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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기찻길 대결을 펼쳤던 벌교 철다리입니다.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기찻길 대결을 펼쳤던 벌교 철다리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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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 벌교를 이끄는 쌍두마차가 있습니다. 하나는 '꼬막'이요, 다른 하나는 '소설 태백산맥'입니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소설을 넘어 태백산맥 문학관, 문학기행길까지 낳아 벌교 관광산업 발전에 큰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소설 태백산맥은 여순사건과 6․26 한국전쟁을 무대로 벌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하소설입니다. 염상진, 하대치, 소화, 김범우, 염상구, 서민영 등 소설 속 등장인물들 이름을 되뇌기만 해도 찌릿합니다. 그 탓일까. "지방 소도시 벌교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소설 태백산맥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예술의 힘을 알 수 있습니다.

# 1. 워매 징헌 거. 이리 봐도 '꼬막', 저리 봐도 '꼬막'

벌교의 자랑 꼬막입니다. 요 꼬막이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답니다.
 벌교의 자랑 꼬막입니다. 요 꼬막이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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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이 벌교를 먹여 살려."

벌교 토박이들이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한편으론 벌교가 우리나라 꼬막을 먹여 살린다는, 역설이 통할 것도 같습니다. 하여간 벌교 읍내를 다녀 보면 벌교에 처음인 나그네도 꼬막이 벌교를 먹여 살리는 걸 금방 눈치 챌 정돕니다. 꼬박은 음식점 간판 뿐 아니라 수산시장 좌판 등에도 쫙 깔렸으니까. 워매 징헌 거. 이리 봐도 꼬막, 저리 봐도 꼬막입니다. 그러니 벌교에선 꼬막을 먹어줘야 예의입니다.

"어디로 갈까?"

사람 세워두고 고민입니다. 몇 군데 딱 꼬집어 말하면서도 비슷비슷하다며 망설입니다. 그건 바로 고만고만하고, 거기서 거기란 의미. 음식은 전라도라 하니 아무데나 들러도 무방하지요. 실제로 벌교에는 TV나 인터넷 등에 소개된 음식점이 널리고 널렸습니다. 하여, 허름한 집이든, 깔끔하게 단장한 식당이든, 알아서 인연 따라 발길 닿는 대로 가시길.

꼬막은 잔칫상에 늘 빠지지 않는 약방의 감초 격입니다. 차례와 제사상에 어김없이 오릅니다. 옛날에 꼬막은 양념하지 않은 채 끓는 물에 데쳐 까먹었지요. 이 꼬막은 막걸리 안주로 안성맞춤이었지요. 이랬던 꼬막이 오늘날 '꼬막정식'이란 명칭으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통꼬막에서부터 꼬막전, 꼬막 회무침, 꼬막탕, 앙념꼬막, 꼬막 탕수육 등까지 꼬막의 변신은 무죄랍니다.

'꼬막', 임금님 수랏상에 오른 8진미 중 하나

벌교의 꼬막 한상 차림입니다. 생선회에 매운탕까지...
 벌교의 꼬막 한상 차림입니다. 생선회에 매운탕까지...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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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에선 요 태백산맥 막걸리도 뺄 수 없지요.
 벌교에선 요 태백산맥 막걸리도 뺄 수 없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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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양념 꼬막입니다. 아이들이 특히 잘 먹습니다.
 벌교 양념 꼬막입니다. 아이들이 특히 잘 먹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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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 보니 아내 생각이 절로 납니다. 아내가 잘하는 요리 중 하나가 양념 꼬막입니다. 삶은 꼬막을 까 그 위에 양념을 끼얹으면 꼬막은 즉석에서 꽃이 되지요. 그러면 아이들은 눈으로 먹는 맛뿐 아니라, 입으로 먹는 맛까지 '천하제일미'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듭니다. 요 땐 밥상 앞에서 웃음꽃이 피지요.

참꼬막은 벌교 앞 바다에서 서식하는 자연산입니다. 어민들에 따르면 "피꼬막과 새꼬막은 물속에서 자랍니다만, 참꼬막은 하루 한 번 햇볕을 봐야 하고, 껍질이 두껍고 뭍으로 나와도 보름 정도는 살 수 있다"나. 게다가 꼬막은 임금님 수랏상에 오르는 8진미 중 하나랍니다. 꼬막은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이 골고루 함유되어 강장 효과가 높아 숙취 후 간 해독에 좋다"니 남자들에게 특효약(?)인 듯합니다.

꼬막 정식이 나왔습니다. 반찬이 무려 23가지입니다. 삶은 꼬막, 꼬막 전, 꼬막 회 무침, 생선회, 양념 게장, 홍어, 양태, 돼지고기, 메추리알, 멸치볶음, 콩나물, 시금치, 고사리, 배추김치, 묵, 콩자반, 버섯, 감자조림, 가시리, 도라지, 굴, 된장국에 매운탕까지 넘치고 넘칩니다. 보고만 있어도 배부릅니다. 그렇다고 가만있을 순 없지요. 먹느라 땀 흘리고 나니 속이 든든합니다.

# 2.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 8km와 역사 속 교훈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을 알리는 이정표입니다. 이 길은 8km, 2시간 30분 여가 소요된다 합니다.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을 알리는 이정표입니다. 이 길은 8km, 2시간 30분 여가 소요된다 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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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는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반면교사지요.
 벌교는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반면교사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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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보성여관에 가서 차 한 잔 하세."

점심 후, 뒤돌아서던 중 들리는 지허 스님 목소리. 낮고 작은 소리임에도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소설 태백산맥에 남도여관으로 묘사된 보성여관에 가보는 것도 옛 추억을 곱씹을 기회다 싶었습니다. 꼬막거리와 식당가를 지나 근대문화거리에 섰습니다. 벌교초등학교, 동아책방, 삼화목공소, 벌교국밥과 보성여관까지…. 이곳에 서니, 소설의 감흥이 다시금 솟아나는 듯합니다.

십여 년 전, 어린 아이들과 함께 태백산맥 문학관, 소화네 집, 김범우 집, 홍교, 남도여관 등을 보러 다니면서 어찌나 흥분했던지. 그 때만 해도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이 없었는데, 반갑습니다. 벌교읍에 조성된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은 "소설 속 장소를 따라 8km에 걸쳐 조성된 길로,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진트재까지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태백산맥 문학관'. 내부는 3층 구조로 1, 2 전시실 등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이곳에는 조정래 작가의 자료조사, 집필 원고, 취재 메모, 취재 수첩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방대한 육필 원고였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원고지에 글을 쓸 수 있을까?' 놀라웠습니다. 조정래 작가의 친필 원고를 보는 것 자체로 영광이었지요. 지금도 여전히 열정을 불태우는 중이라니 감탄에 감탄입니다.

제게 태백산맥의 영웅은 단연코 '김범우'였습니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주는 배포(?)에 마음을 빼앗겼지요. 태백산맥에 나오는 김범우의 행동을 보면 '위민 정신' 혹은 '상생의 도'를 추구하는 멋스러움을 느끼실 겁니다. 이는 현시대 갑부들이 본받아 마땅할 귀감입니다.

"과분한 땅이라고? 이 사람아, 요 정도가 내가 지닌 땅 중에서 젤로 나쁜 것이네. 눈 볽은 우리 선대의 유산이 어련허겄는가. 맘 쓰지 말고 밭 일구도록 허게. 허허허허…"(태백산맥 1권 141쪽)

태백산맥 속 토벌대장 등의 숙소로 사용된 '보성여관'

소설 태백산맥에서 남도여관으로 나왔던 보성여관입니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남도여관으로 나왔던 보성여관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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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벌교 보성여관에 자릴 잡고 앉았습니다. 앉아 있는 폼이 독립투사 같습니다.
 일행 벌교 보성여관에 자릴 잡고 앉았습니다. 앉아 있는 폼이 독립투사 같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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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여관. 겉에서 보기에 판자벽에 함석지붕으로 된 일본식 2층 건물 그대롭니다. 일본 강점기 때 전국적으로 일본식 건물이 많았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 일본식 건물을 헐어낸 영향으로 일본식 건물은 구경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벌교에는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고통과 수난의 역사는 곱씹어야 맛입니다. 왜냐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반면교사 삼는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보성여관은 "2004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2012년 중건 개관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벌교와 보성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실, 카페, 숙박업소 등으로 운영되는 중입니다. 보성여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한쪽에서 관객 앞에서 우리 가곡을 부르고 있습니다. 노래 가락이 운치를 자아냅니다. 스님, 혼자 카페에 앉아 있습니다. 모자며, 승복 색깔이 내부 인테리어와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왜 혼자 계세요?"
"보성여관 둘러보러 갔네."

전시실, 일본식 다다미방 등을 둘러본 후 찻방에 들어섭니다. 이미 스님들은 지허 스님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눠 앉아 있었습니다. 승복이 묘한 여운을 줍니다. 앉아 있는 폼이 마치 독립투사들의 비밀 결사 조직 같습니다. 얼굴에 어린 잔잔한 미소만 아니라면 예사 사람들이 아닌 듯합니다. 이 보성여관은 태백산맥 속에는 토벌대장 등의 숙소로 사용된 곳입니다.

주문한 차와 입가심거리가 나옵니다. 과자 및 감입니다. 주인장, 수줍은 듯 "이거 제가 개발한 거예요. 한 번 드셔보세요!" 합니다. 그러면서 "익기 전에 떫은 대봉을 얇게 잘라 설탕을 바르고, 전자레인지에 쪘다"는 설명입니다. "대봉 좋아해 익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을 위한 요리"라는데 급 호기심이 갑니다. 식후경 후, 지허 스님과 짧은 일문일답에 나섰습니다.

투표서 맹물처럼 찍지 말고, 맑은 의사 표시해야

지허 스님입니다.
 지허 스님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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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앞길을 바라보고 똑바로 살아야 한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삼독번뇌가 따르기 마련이다. 밝은 길인가, 어두운 길인가? 따져봐야 한다. 자기가 가는 발길을 항상 밝게 비추는 게 중요하다. 왜냐면 밝은 길에는 지혜가 동반되고, 무한한 즐거움이 오기 때문이다."

- 시국이 어지럽습니다. 어떻게 봐야 합니까?
"인과응보는 원인에 따른 결과다. 행과 불행 간에도 인과를 따지고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현실만 보고 살면 당황한다. 세상이 어지러운 건, 우리가 다 지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나는 어떻게 하겠다' 약속하곤 그렇게 안하니까 결과가 이렇게 된 거다. 또 우리 국민이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 국민이 자각해야 한다는 말씀이신지.
"차도 탁한 차가 있고, 맑은 차가 있다. 탁한 차를 마시면 탁한 생각이 나고, 맑은 차를 마시면 맑은 생각이 온다. 맑다는 건 싱거운 것과 다르다. 맑은 건 깊고 은은하다. 싱거운 건 맹물 같은 거고, 아무 맛이 없다. 어지러운 세상을 만든 국민이 함께 자각해야 한다. 투표에서 한 표라도 맹물처럼 찍지 말고, 맑은 차처럼 맑은 생각을 하며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

지허 스님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무슨 생각하고 계실까? 분위기가...
 지허 스님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무슨 생각하고 계실까? 분위기가...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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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함께 주전부리가 나왔습니다. 대봉을 얇게 잘라 낸 입가심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차와 함께 주전부리가 나왔습니다. 대봉을 얇게 잘라 낸 입가심이 매력적이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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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태백산맥 문학기행길, #벌교, #꼬막, #지허스님, #보성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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