들이 모여서 '디지털미디어시티'가 되기 전 '난지도'였다. 한때 같은 언론사 소속이었던 저자들은 "오랫동안 쓰레기 매립장이었지만 생태계가 살아난 땅처럼, 궁상맞은 이야기들을 모아 꽃을 피우겠다는 의미"로 팀블로그이자 책의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혼자 사는 단칸방에서 매일 벌레들을 죽이며 종의 다양함에 <파브르 곤충기>를 능가할 것 같았다는 일화, 수염을 길렀더니 2012년 대선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로부터 "어머, 수염도 기르시고..."라는 말을 들었다는 경험도 읽을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연예인의 팬이 되어버린 '덕통사고'의 고백부터 반려견 '웅순이'와 동거를 시작했다는 얘기까지.

또한 결혼 두 달 후 아버지가 술김에 "미안하다"며 말을 건넨 날의 기억은 "수십 년 맺히고 눌려 있던 우주 같은 무게의 순간"으로 표현됐다.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는 나날을 기록하면서 그야말로 '일상으로 아름다운 섬'을 엮어낸 느낌이다.

2016년 예능 트렌드, 이 책에 다 있다

신기한 것은, 2016년의 예능 프로그램 트렌드가 <난지도 파소도블레>에 다 들어있다는 점이다. 돌아보면 방송계에서 예능은 점점 '생활밀착형'에 가까워졌다. 요리하고 먹는 '먹방'의 유행은 여전하고, 가상 결혼과 육아 프로그램도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MBC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로고
 MBC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로고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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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방 청소는 평균 2주일에 한 번 정도 한다. 벗어 놓은 옷들과 읽다가 만 신문, 다 먹고 버린 과자 봉지(?)가 10평짜리 원룸에 나날이 쌓여가도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고 느낀다. 2주일째에 접어들면 침대에조차 누울 공간이 없게 되지만 절대 굴하지 않는다. 난지도 버금가는 쓰레기더미 위에 지친 몸을 뉘이며 산다.

(중략) 빨래도 2주에 한 번 정도 한다. 방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안 치우니 세탁기도 별로 쓸 일이 없다. 그러다 보면 같은 옷을 서너 번 입게 되는 상황에 봉착한다.

혼자 살다 보면 청소와 빨래가 마음먹어야 해치울 수 있는 '큰일'처럼 느껴지곤 한다. 글을 읽다가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건, 혼자 사는 독자로서 내용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부분은 마치 최근 방영 중인 <나 혼자 산다> 같은 '독신예능'과 닮은 것 같다.

MBC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중 한 장면
 MBC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중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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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각자 반려견 '밤비'와 '웅순이'를 입양한 이야기는 흐뭇한 느낌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도 점차 늘어나고 이제 예능에서도 '동물방송'이 등장한 시대. MBC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이경규씨는 강아지들과 함께 누워서 방송, 이른바 '눕방'을 시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근엔 유튜브에서도 '길고양이 먹방'이 인기를 얻을 정도라고 하니, 보기만 해도 좋은 강아지·고양이의 대세를 실감할 정도다. 저자 김지현씨의 '웅순이' 이야기를 보자.
매일 출근을 해야 하는 나, 웅순이는 집에 홀로 남게 된다. (중략) 나는 퇴근 이후 바로 집으로 달려온다. 어디에 들르거나 누군가를 만날 생각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혹시라도 버스를 놓칠까 봐 한숨을 쉬고, 손끝은 초조해진다.

집에 닿으면 신발 벗기가 무섭게 반가움을 표하는 웅순이를 껴안으며 놀이 기구로 녀석과 논다. 내 나름대로의 '사과의 표시'라고나 할까.
MBC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로고
 MBC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로고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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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결혼하지 않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결혼이 삶에서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인식도 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난지도 파소도블레>의 저자 4인의 이야기 중에서도 결혼이 등장한다. 살아가며 겪는 일을 적었으니 결혼에 관한 부분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심지어 저자 중 두 사람은 '서로' 부부가 되기도 했다.

세 사람이 각자 결혼 생활로 접어들며 소회를 적어놓은 글은 뭉클하다. <우리 결혼했어요>의 풋풋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가상결혼'이 아닌 '현실'이기에, 실질적인 문제도 언급된다.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해 신혼집을 알아본다거나 하는, 흔히 부딪혀야 하는 일이면서도 쉽지 않은 고개 같은 일들 말이다. 물론 난관을 이겨내고도 서로 함께할 수 있게 만든 힘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은 부분도 본문에 있다.
만나는 날이 길어질수록 초반만큼의 설렘과 긴장감은 옅어졌지만, 한 가지 감정만은 점점 또렷해졌다. 그를 만나면 '집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 밖에서 여러 사람에게 치이고 나서 그를 만나면, 뭐랄까 하나뿐인 내 편을 만난 기분이랄까. 마치 집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철퍼덕 누웠을 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결혼도 해 보자고 결정했다. 언제나 내 '집'이 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믿고 평생 함께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오마이뉴스> 편집부 기자로 일하다가 겪은 이야기는 EBS 프로그램 <극한 직업>을 떠올리게 만든다. 비록 예능은 아니지만, 만만하지 않은 경험을 접하는 순간 '이거야말로 극한 직업'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아, 독자인데요. 기사 보고 여쭤 볼 게 있어서요..."

무척 신사적인 수화기 너머 한 독자의 목소리. 막내 편집기자는 친절하게 전화 응대했다. 기사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까지. 참기름 짜내듯 쥐어짜는 듯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때 수화기 너머 독자 왈.

"아, 설명 고마워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하나 여쭤 볼 게 있어요."

"네, 말씀하십시오."

"야, 이 씨X! 니네 이 개XX들 죄다 공산당이지? 아니면 빨갱이인가? 이 빌어먹을 XX들, 오연호가 니네 사장이지? 사장 바꿔 이 XX야!"
EBS 프로그램 <극한 직업> 로고
 EBS 프로그램 <극한 직업> 로고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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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근무해보니, <오마이뉴스> 편집부에 이런 전화 종종 걸려온다. 어떤 날에는 여러 건 받을 때도 있다. 독자로서 매체를 향한 비판은 물론 당연히 가능한 일이지만, 다짜고짜 소리 지르고 욕할 때는 당황스럽고 황당할 뿐이니까 말이다.

서울에서 '찡겨' 살던 네 청년의 생활글, 찡하다

<난지도 파소도블레> 저자 최규화, 이현진, 김지현, 이주영 기자(오른쪽부터)
 <난지도 파소도블레> 저자 최규화, 이현진, 김지현, 이주영 기자(오른쪽부터)
ⓒ 한국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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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 파소도블레>에는 "서울이라는 무서운 도시에 '찡겨' 살던" 네 청년의 생활글로 가득하다. 저마다 다른 일로 먹고사는 걱정을 하는 이야기들은 '기자도 결국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차곡차곡 쌓인 일상을 읽으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찡하게 공감되는 부분도 많다.

네 명의 저자 최규화, 이현진, 김지현, 이주영씨 중 두 사람은 현재 <오마이뉴스>를 떠났다. 한 사람은 이직을, 다른 한 사람은 제주도로 거처를 옮겼다. 그런데도 여전히 책에서는 <오마이뉴스>라는 같은 공간에서 나름의 삶을 꾸리던 모습을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기자로서의 고민, 청년의 애환,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진솔하게 공유하는 삶의 기록.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샌가 저자와 친근한 지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잘 먹고 싶어서 잘 살고 싶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쓰인 책장을 넘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수많은 청년들도, 네 명의 저자도 난지도 같은 이 상황에서도 언제 어디서든 잘 먹고 잘 살아가고 있기를.

덧붙이는 글 | <난지도 파소도블레>(이현진, 최규화, 김지현, 이주영 공저/ 작은책/ 2015.11.1/ 1만3천원)



난지도 파소도블레 - 풋내기 신입기자들의 솔직궁상 사는 이야기

이현진 외 지음, 작은책(2015)


태그:#난지도파소도블레, #오마이뉴스편집기자, #예능, #편집기자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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