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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전환연구소(www.igt.or.kr)는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녹색 전환의 다양한 상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녹색의 시각으로 새롭게 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하는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비례민주주의연대'의 공동대표 하승수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녹색전환연구소>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기자말

한해를 정리하는 연말이 찾아왔지만 어수선한 정국으로 국민들 마음은 편치 않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대통령과 정재계의 권력 남용 비리가 드러나면서 국가는 대혼란에 빠졌다. 이를 반영하듯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사상 최저인 4%대로 추락했고, 광화문은 주말마다 촛불을 든 시민들로 가득 찼다. 한편 언론과 미디어는 앞 다투어 비리 소식을 대서특필하면서 대통령과 그 측근에 대한 분노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이 문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고통은 계속 지속될 것이다. 분노와 함께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과연 이렇게 썩을 대로 썩은 사회를 전환할 수 있는 해결책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시민의 힘으로 지금 이 사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기존의 정치 시스템을 개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지난 11월 21일, 그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들어보았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 녹색전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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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에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임기가 끝난 것으로 안다. 녹색당 창단을 이끈 주요 인물이자 공동운영위원장으로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것 같다. 그동안 정치 활동은 많이 해왔지만 후보로 나선 것은 지난 4월 총선 때 국회의원 출마를 한 것이 처음이라고 들었다.

500만 원으로 선거자금을 충당하겠다는 공약도 파격적이었고, 광화문 광장에 천막 선거사무실을 설치한 것도 신선했다. 결국 국회의원에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4년 전 총선에 비해 녹색당 정당 득표율이 약 두 배 늘어난 것은 그래도 큰 성과지 않았나.
"얼마 전엔 녹색당원 수도 1만 명을 돌파했다. 한국과 인구가 비슷한 영국이나 캐나다의 녹색당을 보면 당원 수가 1만 명이 되기까지 약 20년이 걸렸다. 당원 1만 명을 달성한 이후엔 영국과 캐나다 녹색당 모두 국회에서 의석을 차지했다. 진보 정당에서 1만 명은 대단히 의미 있는 숫자다.

선거자금은 500만 원을 쓰는 것이 목표였는데 다 끝나고 계산해보니 총 700만 원가량 썼다. 서울 전 지역에서 정당 선거운동을 하는 당원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피켓 제작비도 이 선거자금으로 충당하다 보니 제작비가 예상보다 많이 나왔다.

거기다 광화문 광장에 설치한 천막 선거사무실을 경찰과 검찰이 벌금 300만 원에 기소했다. 서울시에 사용료 격으로 변상금도 따로 냈는데 검찰이 이렇게 벌금까지 물리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최근 법원에서는 벌금을 100만 원으로 낮추고 그것도 선고를 유예하는 판결을 내렸는데, 검찰이 다시 항소한 상황이다."

광화문 광장에 설치한 녹색당 하승수 후보 선거사무실
 광화문 광장에 설치한 녹색당 하승수 후보 선거사무실
ⓒ 녹색전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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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이 많아야지만 선거를 치를 수 있는 기존의 선거형태에 대한 대항으로 광장에 설치한 천막에다 이런 벌금을 물렸다는 것 자체가 이 사회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비례민주주의연대'에서는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사회의 각종 아이러니를 정치 개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비례민주주의연대'는 2011년부터 시작한 작은 단체다. 당직을 그만두면서 시스템을 바꾸는 일에 더 매진해보자 싶어 공동대표로 활동하게 되었다. 녹색당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그 이전에 했던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서 깨달은 게 많다. 우리가 시스템의 포로가 됐다는 생각이다.

이를테면 한국도 큰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한데, 미국도 비슷하다. 실제로 한국 시민단체들이 미국 시민단체의 활동을 많이 참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은 이번에 트럼프가 당선된 것만 봐도 알겠지만 좋은 사회나 모델이라고 볼 수 없는 곳이다. 미국보다 더 좋은 사회가 많이 있다. 그런 나라에서는 미국식 시민운동의 필요성이 적을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나 사회의 문제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활동을 할 땐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녹색당 활동하면서 외국의 녹색당 사례를 보며 깨달은 게 많다. 나무만 보면 숲을 보지 못한다. 숲을 본다는 건 그 사회가 움직이는 시스템을 본다는 거고, 근본 문제가 어디 있는지를 찾을 수 있는 거다.

최근에 한국과 미국의 정치를 보면서 두 나라 모두 정치 시스템이 잘못됐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발생했다는 걸 깨달았다. 민주당의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미국 사회가 특별히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오바마 이후에 공화당의 극우후보 트럼프가 당선되는 사태를 통해서 과연 이런 사회가 올바른 시스템인지 반문하게 된다."

- 한국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고 오히려 최악으로 치달았다.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은 늘어만 가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국민을 위한 뜻 있는 정치인이 있다 해도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말로 시스템의 피해자다. 이 시스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특정 정당이 의회를 과반수이상 독점하고 재벌과 보수 언론이 이 시스템을 공고히 받들고 있는 상황에서는 개인이 뭘 어떻게 할 수 없다.

쉽게 말해서 집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다. 지금 정치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서는 잘못 지은 집에서 문고리 하나 고치려 드는 격밖에 안 된다.

하승수 "2016년 청와대 앞 피케팅"
 하승수 "2016년 청와대 앞 피케팅"
ⓒ 녹색전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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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도 정치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많이 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다당제 연립정부의 수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나.
"선거제도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뀌면 자연스럽게 한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아닌 다양한 정당이 의석을 차지하는 다당제로 가게 된다.

비례대표제라는 게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수를 나눠주는 거다. 지금까지는 정당 득표율과 무관하게 지역구 당선자가 국회의원으로 결정되니까 정당의 득표율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해도 의석 수는 절반 이상을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비례대표제로 바뀌면 특정 한 정당이 국회를 좌지우지하는 게 불가능해지고 소수 진보정당도 많이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지금의 선거제도에서는 한 정당이 득표율 3%를 넘겨도 원내 의석은 1석밖에 못 얻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면 국회의원 정수가 300명이니 이 중 3%인 9명이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 이제까지는 진보정당에서 몇 명 의회에 진출한다고 해도 들어가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이 다 해버리면 끝이니까. 하지만 한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게 되면 소수 정당이라 하더라도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정치구조가 바뀔 수 있다."
  
- 아시아, 북미 지역과 달리 유럽의 경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시스템을 갖춘 나라가 많다고 들었다.
"우리가 보통 잘 산다고 알고 있는 중부유럽과 북유럽이 그렇다. 이런 곳들은 다 비례대표제가 중심이다. 이미 100여 년 전에 이 시스템을 고안했다. 지금 집에 비가 새서 집 자체를 새로 고쳐야 한다. 이왕이면 집을 고칠 때 사람들이 다 잘 지었다고 인정해주는 집을 참고해야지 않겠나."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둘러싼 현 시국을 보면 정말 집을 바꾸지 않으면 더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른 느낌이다. 이번 일 뿐만 아니라 세월호, 4대강, 핵발전소 개발 등 수많은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한국 사회에 난립해 왔다.
"지금도 보면 얘기되어야 할 문제들이 많은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거대한 이슈에 모두 빨려 들어가고 있다. 국민들 삶 속의 문제들,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문제들을 얘기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정치가 잘 된다는 것은 이번 게이트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안 터지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살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가지 논의들이 묻히지 않고 대안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작동하는 것이다. 매번 큰 일 하나 터지면 모든 이슈가 다 그리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은 그 시스템 자체가 문제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집을 완전히 뜯어 고쳐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우리가 이 집을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꾸며볼까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비가 새면 바가지 들고 빗물 떨어지는 것 받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비가 새는 걸 원칙적으로 해결하려면 집 자체를 바꿔야 한다."

하승수 "2012년 동물옷 입고 오마이뉴스 인터뷰"
 하승수 "2012년 동물옷 입고 오마이뉴스 인터뷰"
ⓒ 녹색전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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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의 하승수님 활동 이력을 보면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다방면으로 해온 것 같다. 대학 때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시민운동단체 '참여연대'에서 상근변호사로 일하기도 했고, 지역 풀뿌리 활동을 거쳐 녹색당 창당 멤버로 정당 활동까지 이어왔다. 시민운동계 내에서도 이처럼 조세, 정보공개, 풀뿌리, 환경,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 경우는 흔치 않다고 들었다.
"필요한 곳에서 역할을 맡다 보니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 것 같다. '참여연대'에서 권력 감시 활동을 할 때는 매일 남 잘못된 거 조사하는 게 일이었다. 그런 걸 자꾸 하다 보니 사람이 황폐해지는 면이 있었다. 그러다 과천과 제주도에서 풀뿌리 자치 활동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지역 활동들이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또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할 때는 주민투표 운동을 운명적으로 만났다. 직접 귀농해서 지역의 대안을 만들고자 하는 분들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에겐 다 스승 같은 분들이다. 계속 전국적인 큰 규모의 단체에서만 일했으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걸 이런 지역 활동을 통해 배울 수 있게 된 건 나의 큰 행운이었다."

- 공인회계사 자격증과 변호사 자격증 모두를 갖고 있다는 이력 자체가 중앙에서 이슈 중심의 활동을 할 때 돋보였을 것 같다.
"그렇긴 하지만 그런 일만 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기득권에 대한 감시나 비판은 소위 말하는 전문가나 엘리트가 하기 쉽다. 그러나 대안을 만들고 현실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은 일반 시민들이다. 시민들이 만드는 게 진짜 대안이다. 시민운동이든 정치든 소수의 전문가가 만들고 주도하는 운동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힘들다."

-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른바 전문가, 엘리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만든 정책과 대안에 따라 움직였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일반 시민들이 만들어 낸 대안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의해서 사회가 굴러갔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온 거라고 할 수 있다. 그들과 다르게 일반 시민들이 만든 대안은 일상 속에 다양하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도시에서 에너지 자립마을 모델을 만들고 있는 서울의 성대골이라거나, 농촌지역에서 마을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 홍성군 홍동마을, 전남 영광의 여민동락 공동체같은 사례들이 전국 곳곳에 숱하게 있다. 여러 협동조합이나 대안교육학교들도 많이 있고.

무슨 교수라거나, 어디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거나 그런 분들이 이런 걸 하는 게 아니다. 삶의 문제를 고민하는 분들이 직접 현장에서 활동하며 만들어나가는 게 대안이다. 그나마 이런 삶의 대안들이 있기에 우리가 다른 사회나 세상을 꿈꿀 수 있다." 

- 지금 예로 든 것처럼 새로운 방식으로 살고 있는 다양한 삶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해도 외부로는 잘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다.
"문제는 이런 게 제대로 인정을 못 받는다는 거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대안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도 크게 인정을 못 받고 국가나 지자체의 정책으로 잘 연결이 안 되고 있다. 한 술 더 떠서 사람들이 대안을 만들어서 잘 살고 있으면 소위 전문가나 엘리트가 망쳐놓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은 학벌 좋은 교수, 변호사, 고위관료, 정치인 등 엘리트 전문가 집단이 다 망쳐놓은 사회다. 나도 사실 거기 출신이라 출신 성분이 안 좋다(웃음). 그래서 되도록 내가 중심이 되어 나서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 권력을 가진 자가 스스로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정재계가 한 몸이 되어 자신들의 잇속을 차리고 권력 다툼을 일삼고 있는 지금 시점에 스스로의 출신성분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반갑다.
"나도 이렇게 생각하면서 덕분에 더 편하고 행복해졌다. 내가 뭘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할까. 사회운동을 오래 하다 보니 나라는 개인에 대해서 기대를 많이 하시는 분도 있고,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필요한 순간에 나의 역할을 하긴 할 거다.

그러나 내가 중심에 서서 하는 것보다 중심에서 자기 목소리를 높여야 할 분들이 많이 있다. 현장에서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분들이나, 그동안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했던 소외된 분들, 이런 다양한 주체가 자기 목소리를 갖고 대안을 말할 수 있는 활동을 시민단체나 진보정당이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의 시민단체와 정당들에게 쓴 소리를 많이 하고 있다. 엘리트주의로 가지 말라고."

- 앞으로는 어떤 행보를 이어갈 예정인가.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 한다. 지금은 선거제도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금은 어떤 한 조직으로 모든 걸 모으는 건 불가능한 다극시대가 되었기에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조직하고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운동방식이 필요하다. '여기 한곳으로 다 모여'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하기'가 되는 거다.

예를 들어 요즘 청년들을 만나면 '청년들이 중심이 돼서 하세요'라고 말한다. 청년들이 사회의 주체로서 자신들의 의견을 담아 제도로 바꾸고 정치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시스템을 바꾸면 청년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건 훨씬 쉬워지게 된다.

모두가 자기 일로 운동의 주체가 되는 방식으로 정치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변화의 물꼬를 텄으면 좋겠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동시에 하면 힘이 커진다. 새로운 방식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또 이런 방식의 동시다발적인 운동이 성공했던 사례들도 많았다."

- 이번 기회에 정치시스템이 바뀌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부침이 예상된다.
"그렇기에 지금이 더 기회라고 보는 거다. 기회가 자주 오진 않는다. 한국에서 녹색당 창당할 때도 당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비록 안 좋은 사건이긴 했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핵발전소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고 이와 더불어 새로운 대안 정치에 대한 바람이 녹색당 창당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한국은 시민들의 참여의식도 높은 편이다. 다만 지금까지 시민 참여가 막히고, 왜곡되고, 무력감으로 학습된 경험이 많아서 스스로를 믿지 못할 뿐이지. 요즘 주말마다 백만 명 넘게 촛불을 든 시민들이 나오지 모습을 보면 놀랄 때가 많다. 이렇게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 의식의 밑바탕에는 희망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 촛불 집회가 자주 열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피로를 호소하기도 한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고 계속해서 권력에 대항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얼마 전 희망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서 들은 말이다. 희망의 반대말은 절망이 아니라 무기력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해도 안 된다는 걸 자꾸 주입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무기력하게 살기 보다는 자꾸 움직이며 계속 살아가야 또 오늘을 살 수 있다. 무기력에 빠져 있으면 바뀌는 게 아무것도 없다. 쉽게 뭐가 될 거라는 낙관주의로 희망을 가지자는 게 아니다. 무기력하게 살지 않기 위해서 뭔가를 하고, 계속 움직이고, 그러다 보면 분명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다. 그런 게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 사회가 그런 희망을 안고 더 나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럼 앞으로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크게 논의되지 못했지만 점차 중요하게 다뤄야 할 안건을 하나 짚어 본다면 어떤 게 있겠나.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 '알파고'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인공지능에 대거 몰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알파고'의 영향보다 기후변화가 삶에 훨씬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거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은 인공지능보다 기후변화가 더 좌우한다.

근데 아무리 기후변화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해봐야 기후변화와 관련돼서 좋은 정책들이 절대 채택되지 않을 거다. 이래서 결국은 시스템 문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한국만큼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이 없는 나라도 없다. 당장 살기 급급하니까 이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는 거다. 이해도 된다. 하루하루 살기 힘든 사람들이 많으니까. 빨리 이런 불안정한 생활에서 벗어나 기후변화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시민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와야 한다."

- 기후변화처럼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 점차 많아지는 것 같다. 이런 불확실성의 위험한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녹색전환'처럼 새로운 시도들이 더 많이 등장하길 바란다. 그럼 끝으로 하승수님이 생각하는 녹색전환이란 무엇인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이 다 바뀌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하나만 바뀌는 게 아니라 사회가 주도하는 가치나 방향이 바뀌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바뀌는 게 녹색전환이다.

한 마디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공존', '공생'이다. 인류와 지구의 생명체들이 그동안 이런 방식으로 살아왔던 건데 그 균형이 현대 사회에서 깨져버렸다. 그걸 회복하고 서로 공존하고 공생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사회의 방향, 국가의 방향도 바뀌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다. 인류가 이뤄낸 성과들이 분명 있다. 경제적, 기술적 성과나 민주주의라고 하는 정치제도적 성과. 그런 것들을 잘 공유하면서 자원을 나누면 충분히 공존 공생하면서 살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박이상 (녹색전환연구소 편집위원)



태그:#하승수, #녹색전환연구소, #녹색당, #비례민주주의연대, #선거제도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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