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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끝난 역대 최장기간(74일)의 철도파업은 교통의 공공(公共)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철도에만 공공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도로에서도 이 같은 공공성을 찾을 수 있으며,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버스전용차로다.

버스전용차로는 도로의 한 차선을 정하여 버스만 운행하게 하는 것이다. 도심지에서는 가로변 버스전용차로나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운영 중인데, 간선도로에서도 이 같은 전용차로를 볼 수 있다. 1994년부터 시행 중인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가 그것이다.

맨 왼쪽이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이다
 맨 왼쪽이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이다
ⓒ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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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는 평일 7~21시에 한남대교 남단에서 오산IC까지, 주말에는 신탄진IC까지 운영 중이다. 아울러 도심 버스전용차로와 달리, 9~12인승 차량도 6인 이상 탑승하면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버스전용차로는 버스가 아닌 쪽, 즉 승용차나 화물차 운전자에게는 매우 차별적인 정책으로 느껴질 수 있다.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도로를 가지고 왜 누군가에게 특혜를 주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고속도로는 유료도로인데 버스전용차로 때문에 자가용의 속도가 낮아진다면 금전적인 불만까지 발생한다.

양재IC
 양재IC
ⓒ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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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단견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로 심한 몸살을 앓은 경험이 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토지공개념(土地公槪念)이다. 토지는 기본적으로 공공재(公共財)이기 때문에 개인의 절대적인 권리를 인정해줄 수는 없으며,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는 범위 내에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도로에서도 이것이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도로는 무한정의 자원이 아니라, 공급이 제한된 공공재이므로 국가적으로 볼 때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면적 대비 수송량에서 더 높은 효율을 가진 버스에게 우선순위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토지공개념에 빗대어 '도로공개념'(道路公槪念)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편 현재 버스전용차로제를 둘러싼 환경은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세종시가 출범하고, 경부고속도로 주변의 수많은 신도시와 택지지구가 개발되면서 지역간 교통량이 계속 늘고 있다. 또한 용인서울고속도로, 평택화성고속도로, 제2경부고속도로(예정) 등 새로운 대체 도로들이 생겨나고 있기도 하다.

토론회 안내문
 토론회 안내문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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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제가 시행된 지 22년을 맞이하여, 제도의 새로운 발전과 변화를 모색하는 토론회가 지난 12일 14시 서울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대한교통학회와 대중교통포럼 주최로 열렸다. 행사를 주최한 대한교통학회의 김영찬 회장과 국토교통부의 교통 담당 최정호 2차관의 인사에 이어서, 김황배 남서울대 교수의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 확대시행방안' 발표가 있었다.

발표의 핵심은 현재 시행중인 경부고속도로 평일 버스전용차로를 오산나들목에서 천안나들목까지 연장하고, 영동고속도로에는 신갈분기점에서 여주분기점까지 주말에 새로 버스전용차로를 시행하자는 것이다.

현재 영동과 경부고속도로는 버스교통량이 15~20%수준으로 비중이 높으며, 통행속도의 편차가 시간대별로 크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에 버스전용차로를 신설, 확대하면 버스의 지체가 줄어들고 정시성이 개선되어 교통 서비스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대체도로나 철도로 수요를 분산시켜 교통망이 효율화되고, 특히 영동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는 향후 평창 동계올림픽을 대비한 포석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도로 전체로 보면 공간효율성이 좋은 버스로 승객이 이동하면서 총 수송인원이 늘고, 에너지 효율성이 좋은 버스가 활성화되면서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드는 등 국가교통체계가 효율화되었다고 한다. 도로를 추가로 지은 것도 아닌데 제도 개선만으로 이룬 성과라 가치가 크다.

토론회 행사장 모습
 토론회 행사장 모습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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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발제가 끝난 후 토론자들도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기본적으로 버스전용차로의 필요성과 대중교통활성화의 당위성에는 모두 이의가 없었다. 다만 버스로는 최종목적지까지 가기 어려워 여전히 자가용 수요가 높을 수 있으므로, 고속버스의 연계교통 체계 정비를 주문(서울대 강승필 교수)했다.

또, 영동고속도로는 주말에 레저 교통수요가 많은 곳인데 버스로 수요전환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의문(중앙일보 강갑생 부장)도 있었으며, 현행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는 터널과 교량이 없는 특수한 구간이며 유료도로에서 장거리 전용차로제를 시행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 타 구간의 확대시행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조언(한국도로공사 백승걸 박사)도 있었다. 전기자동차, 택시 등 버스전용차로 진입을 희망하는 대기수요들이 많아서 버스전용차로제 확대시행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는 의견(경찰청 최대근 계장)도 나왔다.

한편 이번 토론회에 대해서는 운수회사들도 높은 관심을 가졌다. 토론자들 발언 후 방청객들 의견 시간에는, 현재 버스전용차로를 직접 이용하고 있는 고속버스 회사들의 승무사원(운전기사)들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영동고속도로가 너무나 심하게 막혀 경부고속도로로 우회하다 보니 운수회사와 승객 모두 손해를 본다는 것, 버스전용차로에 다인승차량까지 운행되다 보니 주말에는 버스전용차로가 오히려 더 늦어진다는 것 등 현장감 있는 의견들이 토론회를 풍성하게 해주었다.

전국 고속도로 노선도
 전국 고속도로 노선도
ⓒ 한국도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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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의 특이한 성질은 외부의 자극에 따라 항상 변화한다는 것이다. 도로가 1차선인데 자동차가 2배로 늘어났다고 혼잡이 2배가 되지 않는다. 혼잡이 늘어나면 사람들은 새로운 경로를 찾아 나서면서 혼잡이 분산되고, 아예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기도 한다.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도 마찬가지다. 한 차선을 떼어 버스에게 주었다고 나머지 일반차로가 딱 그만큼 더 막히는 게 아니다. 길이 막히면 승용차는 근처에 있는 대체도로로 분산된다. 또한 운전자가 자가용 대신 버스를 이용하면서 그만큼 자가용 대수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버스도 빨라지고 자가용도 빨라지는 상생이 발생한다. 오히려 평등함을 주장하며 버스전용차로제 시행에 소극적이면, 버스가 느려지고 사람들이 버스를 안타면서 자가용이 늘어나 자가용 속도까지 느려지는 공멸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제는 제한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좋은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도로는 화수분이 아니며 땅이 좁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든 도로를 효율적으로 아껴서 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동일 면적으로 승용차의 30배 인원을 수송할 수 있는 버스를 우대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이번 토론회는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의 가치를 재확인하면서, 변화하는 국토환경에 맞게 버스전용차로를 확대할 필요성을 검토하는 자리가 되었다. 아울러 향후 버스전용차로 확대 시행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의 공감대 형성과 사회적 합의라는 것도 함께 느끼는 기회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 한우진은 공공교통분야 자유기고 활동을 하는 교통평론가입니다.



태그:#버스전용차로, #국토교통부, #고속도로, #교통, #대한교통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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