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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는 우리의 것이 되었다.
 거리는 우리의 것이 되었다.
ⓒ 백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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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밤, 민중총궐기의 분위기가 휩쓸고 간 광화문에 남았다. 나는 바퀴 달린 것의 영역이던 8차선 도로에 앉아 친구들과 맥주를 나눠마셨다. "박근혜 퇴진"을 건배사로, 민중총궐기의 기운을 안주 삼아 들이켜는 맥주는 몇 시간째 굶주렸던 뱃속으로 싸르르 미끄러졌다.

같이 있던 선배들은 "광우병 촛불 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 처음 본다", "태어나서 이렇게 사람 많이 온 집회 처음이"'라고 말하며 놀라워했고 내 타임라인은 온통 민중총궐기 이야기로 들끓었다. 정말 모두가 광장에 있었다. 안 친한 고등학교 선배, 연락이 뜸했던 고등학교 동기, 지난 학기 교양 같이 들었던 학교 사람, 만나본 적 없는 SNS 친구들까지 모두가 광장에 있었다.

백만이라니, 생각도 안 해 본 숫자였다. 그런데 정말로 모였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구호를 백만 명이 외쳤다.(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아직 버티는 것이 놀랍다. 인터넷 안 하나?) 우리는 한참을 행진해서 종로를 건넜지만 광화문에 가지 못 했다. 작년엔 차벽에 막혀 멀리 물대포의 물줄기만 바라보던 그곳을, 이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갈 수 없는 시국이 된 것이다. 말 그대로 '박근혜가 해냈다'.

두시 반 청년총궐기에서 출발했던 행진이 저녁 무렵 흐지부지 마무리되고, 우리는 시청 앞에서 한참을 표류했다. '청와대 에워싸기 행진'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지 않아 광화문에서 진행되는 범국민대회 생중계를 보며 대기했다. 법원의 허가까지 받아냈는데 경찰은 길을 막고 있었다.

청와대 앞을 지나면서 불을 지르거나 건물을 폭파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있을까. 그저 아주 가까이서 우리 목소리를 좀 들으라는 것뿐인데, 바득바득 막아놓은 것이 답답했다. 욕심만큼 겁도 많다. 조금도 비켜서지 않으려는 인색한 권력들이 얄미웠다.

"이 많은 사람이 다 어디에서 나온 거지?"

낮부터 계속 밖에만 있던 나는 너무나 피곤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려다 누군가의 말을 들었다. 사람이 원체 많으니 나온 말 같다. 머릿속으로 그 질문에 쉽게 답했다.

'매일 지하철에서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이겠지.'

그리고 스스로 놀라서 졸다가 깼다. 서로를 기억하면서 살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수십 번 스쳐지나갔던 사람들일 수도 있다. 지하철을 함께 타던 사람들,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옆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들, 화장실 순서를 기다릴 때 같이 줄 서 있던 사람들, 어디 들어갈 때 내 앞에서 문을 잡아주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광장을 메웠던 것이다. 내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나와 함께 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 생각하는 시민들, 주권을 가진 국민들이 광장을 가득 채워 찻길을 맨땅으로 만들고 신호등을 한낱 조명으로 바꿔버렸다.

촛불로 들끓는 광장의 사진을 보면서 '사람이 모이는 것이 이런 힘을 가졌구나' 생각했는데, 이런 힘은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원래 우리와 함께했다. 잠이 깬 김에 편의점에 간 나는 생전 처음으로 줄을 서서 가게로 들어갔다. 바글바글. 유쾌한 불편함이었다.

평화와 폭력을 규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시청 앞 표류중, 모여있는 사람들.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센터 제공)
 시청 앞 표류중, 모여있는 사람들.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센터 제공)
ⓒ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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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인 사람의 수만큼 확연하게 작년과 달랐던 것은 경찰의 대응이었다. 작년과 올해 모두 대치상황은 있었지만, 분명히 달랐다. 작년의 나는 멀리서 물대포가 뿜어내는 물보라를 보고 울고 싶은 기분에 시달렸다. 차라리 저 너머에서 물대포를 맞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앞에 고립되어 있는데, 나는 멀리서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크게 "폭력경찰 물러가라"고 소리를 질러도 물줄기는 꿈쩍하지 않았다. 무력해졌다. 나는 목이 터질 거 같은데 저들은 내 목소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서. 그래서 너무 서럽고 속상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물대포를 보지 못했다. 캡사이신 냄새도 맡지 못했다. 내가 못 본 것일 수도 있지만 살수차가 없고, 캡사이신이 없고, 경찰 폭력으로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사실은 당연히 없어야 하는 것들이지만,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뉴스 헤드라인에 "경찰 '준법시위, 평화집회를 바란다'"고 뜨는 것을 보자 기분이 확 상했다. 왜 평화를 당신들이 규정하는가. '준법'이라는 말도 코웃음이 나온다. 나야말로 '준법경찰, 평화공권력'을 바란다. 어제 집회에서 쓰레기를 모아 활활 태우거나 죄 없는 의경들과 싸우지 않은 것은 전혀 아쉽지 않다. 다만 우리가 여전히 '평화'와 '폭력'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공권력이 우리에게 자행하는 것이 이미 폭력이고 우리는 그것에 저항해야 한다'는 생각과 '하지만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물음. 나는 사실 앞의 의견에 동의한다. 의경과의 충돌, 그들을 향해 단발적으로 발사되는 욕설, 분노, 폭력적인 행동은 부질없을 수 있다.

개인 대 개인으로 감정이 격해지기 때문에 서로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줄 뿐 아니라 언론에서 '폭력시위꾼'이라고 몰아붙이기 딱 좋다. 하지만 차벽을 부수거나 거리를 점령하거나, 박근혜 내려오라고 소리 지르는 것, 경찰의 해산 명령을 거부하는 것, 경찰과 대치하는 것은, 과연 그것을 시위대의 '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함께가자 청와대로'라는 구호를 외쳤다.(성공회대학교 미디어센터 제공)
 '함께가자 청와대로'라는 구호를 외쳤다.(성공회대학교 미디어센터 제공)
ⓒ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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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는 경찰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 헌법에야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쓰여 있지만 사실상 공권력이란 것은 우리 세금 뜯어다가 버스 사고 장비 사고 인력을 조직해서 서민들을 탄압하기 위해 발휘되고 있다. 우리의 혈세는 경찰의 방패가 되고 우리는 광장에서 그것들과 대치한다.

짓눌린 자들이 발악하는 것을 '폭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스스로 '평화'라는 프레임에 갇혀 팔다리가 자유롭지 못할 때 쉽게 억압하려는 지배계급의 통치수단이다. 이미 자리 잡힌 거대한 권력의 차이, 우리가 말하는 것이 저들에 의해 쉽게 규정되는 것이 이미 폭력이다. 저들이 말하는 질서와 평화는 사실 '우리의 룰 안에서 놀아라'라는 저들의 협박인거다.

대학에 와서 항상 마음에 담아두는 말이 있는데 "평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문제가 있어도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 상태다"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굳건히 믿는다. 경찰이 말하는 '준법시위'와 '평화집회', 우리가 경찰이 막아놓은 앞까지만 갈 수 있는 것은 평화가 아니다.

'민중총궐기'라는 이름으로 모여 누군가를 배제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여성, 장애인, 청소년, 학생이 아닌 사람 등) 그것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어야 평화집회다. 복잡한 인파 속에서 사고가 없도록 최소한의 질서를 만드는 것이 준법시위일 것이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는 현재 대통령이 국정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 지도자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평화다.

끝이 아닌 민중총궐기, 즐겁고 끈질기게 묻자

박근혜 퇴진하라!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 박근혜 퇴진하라!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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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친구들은 뻥 뚫린 도로에서 씁쓰름 시원한 맥주를 들고 하루의 소감을 나누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원을 그리고 앉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든 사람들이 쓰레기를 한곳에 모았다. 차더러 다니라고 만든 길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사람의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기울이는 술과 하루의 고단함이 딱딱한 아스팔트를 숨 쉬게 만드는 것 같았다. 소감 나누기는 다소 '아무 말 대잔치'였지만 신났다. 좋은 것도 많고 아쉬운 것도 많았던 민중총궐기지만 우리는 일희일비 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은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 한 번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큰 힘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 큰 힘이 모이는 일이 가끔 있기 때문에 한 번에 갑자기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큰 힘이 모아질 수 있는 것은 오랫동안 꾸준히 기틀을 만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소에 각자의 영역에서 변화를 준비한다. 그리고 큰 힘이 필요할 때 서로를 끌어안는다. 이번에는 그 연대의 크기가 백만 명이었던 것이다. 서울에만 백만 명이고 다른 지역에서 함께 행동한 사람들, 마음을 모아 멀리서 응원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그 연대의 크기는 더 거대해진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될수록 더 강해진다.

민중총궐기를 포함해서 지금 우리나라는, 그리고 세계는 계속 새로운 사건을 겪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집회는 거의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지만, 어제 민중총궐기는 분명 새로운 물결이었다. 당장 바뀐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여러 가지가 달라졌다. 한 번도 집회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이 함께 나와서 구호를 외쳤고, 8차선 거리는 맨땅이 되어 어디든 엉덩이를 대고 앉아도 되었고, 경찰은 벽보다 병풍이 되어 긴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면 큰 소리가 뭉쳐 가슴을 울렸다. 우리는 분명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사실 백만이 뭉쳤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끼기에도, 박근혜가 (아직도) 퇴진하지 않았다는 것에 실망하기에도 이른 것 같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혁명은 계속 진행 중이다. 우리는 식지 않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알고 싶어 하는 것. 왜 우리의 지도자는, 우리나라는 이 모양이 되었는지, 어디까지 썩어있는지, 우리는 무엇을 외쳐야 하는지, 이후의 삶은 어때야 하는지. 계속 고민하고, 토론하고,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말해야 한다.

공동체의 삶을 고민하는 데에, 고통받는 곳을 돌보는 일에 '해일 앞에 조개를 줍는 격'의 사소한 고민은 없다. 우리가 해일이고, 파도치지 않는 바다는 죽는다. 끊임없이 움직이다가, 기회를 봐서 시원하게 땅을 쓸어버리자. 그리고 거하게 술을 나누어 먹고, 뜨끈한 조개탕을 곁들이자. 노래하고 춤추고, 아름다운 것을 이야기 하자. 성주 군청 앞에 지금도 모이는 수많은 군민들은 매일 외친다.

"투쟁은 절겁게!"

ⓒ 백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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