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혼자> 포스터

영화 <혼자> 포스터 ⓒ 인디스토리


그간 제한된 공간 내에서 긴장감을 주는 장르물이 여럿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 중 <폰부스> <쏘우> 시리즈 등이 그에 해당하고, 한국영화 중엔 방송국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한 <더 테러 라이브> 등이 있다. 이런 설정은 제작비를 최소화하면서도 관객에게 극적 긴장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전략이기도 하다.

박홍민 감독의 영화 <혼자>는 상업영화의 전략을 저예산 독립영화로 끌고 와 그 지평을 넓힌 사례다. 90분의 러닝타임을 단 37번의 컷으로 채웠다. 그만큼 롱테이크를 택했다는 소리다. 신당동 재개발 구역을 사는 한 청년 수민(이주원 분)이 우연히 살인사건을 목격한 뒤 그 범인들에게 희생당한 이후를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을 묘사했다.

치열하게 짜놓은 공간들

 영화 <혼자>의 한 장면

영화 <혼자>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목격자가 피해자가 된 셈인데 눈치 빠른 관객들은 초반부터 예상할 수 있다. 일반적인 스릴러와 다른 구조다. 등장인물이 동네 곳곳에서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황을 겪는다. 반복되는 인물의 등장과 그를 가해하거나 때론 피해를 입기도 하는 수민을 따라가다 보면 몇 개의 상징들을 만나게 된다. 머리에서 흐르는 피, 카메라, 끝을 알 수 없는 골목길 등.

복면을 쓴 사내에게 폭행당하던 수민이 때론 여성에게 위압적인 모습이 되기도 하고, 골목에서 마주친 낯선 사내를 죽이기도 한다. 이 모든 사건이 신당동 달동네에서 벌어진다. 독립적으로 보이는 사건이 같은 공간에서 연속해서 터지거나 때론 같은 인물이 전혀 다른 인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영화는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오고 가며 구도 또한 부감과 앙감이 교차한다.

이 모든 게 복잡하고 폭력적인 수민의 내면과 의식의 흐름이다. 감독은 실제 본인의 작업실이 있는 동네, 그러니까 지리 정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곳을 배경으로 삼았다. 정서적으로 지배하면서 본인이 구상한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친 셈이다.

달동네의 골목은 신비하다.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길이 서로 연결돼 있기도 하고, 뚫린 것처럼 보인 길이 막다른 곳이 되기도 한다. 지름길과 돌아가는 길이 마치 뇌의 모양처럼 붙어있는 모습을 화면을 통해 제시하며 영화는 관객들을 주인공의 신경증적 정서에 동기화 시킨다.

영리한 배우의 운용

 영화 <혼자>의 언론 시사가 지난 14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배우 송유현, 이주원, 박흥민 감독

영화 <혼자>의 언론 시사가 지난 14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배우 송유현, 이주원, 박홍민 감독 ⓒ 인디스토리


관건은 기이한 사건들과 설정이 시나브로 관객의 마음을 설득할 수 있는지 여부다. 성패는 어느 정도 판가름 났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혼자>는 시민평론가상을 받았고, 주연을 맡은 이주원 배우는 올해의 배우상 주인공이 됐다. 이밖에도 벤쿠버국제영화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등 해외 여러 영화제에서 관객들을 만났고 호평 받았다.

롱테이크를 위해 감독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동선을 최소화 한 결과물이지만 <혼자>의 묘미는 출연 배우의 헌신에 있다. 이주원과 사건의 피해여성 역할을 맡은 송유현 모두 연극 무대에 익숙한 배우다. 그렇기에 오히려 컷을 자주 나누는 영화 촬영 보다 호흡이 긴 이 작품과 궁합이 좋을 수 있었다. 14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린 언론 시사 이후 간담회에서도 두 배우는 "롱테이크 자체가 낯설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박 감독은 부족한 예산을 더 아끼기 위해 배우들과 그만큼 치열하게 소통해야 했다. 시나리오 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물의 감정을 배우에게 설명하기 위해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전했다는 후문이다. 박홍민 감독은 "편찮은 어머니와 무서운 아버지의 모습에서 외로움을 느꼈고, 그런 모습이 싫었는데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 있는 날 보며 왜 그럴까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하기도 했다.

<혼자>는 장르영화 공식을 따르는 작품은 아니다. 그걸 기대한다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다. 소설이나 무대예술에서나 익숙한 의식의 흐름을 영상으로 표현하려는 작품라는 걸 염두하며 감상하자. 감독의 패기가 좋고, 아이디어 또한 훌륭했다. "다음 영화를 과연 찍을 수 있을까 매번 고민한다"고 말한 감독의 말에서 문득 씁쓸함이 느껴졌다. 훌륭한 영화인 한 명을 발견함과 동시에 여전히 그 기반이 부실한 국내영화산업의 단면을 봐서일까.

한 줄 평: 매너리즘에 빠진 국내 영화계에 분 한줄기의 시원한 바람
평 점: ★★★☆(3.5/5)

영화 <혼자> 관련 정보

감독 : 박홍민
출연 : 이주원, 송유현, 이성욱, 윤영민, 김동현
제작 : 농부영화사
배급 및 마케팅 : 인디스토리
러닝타임 : 90분
관람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개봉 : 2016년 11월 24일



혼자 신당동 달동네 박홍민 부산영화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