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가결됐다. 최종 결론은 알 수 없지만 일부 사람들은 박근혜를 대통령 권한을 정지시켰다는 그 사실에 안도하는 듯하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박근혜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대한민국은 역사로 치면 멸망 직전의 말기 국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현 대한민국을 잘 살펴보면 중국 역사상 가장 부패하고 허약했다는 송나라(북송) 말기와 유사해 보인다.

필자가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최근 <수호전>과 수호전을 가장 잘 해설한 책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구주모 저, 도서출판 피플파워)를 읽으면서다.

실세 한 명이 설치면 수백명이 날뛴다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 표지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 표지
ⓒ 도서출판 피플파워

관련사진보기

<수호전>도 한 명의 비선실세 탄생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작 공 잘 차는 한량이던 고구가 황족의 눈에 띄어 측근이 되고, 그 황족이 송 휘종 황제가 되자 높은 벼슬을 받는다.

당시 송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4명의 부패한 재상이 있었으니 채경, 고구, 동관, 양전이라고 한다. 이 4명이 부리는 횡포는 한계가 있었지만 4명의 가족, 친척들, 측근 무리의 횡포는 온 나라를 휩쓸게 된다. 더 나아가 4명의 친인척·측근들의 권세를 믿고 설치는 이들까지 합치면 수백~수천 명이 사익을 챙기기 위해 날뛰게 된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인맥도를 보면서 어찌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역사에서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최순실과 그의 가족, 최순실의 인척 그리고 그 인척에 맞닿아 있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지금 언론에서 밝혀낸 것보다 더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공적 시스템의 태도다. 실세 한 사람이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이야 지위가 뻔하다. 송나라 공적 시스템 역시 그들이 날뛰는 것을 방조하거나 협력했다. 오죽하면 중국 문학비평가 김성탄이 <수호전>을 보며 "아! 강도들도 놀고 먹지 않는데, 어찌하여 오늘날 관직에 있으면서 녹봉을 먹는 자들은 하나같이 하는 일 없이 어찌 그리 태연할 수 있냐?"고 탄식했을까.

대한민국도 다르지 않다. 모든 기관마다 자체적으로 감사 부서가 따로 있었고 감사원과 검찰 뿐 아니라 부정을 막기 위한 매뉴얼, 규범 등이 있었지만 외면했다.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어릴 때 만화책으로 읽었던 수호전은 단순했다. 108두령들은 저마다 억울한 사연을 안고 양산박에 들어간다. 그리고 신나게 싸우면서 나쁜 놈들을 죽인다. 그거면 족했다. 사실 왜 그들이 억울하게 됐는지 '원인'에 대해서는 자세히 읽지 않았다. 또 어린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건성건성 보고 넘어갔다.

20년 만에 수호전 관련 책을 읽으려니 손이 민망했다. 어차피 다 아는 이야기인데 또 읽어본 들 무슨 새로운 것이 있겠냐 싶었다. 그래도 책 제목 '혼돈의 시대'라는 단어가 걸렸다. 혹시 내가 놓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책은 총 17개의 테마로 수호전 주변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라 정리할 수 있겠다. 참고도서 35권, 참조논문 27편에 이를 정도로 어지간한 학술서적 못지 않다. 물론 수호전을 학문적으로 어렵게 풀어 놓은 책은 결코 아니다. 수호전이 던지는 메시지, 수호전에서 읽는 우리 시대의 모습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첨부한 것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 중에 제3장 '돈 앞에 장사 없다' 은자무적론(銀子無敵論)이 기억에 남는다.

수호전에는 금품 수수가 200건 등장한다고 한다. 형사사건 청탁 뇌물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지위나 특혜를 얻기 위해 하는 선심성 뇌물이라고 한다. 수호전에 등장하는 가장 큰 뇌물은 양세걸이라는 자가 장인이자 태사(재상)인 채경에게 10만 관의 생일선물 겸 뇌물을 주는 것이다. 그럼 그 가치는 얼마나 됐을까?

무송이 무대가 갑자기 죽은 것을 의심해 조사를 벌일 때 일을 도와달라며 과일장수인 운가에게 은자 닷 냥을 준다. 운가는 이를 두고 '아버지와 몇 달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고 한다. 가난한 하층민이라지만 두 식구가 몇 달을 살 수 있다면 이는 작은 돈이 아니다. - 본문 68쪽

책 내용에 따라 은자 한 냥(1관)이 100만 원이라고 치면 은자 10만 관은 1000억에 달하는 엄청난 뇌물이다. 또한 양세걸이 보낸 게 은자가 아니라 금이라면 그 값어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 사람이 재상에게 보내는 뇌물이 이 정도다. 얼마나 송나라 말기가 부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외에도 3장에서는 수호전과 중국 고서에서 언급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례가 끝없이 나열된다.

당나라 재상 장연이란 사람이 중대한 사건을 심리하게 됐다. 다음날 아침 책상 위에 종이쪽지가 놓여 있었는데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돈 삼만 꾸러미를 보내오니 이 사건을 묻지 말아 주십시오."
장연이 매우 노해 쪽지를 집어 던졌다.
다음날에는 "십만 꾸러미요."
그러자 장연은 마침내 사건을 묻지 않았다. 문하인들이 연유를 물었다. 장연은 "돈 십만 꾸러미면 귀신과도 통할 수 있으니 되돌리지 못할 일이 없다. 나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 사건을 취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답했다. - 본문 75쪽.

아마 봉건시대 백성을 타임머신으로 2016년 대한민국에 데려 온다면 잠시 물질문명에 놀라겠지만 이윽고 '여기도 내 살던 곳과 비슷하구나' 여길 것이다. 하지만 어디 송나라 뿐이랴. 지난 13일 진경준 전 검사장이 넥슨 김정주 대표로부터 받은 126억 원 어치 공짜주식이 '뇌물이 아니다'라는 판결이 났다. 대기업 대표가 검찰 검사장에게 준 126억 원이 '선의로 준 순수한 선물'이 되는 대한민국에서 송나라 말기를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싶다.

이렇듯 수호전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당시 시대가 보이고, 그 시대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면 자연히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 - 500년 고전(古典)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

구주모 지음, 피플파워(2016)


태그:#혼돈의시대수호전을다시읽다, #수호전, #구주모, #피플파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