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시에서는 저녁이나 밤에 자전거를 달리면서 반드시 등불을 켜야 합니다. 자전거가 달릴 찻길이나 골목길에 자동차가 워낙 많기 때문이고 사람도 많이 오가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저녁에도 밤에도 논둑길에서 자전거를 달리며 등불을 안 켜도 됩니다. 등불을 안 켜면 시골은 너무 깜깜해서 앞을 못 보지 않느냐고 물을 분이 있을 텐데, 아주 깜깜한 시골에서는 등불이 없어도 달빛이나 별빛으로도 넉넉히 밝아요. 더욱이 시골에서 살다 보면 밤눈이 밝아져서 등불 없이 호젓하게 밤 기운을 누릴 수 있어요.

겉그림
 겉그림
ⓒ 한솔수북

관련사진보기


'니나는 깜깜한 밤을 무서워해요. 하지만 괜찮아요. 불을 켜면 좀 덜 무섭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만 전기가 나가 버렸어요.' (3∼4쪽)

며칠 앞서 늦은 저녁에 자전거를 달려 면소재지를 다녀왔어요. 뭔가 살 것이 있어서 가볍게 자전거를 달렸지요. 가을이 깊어 가면서 나락은 무르익고, 나락 내음이 차츰 구수하게 퍼지는 논둑길을 등불 없이 자전거로 느긋하게 달렸어요. 이러다가 반딧불이를 꼭 한 마리 만났어요. 더 많이 만나면 더 반가울 텐데, 꼭 한 마리를 만날 수 있어도 매우 반가워요.

요즈음 시골은 농약바람 때문에 다슬기한테도 반딧불이한테도 고단한 터전이 되고, 무엇보다도 도랑이나 냇바닥에 있던 흙을 시멘트로 덮는 개발과 공사가 끊이지 않거든요. 반딧불이는 흙도랑이나 냇물 흙바닥을 파서 알을 낳고 깨어나니까 시멘트 도랑이나 시멘트 흙바닥이 되면 반딧불이는 모조리 사라지고 말아요.

속그림
 속그림
ⓒ 한솔수북

관련사진보기


'창밖에서 은은한 노란색 빛이 깜빡이는 게 보였어요. 온 마당이 아롱아롱 떠다니는 작은 불빛들로 가득했어요. "반딧불이다!"' (8∼9쪽)

가브리엘 알보로조 님이 빚은 그림책 <잘 자, 반디야>(한솔수북,2015)를 저녁에 고요히 읽습니다. 해가 지고 어두운 저녁에 아이들하고 둘러앉아 이 그림책을 읽습니다. 마침 우리는 저녁에 마을 한 바퀴를 서로 손을 잡고 천천히 거닐다가 반딧불이를 만났어요. 해가 갈수록 반딧불이 숫자가 줄어드는구나 싶지만, 그래도 해마다 몇 마리씩 어김없이 만나요.

아이들도 곁님도 나도 반딧불이 빛깔을 모두 다르게 느껴요. 파랗다고 느끼기도 하고 노랗다고 느끼기도 하고 푸르다고 느끼기도 하며 하얗다고 느끼기도 해요. 네 사람이 네 가지로 다르게 느껴요.

반딧불이를 밤에 보셨나요? 반딧불이 꽁지에서 어떤 빛깔이 반짝반짝하면서 고요한 밤을 밝히는가요?

속그림
 속그림
ⓒ 한솔수북

관련사진보기


'"우리 그림자놀이할까?" 니나가 물었어요. 니나는 반딧불 쪽으로 두 손을 올렸어요. 맨 먼저 토끼를 만들었어요. 그다음 오리와 공룡도 만들었어요. 하지만 꼬마 반디는 점점 더 힘없이 깜박였어요. 그림자 동물들은 점점 더 옅어졌고요.' (16∼17쪽)

그림책 <잘 자, 반디야>를 보면 아이가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창밖을 살피다가 마당에서 아롱아롱 떠다니는 반딧불 무리를 보아요. 아이는 반딧불 한 마리를 잡아서 방으로 들어오지요. 반딧불하고 밤새 놀려고 하는데 반딧불이는 그리 즐겁지 않은 눈치라고 해요. 아이가 이렇게도 재주를 부리고 저렇게도 웃기려 하지만 반딧불이는 그저 시무룩한 채 빛을 차츰 잃는다고 해요.

'니나가 나무 밑에서 병뚜껑을 열자, 반딧불이들이 빛을 깜박이며 빙빙 돌아다녔어요. 니나의 꼬마 반디가 천천히 위로 오르더니 병 밖으로 빠져나갔어요. 꼬마 반디가 점점 더 높이 날아갈수록 꽁지의 빛이 점점 더 밝아졌어요.' (24∼25쪽)

속그림
 속그림
ⓒ 한솔수북

관련사진보기


아이는 반딧불이하고 놀 생각은 하지만, 아직 반딧불이가 어떠한 이웃이거나 목숨인가를 잘 모릅니다. 그러니 반딧불이를 유리병에 가두면서 같이 놀자고 했겠지요. 유리병에 갇힌 반딧불이는 틀림없이 '안 재미있'을 뿐 아니라 '무서울'밖에 없다고 느껴요. 반딧불이는 '병에 갇혀서 두렵고 슬픈' 마음에 자꾸만 빛을 잃을 테지요.

저도 예전에 반딧불이를 잡아서 병에 넣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대단히 밝아요. 그런데 이 꽁지빛이 시나브로 힘을 잃더군요. 뒤늦게 아차 싶어서 얼른 병에서 꺼내 주는데 꽤 오랫동안 힘을 되찾지 못해요. 얕은 생각 때문에, 그러니까 더 가까이에 두고 꽁지불을 바라보고 싶다는 얕은 생각 때문에 반딧불이 여러 마리를 죽일 뻔했습니다.

그림책 <잘 자, 반디야>는 밤에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아이하고 어떤 밤놀이를 해 보면 재미날까 하는 대목을 넌지시 보여주기도 하고, 반딧불이가 밤에 얼마나 아름답게 춤추는 불빛인가 하는 대목을 찬찬히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 있는 작고 예쁜 이웃을 어떻게 마주하고 아낄 때에 서로 즐거울까 하는 대목을 밝혀 주지요.

새장에 갇히는 새는 즐겁지 못하고, 유리병에 갇힌 반딧불이는 기쁘지 못해요. 아이들도 어떤 굴레나 틀에 갇혀야 한다면 홀가분하지 못한 나머지 웃음이나 노래를 잃겠지요. 가을이 깊으며 반딧불이 밤빛이 새삼스레 사랑스러운 철에 '반딧빛'을 새롭게 돌아봅니다.

덧붙이는 글 | <잘 자, 반디야>
(가브리엘 알보로조 글·그림 / 김난령 옮김 / 한솔수북 펴냄 / 2015.7.1. / 11000원)



잘 자, 반디야

가브리엘 알보로조 지음, 김난령 옮김, 한솔수북(2015)


태그:#잘 자 반디야, #가브리엘 알보로조, #반딧불이, #그림책, #개똥벌레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