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칭 '교통 오타쿠',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가 연재합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그런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기자 말

 충무로 대한극장에 설치된 영화 설리의 대형 포스터.

충무로 대한극장에 설치된 영화 설리의 대형 포스터. ⓒ 박장식


영화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이하 설리)이 개봉했다. 2009년 1월 발생한 US 에어웨이즈 1549편 비상착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미국에서 이미 9월 둘째 주에 개봉한 이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등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서도 개봉 첫 주에는 여러 영화에 밀려 박스오피스 4위에 머물렀지만 관람객, 평단의 평가가 상당히 좋은 상태.

<설리>가 잔잔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과 톰 행크스가 멋진 컬래버레이션을 보여줘서일까. 아니면 우리의 비극적인 자화상과 맞물려 끝까지 보고 나면 우리의 머리가 좀처럼 들어지지 않는 부끄러움을 향유하고 있어서일까. 이 해답을 찾기 위해 <설리>의 스크린 뒷면에 가려진 미국 사회와 한국 사회 속으로 들어가본다.

2009년,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뉴욕의 김포공항 격인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해 샬롯으로 향하던 US 에어웨이즈 1549편 앞에 큰 위기가 봉착한다. 이륙 2분만에 통상적인 새보다 큰 새가 엔진에 부딪혀 버드 스트라이크가 일어나고, 양쪽 엔진이 모두 꺼져 항공기가 추락할 위기에 놓인 것. 매뉴얼에는 회항이라고 되어 있지만 회항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위치이기 때문에, 허드슨강으로 비행기가 비상착수 한다는 결정을 하게 된다.

대형 제트 여객기가 도입된 1970년대 이후로 비상착수 이후의 생존자가 지금까지 단 하나도 없었기에, 그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도전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비행기는 이륙 6분만에 강 위로 매우 빠르게 뛰어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비행기가 넓은 강 위로 미끄러지듯 착륙한 것이다. 뉴욕에서 일상적인 취재를 하던 언론사의 이목이 허드슨 강 위로 쏟아진다.

 지난 2009년, 허드슨 강의 기적을 선보인 비행기 추락사고를 속보로 전하던 CNN 뉴스 갈무리.

지난 2009년, 허드슨 강의 기적을 선보인 비행기 추락사고를 속보로 전하던 CNN 뉴스 갈무리. ⓒ CNN


놀란 뉴요커들 앞에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승객들이 비상구를 통해 걸어나온 것. 다치지 않은 승객들이 부상자도 지체없이 데려나오고, 기장은 두 번이나 안을 확인하고 구조선으로 변신한 뉴욕 페리에 몸을 맡긴다. 슐렌버거 기장에게 있어서 유일한 실수가 있다면 비상착수시 항공기의 침수를 막아주는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는 것 뿐이었다. 구조 완료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29분이었다.

영화에서는 청문회가 길게 이어진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기장의 헌신적인 대처가 밝혀져 슐렌버거 기장은 미국에서 엄청난 영웅이 된다. 바로 부시 대통령을 영접하고, 슈퍼볼 행사에 초청되고, 뉴욕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자신이 좋아하던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시구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관부터, 사고 이후의 이야기까지 엮어서 써낸 자서전 <Highest Duty>를 출판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이번 <설리>이다. 자신을 다룬 영화까지 개봉했고 자서전까지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면, 다음 문단을 봤을 때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알려지지 않은 논란... 미국의 '투잡 뛰는 파일럿'

사실 미국에서도 부시 대통령의 축전, 시구, 슈퍼볼 초청에 가려졌던 하나의 이면이 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이 2009년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자본주의:러브 스토리>에 그 감춰진 이면이 드러난다. 영화 자체는 월가에 닥친 경제위기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자본계급에 대해 다루고 있다.

슐렌버거 기장은 여러 환영을 받으며 거의 모든 곳에 영웅처럼 나타났다. 그랬던 그가 국회에는 영웅이 아닌, 한국으로 치면 '국감의 증인'처럼 얼굴을 아래로 깔고 나왔다, 영화는 단지 사고의 원인에 대한 의혹을 파고들었지만, 실제 그 영웅 기장은 '비행기를 해먹었다는 이유로' 고통받았다.

 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에서 그는 사고 이후 사측으로부터 연봉을 40% 삭감 당하고, 연금을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직업 조종사 중 누구도 나의 자식이 그 일을 하기 바라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는 직장인이 대리기사 투잡을 뛰듯 '투잡 뛰는 기장님', 심지어는 돈을 아끼기 위해 저소득층 급식소에서 식사를 하는 기장님도 등장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기장들의 연봉 중 2만 달러가 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단다. 목숨 걸고 하늘을 나느니, 차라리 맥도날드 내지 월마트(월마트는 다음 장면에 비판하는 내용이 나오긴 한다)에서 알바를 뛰는 것이 이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원인은 바로 무리한 하청과 외주화. 초고급인력인 비행기의 기장마저 외주업체에 아웃소싱을 받는 처지에 다다른 것이다.

아웃소싱을 하고, 사람의 목숨이 달린 기장에게 2만 달러의 월급밖에 못 주는 이유는 기업의 '이윤의 극대화'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마이클 무어는 미국이 자본주의 대신 '금권주의'(Plutomony)에 빠졌다고 경고한다. 이미 1%가 95%의 부를 소유하는 미국은 점점 돈이 인간보다 앞선 나라가 되고 있다고 말이다. 2009년에 나온 영화이지만, 2016년 현재도 현재진행형인 경고이다.

그럼 한국은?

제2의 설리가 대한민국에서 나오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의 공공운수노조가, 그리고 보건노조가 정부와 싸우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무조건 일한 만큼 성과급을 준다는 그런 그 제도 때문에 싸우고 있는 그것 말이다.

성과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 성과를 수치로 보이는 것이다. 그 수치 중에 가장 믿을 만한 것은 두 말할 것 없이 돈과 시간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시간이 조금 걸리고 돈을 조금 쓰면 수치를 팍팍 높일 수 있고, 고성과로 나타난다. 세금이 줄줄 새고, 공무원 일처리도 느린데 좋은 제도 아니냐는 반응이 있을 테다.

철도의 전기요금과 연료비를 아끼기 위해 일부 기기를 끄고 운행한다거나, 죽어가던 사람이 링거만 맞고 살았다는 이유로 '돈과 수술시간을 아끼기 위해' 간호사들이 링거만 맞힌다거나 하는 일이 성과연봉제 하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데 아끼라고 있는 돈이 아니다. 국가의 곳간이 비었으면 큰 도둑을 먼저 잡아야지 왜 이미 보통 사람만큼 일하는 공무원들 목을 치느냐는 이야기이다.

성과만을 우선시하는 체계에서는 제2의 슐렌버거 기장이 나올 수 없다. 아니, 나오기도 전에 저성과자로 몰려 해고되거나 알아서 '떨려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미 한국형 '듀플렉스 떼제베'를 위해 철도연구원에서 개발했던 2층 고속열차는 167억원을 들여놓고서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개발을 취소했다.

이런 사회라면 베테랑이 버틸 수 없다. 노동조합들이 지금까지 파업을 이어가는 이유는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함이다.  영화의 청문회 신이 보여줬듯이 현실은 '전차로 GO!' 게임이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와 같은 게임 따위가 아니다. 모든 돌발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현실적인 베테랑이 필요하다.

 마이클 무어의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 포스터

마이클 무어의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 포스터 ⓒ 마이클 무어


세월호는 왜 맹골수도의 기적이 되지 못했나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2014년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여객선인 세월호 말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세월호를 떠올렸다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는 트위터를 통해 '<설리>는 보는 내내 부끄럽다. 이 영화는 우리가 세월호 앞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거의 모든 쇼트에서 내내 물어본다. 손수건을 준비할 것. 흐르는 눈물을 참기가 어렵다' 라고 썼을 정도.

같은 교통수단 상의 사건, 같은 교통수단이 물에 빠지는 사고, 그리고 전원 생존과 2/3가 죽었다는 차이. 물론 시골 한 가운데 바다와 뉴욕 한 가운데를 흐르는 강이라는 좀 큰 차이가 있지만 세월호가 US 에어웨이즈 1549편보다 나았던 점이 있었다. 배가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세 시간이라는 소중한 시간이 있었고, 살을 에는 1월 추위가 아닌 꽃이 피는 춘사월의 선선한 추위였다는 것.

세월호는 시간도 '넘칠 정도로' 많았다. <설리>에서 모두가 구조되어 눈물을 흘리는 신에서 뇌리에 생각이 스친다. '왜 세월호는 맹골수도의 기적이 되지 못했을까?' 영화에서 허리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고 두어 번 비행기를 다시 돌아볼만큼 헌신적이었던 기장과, 다리에 심한 열상을 입고도 뛰었던 스튜어디스를 보며, 세월호의 승무원은 뭐 하고 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승무원이 '개판이어서' 배가 넘어갔고 선장이 팬티바람으로 튀었다면 구조해야 할 해경께서는 뭐 하고 있었나. 더욱이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에서 '아이들이 철이 없었는지 나오지 않았다'라는 변명으로 일관한 것이 드러나 비난을 듣기도 했다.

유일하게 허드슨 강의 기적과 동일했던 점이라면 '주변 선박의 헌신적인 도움'이다. 주변의 페리가 항로를 벗어나 지체없이 사고현장으로 달려나가는 모습, 조업중이던 어선이 그물을 끊어내고 지체없이 사고현장으로 달려나가 승객들을 구해냈던 모습은 같다. 이런 점만은 참으로 다행스러웠던 점이 아니었을까.

 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 <설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분명 영화가 끝날 때 즈음에는 부끄러워진다. 우리는 이미 큰 사고 하나를 겪었고, 그 사고의 대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300여명의 목숨을 잃은 데다가 아직도 그 사고로 시끄러운 정국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끄러워 해야만 할까, 아니면 2009년에 이미 헌신적인 노력으로 사람들을 구했던 이 사건을 부러워하고, 우리가 따라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까. <설리>가 대한민국에서 더욱 특별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이유다.

아직 세월호의 사고 원인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세월호 특조위가 종료되었다. 이미 모두가 생존한 사고임에도 깐깐하게 원인을 분석하려 애썼던 <설리> 속의 청문회 위원들이 떠오른다..

<설리>는 단순히 155명의 목숨을 살린 영웅적인 기장에 대한 순애보, 내지는 '원 맨 쇼'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웠던 교통정책에서의 성과만능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경종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청소년 항공전문지 에어로타임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통 사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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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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