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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북측광장에 앉아 촛불집회 참가 중인 시민들
 광화문 북측광장에 앉아 촛불집회 참가 중인 시민들
ⓒ 박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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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에서 진행된 민중총궐기는 '민중총축제'였다. 참가 인원 '100만 명'이라는 숫자가 무색할 만큼 촛불집회 현장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물대포, 죽창, 쇠파이프가 등장하는 시위는 옛말이다. 물론 거친 행동을 보이는 극소수 시민도 있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들에게 '자제'를 촉구하면서 질서있는 집회를 시민들 스스로 만들어냈다.

민심을 대변한 광화문광장의 '촛불'

궁금했다. '왜?' 나이, 지역, 직업, 성별 등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시민 100만 명이 한 곳에 모여 큰소리로 함께 구호를 외쳤을까. 국민들은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3차 촛불집회에 참가했을까. 시민들 눈에는 이번 집회가 어떻게 비쳤을까. 직접 서울역에서 남대문, 명동, 시청, 종로, 광화문, 경복궁역으로 이동하면서 여러 시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부인과 함께 두 딸을 데리고 행진 중인 황인방 씨 가족
 부인과 함께 두 딸을 데리고 행진 중인 황인방 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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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 별내동에서 온 황인방(41)씨는 부인과 두 딸을 데리고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 회현사거리에서 행진하다가 만난 황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기 위해 참석했다"고 말했다. "어린 딸을 데리고 집회에 참석하는 게 망설여지지 않았나?"라고 묻자, "조금은 걱정했다. 하지만 '지난주 집회가 평화로웠다'라는 얘기를 들어, 오늘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 참석했다"라고 밝혔다. 황씨와 같은 가족 단위 참가자들을 취재 내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한국은행 앞 사거리에서 만난 한 외국인 관광객은 흥이 난 표정으로 행진 인파에 합류했다. 그가 "시위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 "국민들이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대통령이 도대체 어떤 잘못을 했는가?"라고 질문하며 놀라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집회에 참가한 수녀
 집회에 참가한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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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 인근에서는 집회에 참가한 수녀들을 만났다. 그들은 "국가 지도자들이 도덕성을 회복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제대로 봉사해야 한다는 뜻을 시민들과 함께 외치고 싶었다"라고 참석 이유를 밝혔다. 또한 "종교인으로서 집회에 참가하는데 망설임은 없었나?"라고 묻자, "오히려 종교인들이 세상 일들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므로,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우리 종교인들이 더 많이 참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영암농민회 회원들은 오전 7시에 출발해서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
 영암농민회 회원들은 오전 7시에 출발해서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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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농민회 회원들은 오전 7시에 출발해서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 이야기를 나눈 강대삼(60)씨는 전남 영암군 시종면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과 쌀값 보장을 요구하기 위해 이번 집회에 참가했다"라고 말했다.

지난주 집회에도 참석했던 강씨는 "오늘 민중총궐기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길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버텨 봐야 더 추한 꼴만 보일 뿐인다. 지금 바로 대통령 직에서 내려오는 게 현명하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출마 당시 '쌀값 21만 원' 보장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작년 쌀값은 20년 전 쌀값과 같았고, 올해 쌀값은 30년 전 쌀값인 '12만 원'으로 대폭락했다. 말도 안되는 상황이다. 농민들 죽으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라고 말하며 대한민국 농민들이 놓인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집회에 참가한 고등학생
 집회에 참가한 고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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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참가 인원 중에는 중고등학생이 눈에 띄게 많았다. 삼성본관 앞 도로에서 교복을 입고 시위에 동참한 이종훈(18)씨 외에 3명의 학생들을 만났다. 이들은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오전 일찍 용인에서 서울로 왔다. 대통령이 자기 직분에 맞지 않는 일을 저지르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이번 집회에 동참했다"고 참가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지금 상황이 바뀌도록 고등학생들도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며, "학교 내에서 선생님들은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이번 사건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교내에서도 현재 상황을 희화화한 포스터를 붙이는 등의 활동이 있다"고 밝혔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연인
 촛불집회에 참가한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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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현장에서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도 많았다. 심인규(26)씨와 최지원(26)씨는 "인터넷에서 민중총궐기 내용을 보고 집회 현장에 들렀다. 역사적 순간에 동참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첫 집회 참가인데 모두 즐기는 축제 같은 시위 현장이 놀라웠고, 얼굴 찌푸린 사람이 거의 없는 밝은 분위기가 좋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솔직하게 한 치의 거짓없이 사건의 내막을 밝혀주면 좋겠다. 국민들은 모두 알고 있으니 빨리 내려오라"고 목소리를 냈다.

태극기를 들고 촛불집회에 참석한 강태훈 씨
 태극기를 들고 촛불집회에 참석한 강태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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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인근에 사는 강태훈(31)씨는 왼손에는 태극기, 오른손에는 촛불, 가슴에는 반려견을 안고 집회에 참석했다. 커다란 태극기를 들고 있어 많은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쉽게 눈에 띄었다. 그는 "박 대통령 퇴진을 외치려고 참석했다. 1명의 목소리라도 더 모여 박 대통령 퇴진에 힘을 보태고자 나왔다"고 말했다.

태극기를 들고 나온 이유를 묻자, "대한민국의 진짜 독립을 기원하는 의미로 가져왔다. 사실 대한민국은 일제와 독재 그리고 재벌들의 세상이다. 그런 세상으로부터 진짜 독립하고 싶은 날이 오늘이다. 그런 의미에서 태극기를 챙겼고, 진짜 대한민국 만세와 대한독립을 외치고 싶었다"라는 마음도 밝혔다.

이날 집회 현장 분위기에 대해 묻자 "지금 광화문 근처는 얼씬도 못하고 시청으로 나왔다. 하지만 너무 기분 좋다. 축제 같은 집회가 좋다. 이런 게 진짜 민주주의구나, 직접민주주의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물음에 "좋은 말 할 때 빨리 물러나라! 박근혜 퇴진하라!"라고 전했다.

흰색 가운을 입고 손팻말을 들고 있는 정신과 의사
 흰색 가운을 입고 손팻말을 들고 있는 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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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현장에 다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 아픈 수많은 시민들이 있었다. 정신과 의사 임재영(38, 의왕시 정신보건센터)씨는 '마음 아픈 대한민국 치료하러 왔습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서있었다. 그는 "우리나라는 자살공화국이다. 다들 힘들고 마음 아프게 사는데, 이번 일로 인해 더욱 많이 좌절하고 분노하신다. 조금이라도 저의 역할을 하기 위해 이렇게 직업을 밝히면서 시청광장에 서있다"라고 말했다.

고향이 부산인 임씨는 "처자식이 고향에 있어 지난주에는 부산 집회에 참석했다. 오늘 이곳을 오니 가슴이 뭉클하고 감동적이다. 그리고 다들 질서있게 서로 배려하면서 즐기면서 같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모습이 참 좋다"라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박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더 이상 국민 아프게 하지 말고, 빨리 내려와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저승사자 옷차림을 입은 한 참가자
 저승사자 옷차림을 입은 한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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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광장에서 저승사자를 만났다. 김병성(49)씨는 검은 도포와 갓을 쓰고 하얀 피부 분장을 하고 집회에 참가했다. 그에게 복장의 의미를 묻자 "박근혜 잡으러 왔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자발적으로 집회 현장 주변을 정리하는 청년
 자발적으로 집회 현장 주변을 정리하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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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에서 청년들은 빛났다. 특히 자발적으로 장갑을 끼고 집회 현장을 청소하는 청년들을 자주 보았다. 집회에 참가하지 않고 현장에서 커다란 봉투를 들고 쓰레기만 줍고 다니는 청년도 만났다.

광화문D타워 뒤편에서 쓰레기를 봉투에 담고 끝을 묶어 한 곳에 모아두던 청년들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20대 중반인 그들에게 왜 쓰레기를 정리하냐고 묻자 "다른 식으로 집회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인터뷰는 피하고 싶다. 순수한 마음으로 이곳을 정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앞 뒤로 팻말을 두른 18세 작가지망생
 앞 뒤로 팻말을 두른 18세 작가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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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사관 앞에서 몸 앞 뒤로 팻말을 두른 작가지망생 이강(18)씨를 만났다. 팻말 앞쪽에는 '가정맹어호'(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 '가민맹어호'(가혹한 민심이 사나운 호랑이보다 무섭다)라는 문구가, 뒤쪽에는 '닭의 목을 비틀어야 새벽이 온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에게 팻말을 걸치고 집회에 참가한 이유를 묻자 "작가가 꿈이다. 많은 문인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시를 쓰고, 글을 썼다. 하지만 지금 민주주의가 많이 죽은 것 같아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이곳에 나왔다"라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당찼다.

문구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지난 4년간 정치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였다. 가혹한 정치 때문에 노조도, 노동자도, 학생들도, 어른들도 힘들었다. 또한 그들이 낸 세금도 똑바로 쓰이지 않았다. 결국 국민들이 계속 견디다가 이제 고름이 터졌다. 이제 정권은 '가민맹어호(苛民猛於虎)'를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가혹한 민심을 알고 빨리 하야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문구를 적었다"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옆에서 그를 지켜보는 내내 여러 어른들이 악수를 청하며, 응원의 말을 건네고,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았다. 집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어른들이 희망을 찾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도로에 앉아 가만히 촛불을 바라보는 한 시민
 도로에 앉아 가만히 촛불을 바라보는 한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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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에 담지 못한 현장 사진은 아래 '슬라이드'에 올립니다




태그:#민중총궐기, #3차 촛불집회, #박근혜 퇴진, #민주주의, #시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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