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메테우스>의 후속편 <에일리언: 커버넌트>가 내년 10월 개봉한다. 불과 1년도 안 남았다. SF 영화 팬들에게는 무척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에일리언> 시리즈를 전체적으로 갈무리한 리뷰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지난 연재에서는 아쉬운 대로 오리지널 1, 2편을 리뷰했다(기사 하단 참조). 이 글에서는 오리지널 시리즈들의 전반적인 주제를 짚고 3, 4편 리뷰까지 마무리한다. 다음 리뷰는 프리퀄 <프로메테우스>다.

우선 <에일리언>에는 당연히 에일리언이 등장한다. 오리지널 1~4편의 단서들을 모으면 이 에일리언(제노모프 종족)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아래 [그림1]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에 등장하는 우주 괴물은 엄밀하게는 에일리언(Alien,  외계인)이 아니라 제노모프 종족이라 불러야 정확하다. 제노모프들은 성체가 되기 전에 오보모프라는 알과 페이스 허거라는 기생충 시기를 거친다. 페이스 허거는 인간 외에도 소나 개 등 동물을 숙주로 삼을 수 있는데 숙주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성체로(드론, 워리어, 러너, 퀸 등) 성장한다. (자료=20세기 폭스 <에일리언> 시리즈 스틸컷 재가공)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에 등장하는 우주 괴물은 엄밀하게는 에일리언(Alien, 외계인)이 아니라 제노모프 종족이라 불러야 정확하다. 제노모프들은 성체가 되기 전에 오보모프라는 알과 페이스 허거라는 기생충 시기를 거친다. 페이스 허거는 인간 외에도 소나 개 등 동물을 숙주로 삼을 수 있는데 숙주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성체로(드론, 워리어, 러너, 퀸 등) 성장한다. (자료=20세기 폭스 <에일리언> 시리즈 스틸컷 재가공) ⓒ 하지율


[첫째] 정체불명의 알들을 잔뜩 실은 정체불명의 외계인의(<에일리언> 오리지널 시리즈의 프리퀄인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엔지니어'라 불린다) 우주선이 미지의 행성에 고꾸라진 채 방치돼 있었다. 이륙 중 추락했거나 불시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그런데 이 알에서 기생충이 튀어나와 호기심 많은 탐사 대원의 얼굴에 들러붙었고 입에다가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셋째] 얼마 뒤 감염된 사람의 가슴을 뚫고 새끼 에일리언이 튀어나왔다.
[넷째] 새끼 에일리언은 무서운 속도로 포악하고 호전적인 성체로 성장해 인간을 사정없이 도륙한다. 성체 중에는 심지어 알을 낳아 번식을 하는 '퀸 에일리언'도 있다.
[다섯째] 그런데도 탐욕스럽고 오만한 기업, 과학자 집단, 군대는 이 위험천만한 제노모프들을 길들여 생물 병기로 삼으려고 끈질기게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인간의 유전자와 에일리언의 유전자가 뒤섞여 자궁을 갖게 된 퀸이 뉴 본 에일리언이라는 변종을 출산한다.

한편 이렇게 탄생한 변종은 인간과 유사한 신체적 특징들도 갖고 있다. 굳이 알, 기생충 시기를 거치지 않더라도 퀸의 자궁에서 바로 출생한다던지(이때 산통에 괴로워하는 퀸의 모습이 흡사 인간 산모의 출산 과정을 연상시킨다!), 인간의 해골을 연상시키는 얼굴은 물론이고 젖가슴과 여성의 성기를 갖고 있다던지, 다른 에일리언들은 피가 누런색인데 혼자만 붉은색이라던지 등등.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설정으로 '인간의 형상'을 재현해낸다.

<에일리언> 시리즈 감독들이 하고 싶었던 말

좋다. 그렇다면 감독은 어떤 의도로 인간과 에일리언의 경계를 무너뜨렸을까. 사실 '감독'보다는 '감독들'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오리지널 1편부터 4편까지 감독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연출도 주제 의식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줄거리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관점과 클리셰의 연속성을 공유함으로써 감독들이 하고 싶었던 말 중 겹치는 부분이 있다.

[첫째] 포악한 에일리언 유충이 '인간의 가슴을 뚫고 나오는' 설정, 결국 인간과 에일리언의 유전자가 섞여버린다는 설정을 공유함으로써 드러내려는 메시지가 있다. 인간의 내면에는 악마적이고 공격적인 본성이 숨어있고 이것이 언제든 튀어나와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경고다. 에일리언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우주 괴물'로 타자화한 상징물일 뿐이다.

[그림2] <에일리언> 시리즈 감독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에일리언> 1편(1979) 감독 리들리 스콧, 2편(1986) 감독 제임스 카메론, 3편(1992) 감독 데이빗 핀처, 4편(1997) 감독 장 피에르 주네. 모두 각종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 혹은 후보까지 오른 거장들이다.

▲ [그림2] <에일리언> 시리즈 감독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에일리언> 1편(1979) 감독 리들리 스콧, 2편(1986) 감독 제임스 카메론, 3편(1992) 감독 데이빗 핀처, 4편(1997) 감독 장 피에르 주네. 모두 각종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 혹은 후보까지 오른 거장들이다. ⓒ wikicommons

그런데 3편에서 에일리언은 개나 소와 같은 동물도 숙주로 삼는다. 공격성을 단순히 인류만이 아닌 생물계 차원의 본성으로 확장시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기 힘든 '굴레(섭리)'라는 확인 사살을 가한 것이다. 4편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인트로에 곤충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잠시 나오는데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대는 장면이 흡사 에일리언을 연상시킨다.

[둘째] 이 영화에 페미니즘적인 메시지가 있다는 해석도 있다. 특히 <에일리언> 시리즈의 초석을 놓은 1편 리들리 스콧 감독이 이후 <델마와 루이스>(1991)라는 유명한 페미니즘 영화의 감독을 맡은 사실도 이러한 추론에 힘을 실어준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페미니즘적이란 걸까. 우선 1~4편을 통틀어 주인공은 리플리 중위다.

그녀는 원래 민항선 노스트로모호의 항해사였는데 직급도 높고 자기주장도 강하다. 그런데도 남성 승무원들은 그녀를 놀림감으로 삼거나 묵살하는 등 안 좋은 모습을 보인다. 결국 LV-426 행성 탐사 임무와 에일리언 알, 기생충의 위험성을 꾸준히 경고한 그녀만 살아남고 동료들은 다 죽는다. 여성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1편).

이후 리플리는 식민지 해병대와 합류한다. 해병대가 LV-426의 에일리언들을 쓸어버리러 파병될 때 고문으로 합류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마초들도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고 성희롱이나 하는 등 리플리의 경고를 무시하다가 병력 대부분이 몰살당한다. 결국 그녀가 실질적인 지휘관이 돼 퀸과 혈투에서 승리한 뒤 간신히 탈출한다.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내려는 의도로 읽힌다(2편). 3~4편에서도 리플리는 다양하게 여성차별을 받는다.

리플리가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놓쳐서는 안 될 감상 포인트다. 그런데 어떤 독자들은 이 영화의 페미니즘적 연출들이 탐탁지 않을지도 모른다. 남성을 상대적으로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여성성/남성성이라는 단순한 이분법 도식에 기댄다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런데 이점은 잘 고민해봐야 한다. <에일리언> 시리즈 감독들도 모두 남자다. 과연 이점을 몰랐을까?

오리지널 시리즈의 제작 연도는 1970~90년대다. 미국에서 이른바 '문화 운동'이란 것이 한창 벌어지던 시기다. 이 시기 전까지 미국과 서유럽의 사회 운동은 경제 성장이나 재분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가 이 시기가 되자 재분배 투쟁에 가려져 빛을 못 보던 삶의 질, 소수자, 여성차별, 인권, 환경 등의 이슈가 부상했다. 예술의 옛 시대에 대한 반역 새 시대 반영의 측면을 고려하면 <에일리언>의 다소 '극적인 연출'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가부장적 질서를 철폐하고 억눌려온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긴급했기 때문이다. 이미 고민됐어야 할 것은 1970~90년대 미국과 2016년 한국 사회의 경향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판단은 독자들께 맡기겠다. [셋째] 1~4편을 통틀어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오만을 비판하는 메시지가 있다. 기업, 과학자 집단, 군대 등은 에일리언을 길들여 생물 병기로 삼으려고 한다. 리플리는 그들의 안티 테제다. 한 번 살펴보자.

3편은 문명 비판, 4편은 낙태에 대한 변론 

[그림3] 출산을 포기하며 자살하는 리플리 영화 <에일리언> 3편 스틸컷.

▲ [그림3] 출산을 포기하며 자살하는 리플리 영화 <에일리언> 3편 스틸컷. ⓒ 20세기 폭스


LV-426에서 탈출한 리플리는 구명선에서 동면을 하며 지구로 귀환 중이었다. 그런데 구명선이 알 수 없는 화재로 피오리나 161이라는 행성에 불시착한다. 이 행성은 기업이 관리하는 민자 교도소가 있고 흉악범들이 수용된 곳이다. 그들은 형 집행이 만료됐지만 지구로 돌아가지 않고 기독교 원리주의와 종말론을 신봉하며 자신들만의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리플리는 구명선이 불시착 이유를 알아보고 에일리언의 위험성을 경고하고자 애쓴다. 하지만 남성 죄수들은 이를 무시했고 도리어 관음, 강간을 시도하는 등 수난을 겪는다. 결국 리플리는 2편에서 자신을 도와준 안드로이드 비숍의 잔해를 되찾아 구명선에 에일리언 기생충들이 타고 있느냐고 묻는데, 비숍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했지요"라고 의미심장하게 답하며 작동을 멈추고 리플리는 자신의 뱃속에도 퀸 유충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깨닫는다.

한편 개(감독판에서는 소)를 숙주로 삼아 태어난 또 다른 에일리언이 죄수들을 도륙하기 시작하자 죄수들은 비로소 리플리를 실질적 리더로 삼아 에일리언에게 맞선다. 결국 에일리언을 죽이는 데는 성공하지만 행성에 도착한 기업 회장이 리플리에게 뱃속에 남아있는 퀸이 경제적 가치가 있는 샘플이니 '이성적으로' 판단하라고 권유한다. 또한 아이도 가질 수 있도록 안전한 수술로 꺼내주겠다고 유혹한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것이다.

하지만 리플리는 "당신들은 미쳤어"라는 말을 남긴 뒤 [그림3]처럼 '십자가'의 형상으로 용광로로 뛰어들어 퀸과 함께 사라진다. 한편 피오리나 161 최후의 생존자는 모스라는 비중이 별로 없는 죄수인데 그는 동료들을 기억하며 "그들은 죽지 않았어. 더 높은 곳으로 떠났을 뿐"이라는 대사를 남긴다. 이를 통해 영화가 말하려는 바는 무엇일까.

3편을 포함해 1~4편은 기본적으로 기업, 과학자 집단, 군대의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오만함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공유한다. 그런데 3편은 종교까지 건드려 '문명 비판' 차원으로까지 지평을 넓혔다. 예수님은 남성의 형상이었다. 그런데 3편은 여성인 리플리를 메시아로 등장시켰다. 기독교에 반론을 제기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또한, 모스라는 뜬금없는 인물을 마지막 생존자로 설정했다. 사람들은 구원에 목매지만 그것은 우연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소로 읽힌다. 다만 3편은 데이빗 핀처 감독의 의중과 동일시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제작 당시 젊고 초짜 감독이었던 핀처는 힘이 별로 없었단다. 제작사와 편집 주도권을 놓고 마찰도 잦았고 3편을 자기 커리어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3편의 변칙적 설정들은 감독보다는 제작사의 의중으로 읽는 편이 안전하다.

 영화 <에일리언> 오리지널 4편 스틸컷.

영화 <에일리언> 오리지널 4편 스틸컷. ⓒ 20세기 폭스

[넷째] 오리지널 시리즈의 또 하나 흥미로운 대목은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관계다. 애쉬(1편), 비숍(2~3편), 콜(4편)이라는 안드로이드들이 등장하는데 각각 성격이 다르다. 특히 인간의 통제에서 독립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리플리를 도와 에일리언에 맞서는 콜은 여성의 형상이다. 리플리는 시리즈 초반만 해도 에일리언 샘플을 '연구 목적'으로 채집하겠다는 애쉬와 갈등을 빚다가 애쉬의 이상 공격 행동을 당했기에 안드로이드를 불신했다.

그러나 비숍, 콜이라는 좋은 동료들을 만나면서 중후반으로 갈수록 마음이 누그러지는데, 이로써 과학기술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과학기술을 모두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으리라 착각하는 인간의 오만함이 나쁘다는 메시지가 추출된다. 다만 감독마다 미묘한 관점의 차이는 있는데 1편의 리들리 스콧이 다른 감독들보다는 과학기술을 비관적으로 보는 듯하다.

리들리 스콧이 감독을 맡은 프리퀄 <프로메테우스>에서도 안드로이드 데이빗은 사악한 행동을 한다. [다섯째] 이 영화의 마지막 압권은 1~4편의 결말에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클리셰다. 마지막까지 인간에게 다가오고자 끈질기게 우주선까지 쫓아오는 에일리언을 리플리가 에어락을 개방해 우주로 날려버리는 장면인데, 이 장면이 인공 임신중단 즉 낙태에 대한 변론이 아니냐는 해석이 있다. 실제로 몇 가지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꽤 그럴싸하다.

(1) 어쨌거나 '에일리언'은 인간 내면에 잠재한 우두운 본성을 타자화한 상징물이다. (2) 그러나 인간은 이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에일리언이 끊임없이 리플리를 쫓아오고 또 리플리가 끊임없이 도망간다는 설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3) 결국 이 번뇌를 끊는 최후의 수단은 출산을 포기함으로써 인구 재생산의 고리를 끊는 방법밖에 없다. (4) 특히 4편에는 유전자 조작으로 리플리와 에일리언의 유전자가 섞이면서 서로가 엄마와 자식처럼 끌린다는 설정이 등장한다. 리플리가 슬픈 표정으로 미안하다면서 에일리언을 우주로 날려버리고, 에일리언이 애절한 표정으로 리플리를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진지한 고민을 요청하는 이유다. 2016년 한국 사회는 과연 아기를 출산해도 좋을 만한 환경인가? 우리는 이 질문부터 답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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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 제임스 카메론 데이빗 핀처 장 피에르 주네 에일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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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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