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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는 다양한 세력이 상호간 소통이 중요하다
 시민정치는 다양한 세력이 상호간 소통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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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시민정치를 정의할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시민정치'는 익숙하면서도 한편으론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개념이다. 시민의 활동과 관련해선 (이 글에선 시민정치의 한 방식으로 간주되는) 시민관여활동(civic engagement)이 가장 흔히 쓰는 표현이며, 시민참여(civic participation)란 표현도 쓰인다. '시민참여'는 시민들이 공적 책임감을 지니고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나 국가 차원의 활동에 스스로 참여하는 활동을 이른다. 이런 점에서 필자가 지금부터 제시하려는 '시민정치'는 영문으로 표기되는 'civic politics'와 사실상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앞으로 제시할 하위개념 세 개를 아우르는 말로 제안하는 독자적인 용어다.

먼저 '시민정치'를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시민정치는 민주주의 정체에 일반 시민들이 정치결정과정에 좀 더 폭넓게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관여할 것을 제안하는 개념이다. 이런 시민정치는 시민정치참여, 시민관여활동, 시민불복종으로 이루어진다. 이중 시민들이 온전하게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시민관여활동과 시민불복종은 '시민직접행동'이라는 개념으로 묶인다. 시민정치참여가 시민직접행동에 포함되지 않는 이유는 의회의 대표자와 정부의 관료들이 존재하는 제도권 영역에서는 주된 행위자이며 시민들은 이 영역에서 제2의 행위자로 남기 때문이다.

이런 개념 구분은 시민이 참여하는 영역과 활동유형을 명확하게 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영역별로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유형, 역할, 시간이 다르다. 시민정치참여에서 시민은 정치엘리트와 관료의 활동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2차적 행위자인 반면, 시민관여활동과 시민불복종에선 목표를 직접 설정하고 행위하는 1차적 행위주체다. 이런 구분은 시민이 좀 더 주체가 되는 영역이 어디인지를 명확히 한다. 나아가 시민참여활동과 시민관여활동은 일상의 정치에서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반면 시민불복종은 초일상의 정치형태다. 이런 구분은 시민불복종이 일상의 정치에서 지속적으로 남용되는 일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시민정치의 첫 번쩨 영역, 시민정치참여

시민정치의 영역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민정치참여'는 정당이나 시민 대표자들이 중심이 되는 제도권정치영역활동뿐만 아니라 이런 제도권정치영역에서 결정한 사안을 집행하는 공공행정활동까지를 포괄하여 제도권 내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행위에 시민이 참여하는 행위를 이른다. 이 영역에선 시민참여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첫째는 '작은 공중(minipublics)'이라 하여 일반시민들 중에서 선택된 구성원들이나 사안별로 관심을 지닌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방식이고, 둘째는 모든 이들에게 참여를 개방하여 공론장을 최대한 확장하는 방식이다.

이 영역에서 시민들은 주로 정치활동 내용에 관한 정보를 얻고 습득하며 참여자들 간에 정보 및 의견교환 활동을 한다. 이 과정에서 집단적인 영향력을 더욱 직접적으로 행사하여 정책결정에서 외부적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좀 더 나은 주장을 펼치는 세력'으로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정당의 지도부 선출에서 볼 수 있는 모바일 투표는 이 영역에서 시민들이 '좀 더 나은 주장을 펼치는 세력'을 넘어 '좀 더 최종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세력'으로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시민정치의 두 번째 영역, 시민관여활동 

시민관여활동으로 폭넓게 이를 규정하는 경우 앞서 설명한 '시민정치참여'를 모두 포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온전한 의사결정주체'로 시민의 직접행동을 강조하기 위해, 좁은 의미에서 시민관여활동을 '시민구성원들 개인이 직접 소속되거나 관심을 가진 공동체'를 위해 행하는 다양한 행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달리 말한다면, 시민관여활동은 정당정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자체와는 직접 관련 없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라는 단위는 반드시 국가일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정체성이나 이익에 기반을 둔 집단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들의 권리향상운동은 동성애 공동체에 속한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운동이다. 그러나 이 운동을 전개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동성애자일 필요는 없다. 동성애자의 권리향상이 자신이 속한 전체 공동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하거나 이들의 권리향상을 지원하는 일이 시민으로서 책무라고 믿는 연대의식을 지닌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시민관여활동에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시민으로서의 이런 활동이 공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소수자의 권리향상이 시민의 삶에 중요한 까닭은 구성원 간의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강화하여 공익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시민정치의 세 번째 영역, 시민불복종

시민정치를 이루는 세 번째 하위개념인 '시민불복종'은 입헌민주정체의 핵심인 헌법적 정신을 권력자들이 남용할 때, 자신들이 설정한 헌법의 정신에 맞도록 체제를 유지하는 시민들의 초일상적 활동을 의미한다. 이런 구분은 민주주의 시간과 공간의 상이함을 반영한 것인데 일반적으로 (민주)정치는 여러 가지 다른 시간대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잘 아는 일상, 국가가 비상사태를 겪는 위기의 순간, 그리고 인민들이 직접적으로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순간인 초일상이 그것이다. 초일상의 정치는 전면적인 정체의 전환을 촉구하는 혁명이 있고, 기존의 정치체제를 지키면서 변혁을 꾀하는 시민불복종이 있다.

시민불복종은 기존의 체제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일상의 정치에 존재하지만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체제를 지키는 일에 나선다는 점에서 초일상의 정치형태다. 여기에서는 당대에서 혁명이 독재에서 민주정체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점, 더 나아가 법치를 기본으로 하는 평등한 시민은 민주정체에 존재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시민불복종의 형태만을 고려한다.

정당정치와 함께 하는 시민정치

글을 맺으며 당부해두고 싶은 사안은 시민정치가 정당정치와 맞서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당정치가 정치의 효율성을 가장 중요시 한다면, 시민정치는 다양한 세력이 상호간 소통을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대립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여지가 있다. 하지만 시민정치는 정당정치와 연계될 때 그 영역을 더욱 확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의 참여역량을 강화할 수 있으며 이런 기반 위에 정당정치가 더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돕는 개념이다.

지금껏 우리는 정당엘리트들이 중심이 되는 대의민주주의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시민이 민주주의의 기반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주체가 되고자 하는 활동, '그것도 정치이고 민주주의이다.' 변화한 환경 속에서 시민정치는 정당정치와 함께 동등한 민주주의의 축으로 자리 잡을 충분한 잠재력과 자격을 지니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만권님은 정치철학자입니다.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정치철학 강좌로 많은 시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최근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진행했던 강좌 <정의의 계보학>을 <호모 저스티스>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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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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